살아있는 예술가의 기념관이 있는 우리 시대
박경선(대구교육대학교 대학원 아동문학 전공 강사)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어 예술가는 죽어서 작품을 남기며 사후에 그들을 기리는 기념관이 건립되는 것이 상례다. 그런데, 대구아동문학회에서 동해안을 따라 문학기행을 가던 날, 살아있는 예술가를 기리는 기념관 두 곳을 들리게 되었다. 그것도 그들의 고향인 경북 청송군에 건립되어 80세 넘은 그들이 자신의 작품을 지키는 관장으로 머물러 있는 곳이었다. 예술가가 살아온 고택이 아닌, 국가 지원으로 폐교를 신식 건물로 새로 건립한 점, 무엇보다 두 분 예술가의 작품명이 전시관과 문학관의 이름으로 내걸린 점들이 어마어마한 예술 업적을 말해주는 공통점이었다.
‘청량 대운도 전시관’은 신촌초등학교 폐교를 새로 손봐 꾸민 최초의 단일 작품 전시관이었다. 야송 이원좌 화백의 청량대운도 작품(길이가 46m, 높이가 6.7m)을 전시해 두었는데, 세계 제일의 대작이라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작품 앞에 서니, 청송 청룡산을 스케치 하면서 시점 이동 방식으로 그려내어 실제 산을 마주보고 있는 환상 속으로 빨려들게 된다. 그보다 이런 대작을 그린 작가의 예술혼이 내 가슴에 “빵!“하는 거대한 총성을 울렸다. 그동안 밑바닥에서 게으름 피우며 작가의 길을 가고 있는 나에게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은 이런 것이구나.’하는 충격의 총성이 울렸다. 야송은 작업할 곳이 마땅하지 않아 양곡 창고를 빌려 작업 했지만 완성 작품을 전시할 공간도 없어 20년간 창고에 두었단다. 2011년에 25억 사업비(나라에서)를 들여 2013년에 전시관이 건립되었는데 그때부터 그는 80세인 지금까지 본인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전시관 관장으로 계신다. 소, 중, 대전시실과 미술교육장과 도서관, 야송미술관 수장고까지 있는 지상 2층 건물을 둘러보며 오로지 예술혼 하나로 살아온 대화백의 삶을 입체적으로 느껴보았다. ‘위대한 작품을 남기는 예술가는 이렇게 노년에 품위 있게 늙어갈 수 있구나?’ 하는 존경심과 감탄으로 출렁이는 충격을 가득 안고 전시관을 나왔다.
돌아내려오다가 객주문학관에 들렀다. 폐교된 청송 진보 제일고 건물에다 3층 규모로 지은 문학관이었다. 김주영 소설가가 쓴 ‘객주’책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객주’는 전국 200여개 장터를 4년 9개월간 발품을 팔며 부상들을 만나 그들의 애환을 들으며 풀어 쓴 9권의 대하(역사)소설이다. 객주문학관에서는 소설가 김주영(82세) 선생님을 직접 뵙고 여러 가지를 여쭈어 보았다. 초고 공책을 보면 세필로 깨알만큼 작은 글자로 써서 돋보기 없이는 읽어볼 수 없을 정도라 했더니 공책 한 쪽에 쓴 글자는 요즘 200자 원고지 30장에 들어갈 분량이란다. 작품을 쓰면서 서울신문에 연재를 하다 보니 항상 노트를 가지고 다니며 글을 써야 해서 원고지의 무게가 짐 스러워서 공책에 그렇게 깨알 글씨로 글을 썼단다. 또한, 보부상들을 만나 어떻게 말문을 텄는지 여쭈어봤다. “부상들을 만나러 다닐 때는 옷도 허름한 걸 입고 가방도 허름한 걸 들고 다녀야지. 그리고 사투리를 섞어 말을 걸면 의심 없이 응수하거든. 막걸리를 한 사발씩 돌리며 ‘힘들지요?’ 한마디만 던져도 살아온 이야기를 다 털어놓게 되지.” 하며 낯선 사람들과 소통하는 비법을 일러주었다. 그리고 그 시대 부상들은 그들 세계만의 규율이 있단다. 장사 다니며 만나면 주막방에서 함께 잠자며 친하게 지내야 하니 망언해서는 안 되고, 처음 만나더라도 병든 자는 치료해주고 죽은 자는 장사 지내주며, 어려운 일은 서로 돕는 것이 그냥 규율이었단다. 이런 인간적인 삶을 그린 이야기가 ‘객주’에 담기어 2015년에는 KBS 광복 70주년 특별 기획 드라마로도 방영되었다. 작가는 <객주>의 주인공 천봉삼에게 이 시대의 7백만 자영업자들을 위로해주는 일을 감당하도록 그리고 있다. 그것이 작품의 힘이요. 작가의 역할이다. 그리고 우리말을 찾아 쓰기 위해 애쓰는 작가의 치열한 정신을 특히 본받고 싶었다. ‘객주’속에 나오는 아리송한 우리말들을 보면 ‘겨끔내기’‘담살이’‘부룩소’‘오갈들다’ 같은 단어를 비롯하여 잊혀져가는 예스런 우리말을 찾아 쓰려고 무던히 노력해온 흔적이 ‘명작은 그냥 쓰여 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며 다시 한 번 옷깃을 여미게 한다. 외국어로 번역할 때는 제대로 번역이 안 되겠지만 적어도 우리나라 문학역사 속에서 작가는 모름지기 그래야만 하겠다. 이제, 자기 문학관에 앉아서 문학관을 찾는 사람들에게 작품 이야기를 해주고 작가의 책에 사인을 해주는 노년 작가의 품격 속에 유년의 한 소년이 걸어가고 있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진보시장을 돌아다니며 배고픈 가난 속을 걸어가는 김주영! 그는 백세 시대에 거목으로 살아남아 그가 전국을 돌며 찍은 시장 풍경사진과 소장했던 국내 간행 소설책들을 문학관에 함께 품고 지내는 행복한 작가로 살고 있다. 무엇보다 작가 지망생들에게 입소 공부방에서 문학을 논하는 그의 초롱초롱한 정신력과 건강이 계속 문학계의 지평을 넓혀가며 후진들에게 본이 되어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마음속 멘트로 모시며 그와의 하루 인연을 행운과 감사로 싸안았다. 20190501.1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