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노정에 선 야곱
이삭의 손길을 통해 축복해 주신 하나님, 모든 것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라고 권고하시던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야곱이 가는 길을 안내해 주고 가는 길을 평탄하게 해 주지 못하고, 또 얍복강가에서 밤을 새워 천륜의 뜻을 품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하늘 앞에 호소하는 야곱에게 권고의 말씀은 해주지 못할망정 오히려 천사를 보내어 야곱을 치게 하는 이러한 비정한 환경이 벌어지게 하셨던가! 말할 수 없는 사정, 인간들이 알 수 없는 애달픈 곡절의 심정이 여기에 있었다는 것을 오늘날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향산천을 찾아가는 야곱의 길에는 광야의 길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걸어가는 노정에도 이러한 곡절이 있다는 것을 야곱이 걸은 노정을 통해서 깨닫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하늘은 이러한 환경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 사람 하나를 택해 세우는 것도 물론 하나님의 섭리의 뜻이지만 배후의 사탄을 밀어낼 수 있는 발판을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한 섭리의 뜻인데, 인간이 모르는, 하나님과 사탄만이 아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곡절의 담을 인간을 통해서 헐어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이러한 곡절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헐 수 있는 조건을 세우기 위하여 야곱에게 무리한 행동을 하늘은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1958.02.09, 전 본부교회)
야곱에게는 축복받은 그날부터 에서가 있는 고향 땅에 돌아갈 때까지 기쁨의 한 날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우리에게 보여 주느냐 하면,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가 있다고 한다면, 그는 하늘과 땅을 걸어 놓고 하나의 제물의 입장에서 이것을 판결지을 때까지는 수심의 생애노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한 역사노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이 하나님의 축복을 책임지고 나아갈 때에는, 야곱과 같이 원수의 세계에도 찾아가야 하고 어려운 환경과 홀로 싸우는 싸움의 노정도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싸움의 노정에 선 야곱이 지쳐서 쓰러졌던들 그에게는 이스라엘이란 명사가 주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이름을 통한 축복의 은사가 야곱과는 관계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늘이 이삭의 손길을 통해 내리신 축복을 이루기 위해 어떠한 고난과 난관에 부딪치더라도 이것을 극복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불붙는 심정을 갖고 하늘 대해 충성했기에 얍복강가에 나타난 천사와의 씨름에서 용맹스럽게 싸워 승리의 발판을 만들었던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1958.02.09, 전 본부교회)
야곱은 하늘이 허락한 말씀을 중심삼고, 생명을 잃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모진 싸움의 길을 걸어간 대표적인 하늘의 정병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예고하는가? 우리의 선조인 아담 해와가 소망의 한 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끝까지 그 말씀을 지켜 나가야 했는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 한 사실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아담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사수하는 존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바로 그런 인물로 하늘 앞에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입장에 처하게 된 야곱, 하늘의 시련을 받는 입장에 있었던 야곱은 한시도 마음을 놓지 않았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굳게 믿고 싸움이 끝나기 전에는 팔이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굳은 신념을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싸워 승리한 후에야 이스라엘이란 축복이 임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선민의 승리의 기초가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야곱이 이런 입장에 처하게 되었던가? 이것은 인간조상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하나님을 배반하였기 때문에 그의 후손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 말씀을 중심삼고 끝까지 하나님을 믿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은 이런 입장에서 말씀을 중심삼고 끝까지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사탄의 모든 참소조건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1958.02.09, 전 본부교회)
얍복강가에서 철야를 하고 있던 야곱에게 하나님을 대신하여 천사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야곱은 사탄의 시험을 받아야 할 입장에 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이 참소하지 못할 정도로 믿을 수 있고, 그 말씀을 중심삼고 싸울 수 있는 대표적인 인물로 드러내기 위해 야곱에게 천사를 보내어 밤새도록 씨름하게 했습니다. 야곱은 한 인간으로서 천사를 문제없이 물리치기 위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에게 부여된 그 뜻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마음을 품고 싸웠던 것입니다. 이러한 야곱 앞에 사탄은 감히 참소의 조건을 제시할 수 없었고,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승리가 얍복강가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하늘은 제2시험의 대상인 에서를 감동시켜 야곱 앞에 굴복시킬 수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1958.02.09, 전 본부교회)
야곱으로 말미암아 세워진 이스라엘이란 이름과, 야곱으로 말미암아 세워진 이스라엘의 터전은 야곱 일대만 축복의 대상으로 성립된 것이 아닙니다. 야곱을 통해 개인적인 이스라엘이 시작되고 야곱을 통해서 가정적인 이스라엘이 시작되어 민족·국가·세계적인 이스라엘을 형성하기 위한 이스라엘 이름이요, 이스라엘의 터전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는 것을 야곱의 후손들은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느끼고 믿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후손들은 야곱으로 말미암아 자기들에게까지 미쳐진 축복을 오로지 자기들 것으로만 믿고 행동해 나왔습니다. 그래서 택함을 입었던 이스라엘 민족은 오늘날 이 땅 위에 그 종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1958.02.09, 전 본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