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7(월)_사28.14-29_한 돌
시작기도.
사랑의 주님,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합니다. 죄에 물든 나를 주의 보혈로 씻어 주시고 주의 자녀 삼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세상은 계속 나를 오라 손짓하지만, 나는 단 한번의 눈길도 주지 않게 하옵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기시며 주의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해묵상.
하나님보다 애굽을 의지하려 했던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을 향해, 이사야 선지자는 따끔한 일침을 가합니다. 앗수르의 침략이 눈앞에 닥쳐왔음에도 그들은 하나님께 피하지 않고, 인간적인 계산과 꾀를 내어 애굽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그것을 자신들의 안전장치로 삼았던 예루살렘 지도자들을 향해 선지자는 '사망과 더불어 세운 언약'에 불과하다고 강력히 책망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지킬 수 있다고 헛되이 확신했습니다. 죽음을 상징하는 '사망과 스올'과 언약을 맺었으니 자신들이 죽는 시점조차 스스로 정할 수 있고, 아무리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지라도 결코 자신들에게는 미치지 못할 것이라 자신한 것입니다. (메튜헨리)
이에 대해 시편 12편 4절은 그들의 교만한 마음을 이렇게 꼬집습니다.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예루살렘 지도자들은 이 땅에서 자신들을 주관할 자가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도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도서 8:8, 공동번역개정] 사람은 아무도 제 목숨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아무도 꺼져가는 제 숨결을 붙잡지 못한다. 아무도 저 죽을 날을 마음대로 주장하지 못한다. 전쟁이 덮쳐오면 벗어날 길이 없고, 악한 일을 하고 살아날 길도 없다.
거짓된 확신을 붙들고 속임수로 몸을 숨기려 만든 그들의 '거짓 대피소'를, 하나님께서는 우박과 홍수로 흔적도 없이 쓸어버리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시온에 '한 돌'을 두어 든든한 기초를 삼으셨습니다. 참과 거짓, 진실과 속임수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주께서 시온에 두신 그 '한 돌'이 바로 참된 기준이 됩니다. 이 돌은 우리의 신앙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우리의 행함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시험하는 거룩한 기촛돌입니다.
하나님은 정의를 측량줄로 삼으시고, 공의를 저울추로 삼아 자기 백성의 삶과 공동체를 철저히 달아보실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세우신 견고한 기초 위에 선 자만이 재앙이 홍수처럼 밀려올지라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재앙 자체가 나를 피해 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아침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풍파가 밀려올지라도, 그 기촛돌 위에 선 우리를 붙들어 흔들리지 않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한 돌'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돌은 참으로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입니다. 예수님은 신령한 반석이시며, 그 반석으로부터 우리를 살리는 영원한 생수가 흘러나옵니다(고전 10:4). 이 생수를 마시는 자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거짓과 속임수가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주님을 대적하는 오만한 자들은 밤낮없이 들려오는 세상 소식에 일희일비하며 두려움과 공포에 빠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온에 두신 기촛돌 위에 굳건히 서라고 말씀하십니다. 한 돌'이신 예수를 믿고 영생의 물을 마시는 자는, 주께서 기이한 일을 행하시며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당시의 속담을 인용하여 그들의 어리석은 선택을 비판합니다. 하나님이 아닌 이방 나라와 동맹을 맺어 위기를 모면하려 했지만, 그것은 마치 '몸을 펴기엔 침대가 너무 짧고, 몸을 덮기엔 이불이 너무 좁은 것'과 같습니다. 인간적인 수단은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일찍이 여호와께서는 다윗 때에 브라심산에서 블레셋 족속을 격파하셨고(삼하 5:18-20), 여호수아 때에는 기브온 골짜기에서 가나안 족속을 물리치셨습니다(수 10:10-11). 주님은 그때처럼 다시 일어나 싸우실 것입니다. 다만 그때와 지금이 다른 것은, 옛날에는 대적들을 치셨으나 이제는 교만해진 이스라엘 지도자들, 즉 '자기 백성'을 향해 대적하여 치신다는 사실입니다. (만나주석)
그러므로, 우리는 그때의 예루살렘 지도자들처럼 절대 오만한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농부가 파종하는 비유를 통해 지혜를 가르쳐 주십니다. 농부는 때가 되면 씨를 뿌리고, 각 작물의 특성에 맞게 지혜롭게 농사를 짓습니다. 농경의 목적은 씨를 뿌려 열매를 거두는 것인데, 어느 농부가 매일 밭만 갈고 있겠습니까? 땅이 준비되면 씨를 뿌리고, 창조의 질서에 따라 열매를 기다립니다.
이처럼 농부의 지혜조차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모략과 지혜는 우리의 소소한 일상 속에서도 섭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경험과 지혜를 의지하며 내가 옳다고 고집하는 어리석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그분의 거룩한 밭입니다(고전 3:9). 그리스도는 참포도나무요, 하나님 아버지는 농부이십니다(요 15:1). 아버지는 끊임없이 그분의 말씀과 규례로 교회라는 밭을 경작하십니다. 때로 우리가 이 땅에서 겪는 고난과 고통은 우리를 망가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바람에 날려갈 겨를 털어내고 알곡만을 남기시려는 하나님의 '도리깨'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농부의 도리깨질은 곡식을 부수는 것이 아니라 알곡을 깨끗하게 알맹이만 나오도록 돕습니다. 농부는 절대로 귀한 알곡을 부수지 않습니다. (메튜헨리) 하나님은 반드시 자기 백성을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을 신뢰하십시오.
주님은 오늘 이 아침, 주의 말씀 앞으로 나아온 성도님들에게 부드럽게 말씀하십니다.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일하심은 참으로 놀랍고 신비롭습니다. 주님의 경영하심은 기묘하며 그 지혜는 광대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아침, 겸손하게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고 하나님의 지혜로운 말씀을 듣고 겸손히 따르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나의묵상.
‘시험한 것(ἐκλεκτός)’은 구별되어(distinguished) 선택된 것(to being selected)을 뜻하고 부름받은 자(The Called)를 표상한다.(BDAG) 그러므로 시험한 돌은 부름받은 자의 모임, 즉 ‘교회의 돌’인 것이다. ‘한 돌’은 그 무엇의 혹은 그 누구의 돌도 아닌 ‘교회의 돌’인 것이다. 사실 산 돌이신 아기 예수는 교회(여자/마리아)를 통해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교회를 그의 신부 삼으셨다. 특별히 구별되고 선택된 또한 부름받은 교회는 세상의 수많은 돌들에 현혹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모두 허상이며 사라질 만물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나와 우리 더함교회에는 오직 한 돌 예수가 계신다. 그분은 우리의 산돌, 우리의 신랑이다.
묵상기도.
주님, 이 아침 살아있는 산돌이 되셔서 우리를 가르치시니 그 은혜가 참으로 큽니다. 나와 우리 더함교회가 자세히 주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기 원합니다. 땅을 개간하고 고르게 한 후 씨를 뿌리고 도리깨질을 하여 알곡을 얻듯이, 주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살피기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가 뜻하신 바를 이해하고 삶 가운데 주의 뜻을 나타내기 원합니다. 주님, 나와 더함교회에,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은혜를 내리셔서 주의 발치 앞에 앉아 기묘하고 광대하신 주의 경영과 주의 지혜의 말씀을 듣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