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댓글[팔영루(八詠樓)] 원래 제원군 청풍면 읍리 286번지에 있던 것을 충주댐 건설에 따른 수몰로 인하여 1983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습니다. 처음 지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팔영루 사적비(八詠樓事蹟碑)에 의하면 1702년(숙종 28) 부사(府使) 이기홍(李箕洪)이 중건하고 남덕문(覽德門)이라 한 것을 1870년(고종 7) 부사 이직현(李稷鉉)이 중수하고 사적비를 세웠습니다.
당초 남덕성문(覽德城門)이라 했던 것을, 청풍팔경을 읊은 민치상(閔致庠)의 팔영시(八詠詩)로 인해 팔영루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현재 루의 정면에는 ‘팔영루(八詠樓)’, 배면에는 ‘남덕문(覽德門)’이라고 쓰인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미륵보전[彌勒寶殿] 미륵보전은 비륵부처님을 모신 법당인데 미륵부처님은 현재 머물고 있는 도솔천(兜率天)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상생신앙(上生信仰)과 미래에 인간세계에 태어나 중생을 교화할 미륵불의 구원을 갈망하는 하생신앙(下生信仰)이 있습니다. 기독교로 말하면 재림주님을 뜻하는 구세주이십니다.
대웅보전(大雄寶殿) 대웅전을 품격을 높여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고도 하며 항상 사찰의 중심에 있습니다. 대웅전에는 사바세계의 교주인 석가모니불을 중심에 두고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을 협시(脇侍)로 봉안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격을 높여 대웅보전이라 할 때는 주불로 석가모니불, 좌우에 아미타불(阿彌陀佛)과 약사여래(藥師如來)를 모시며, 각 여래상의 좌우에는 제각기 협시보살을 봉안하기도 합니다.
첫댓글 [팔영루(八詠樓)]
원래 제원군 청풍면 읍리 286번지에 있던 것을 충주댐 건설에 따른 수몰로 인하여 1983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습니다. 처음 지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팔영루 사적비(八詠樓事蹟碑)에 의하면 1702년(숙종 28) 부사(府使) 이기홍(李箕洪)이 중건하고 남덕문(覽德門)이라 한 것을 1870년(고종 7) 부사 이직현(李稷鉉)이 중수하고 사적비를 세웠습니다.
당초 남덕성문(覽德城門)이라 했던 것을, 청풍팔경을 읊은 민치상(閔致庠)의 팔영시(八詠詩)로 인해 팔영루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현재 루의 정면에는 ‘팔영루(八詠樓)’, 배면에는 ‘남덕문(覽德門)’이라고 쓰인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미륵보전[彌勒寶殿]
미륵보전은 비륵부처님을 모신 법당인데 미륵부처님은 현재 머물고 있는 도솔천(兜率天)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상생신앙(上生信仰)과 미래에 인간세계에 태어나 중생을 교화할 미륵불의 구원을 갈망하는 하생신앙(下生信仰)이 있습니다. 기독교로 말하면 재림주님을 뜻하는 구세주이십니다.
대웅보전(大雄寶殿)
대웅전을 품격을 높여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고도 하며 항상 사찰의 중심에 있습니다. 대웅전에는 사바세계의 교주인 석가모니불을 중심에 두고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을 협시(脇侍)로 봉안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격을 높여 대웅보전이라 할 때는 주불로 석가모니불, 좌우에 아미타불(阿彌陀佛)과 약사여래(藥師如來)를 모시며, 각 여래상의 좌우에는 제각기 협시보살을 봉안하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되겠습니다
해행당 (解行堂). 보탑사 (寶塔寺). 진천군(鎭川郡)
해행당의 해자가 뿔각(角)변에 양양(羊)로 되어 처음에는 약간 혼동을 하였는데 그래서 선(鮮)자로 알았는데 다시 살펴보니 해자였습니다.
따라서 [선행당]으로 잘못 읽을수가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보탑사에 들렸을때 와불상[臥佛像]도 참배했는데 와불상은 불교의 용어로 누워 있는 부처의 모습으로 만든 불상을 말합니다. 의미는 영생(永生) 평안(平安) 해탈(解脫) 성불(成佛) 등의 깊은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참고로 저의 주장이 100% 정답이라고 말할수는 없습니다. 다만 보시는 분들이 참고하시라는 뜻으로 해설을 제가 알고 있는 지식한도 안에서 임의로 해석을 달았을 뿐입니다.
(김찬동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