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타(191) 제4권 “신무기”라는 이름으로 물건처럼 소모되는 마루타
제16장. 이시이와 요시다는 다시 한 번 후미코를 사이에 두고 진검 대결
11절. 세균 실험속 복통, 설사 등 다양한 증상
260번은 그의 가까이 다가가서 다리를 살펴보았으나 붕대로 감아서 볼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260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나 334번은 신음소리를 낼뿐 말을 하지 않았다.
"......"
"260번--." 하고 변기에 앉아 있던 745번이 참견했다.
"말하기 싫어하는 사람에게 말 시키지 마라."
"넌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고 설사나 싸라, 이 새끼야."
745번은 아직도 코에서 휴지를 빼지 않았다. 피는 멈추었으나 다시 피가 쏟아질 것이 두려워서 그대로 막고 있었다.
코를 막고 말해서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물어보면 뭐하니. 여러 시간 나갔다 들어온 것을 보면 다리에 동상을 걸리게 한 다음 여기저기 베어낸 모양이다. 수술을 했으니 그렇게 시간이 걸리지 않았겠니?"
"수술을 했습니까?"
몸을 일으켜 260번을 바라보았다. 한쪽 눈으로 보는 그의 표정은 괴이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계속되었다.
"무엇을 알고 싶소? 내 다리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오?"
334번이 침착한 어조로 물었다.
그러자 260번은 약간 당황하는 기색으로 얼버무렸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몹시 괴로우신 모양이죠?"
"육체의 고통보다...... 우리 민족이 겪는 고통이 더 괴롭소."
"어려운 말은 잘 모릅니다. 다리 많이 아프세요?"
"보여줄까?"
260번은 아니라고 손을 내저었으나 붕대를 풀기 시작했다.
745번은 변기에 앉아 힘을 주다가 중지하며 놀란 눈으로 붕대가 풀리는 334번의 다리를 바라보았다.
260번은 얼굴을 찡그리며 뒤로 한 걸음 물러 앉았다.
약품 냄새가 풍겼다.
붕대에는 살점이 묻어나듯이 흐물거리는 것이 붙어 있었다.
붕대가 드러난 334번의 왼쪽다리는 살점이 뜯겨 나가고, 뼈의 일부가 보였다.
살점은 동사(凍死)되어 시커멓게 변색되어 있었고, 혈액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것은 검은 우무처럼 흐물거렸다.
드러난 뼈는 희게 빛났다. 뼈가 그토록 희다는 것을 260번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검은 살점 속에 박혀 있는 뼈였기 때문에 더욱 희게 비쳤다. 마치 석고를 박아 놓은 것 같았다.
260번이 손짓을 하며 지껄이자 745번은 260번을 향해 눈을 흘기며 말했다.
"괜히 그분한테 귀찮게 해서 붕대를 풀게 만들고 지랄이냐."
"너는 설사나 해. 이 새끼야."
334번은 붕대를 모두 감고 다시 누웠다.
"아프지 않으세요?"
260번이 근심스런 어조로 물었다.
"동사된 곳은 감각이 없어서 아프지도 않고. 그쪽으로 피가 안 통해서 그런지 넓적다리 위가 아프오."
"놈들이 어떤 짓을 한 것입니까?"
"냉동기에다 다리를 넣으라고 해서 넣었더니 이렇게 되더이다. 그놈들은 동사된 다리를 빼내어 여러 가지를 조사했소.
그리고 수술대 위에 뉘여놓고 묻더군. ‘감각이 있냐고’ 그러더니 그 다리를 백도로 끓는 물에 넣었소.
그러니까 살점이 흐물흐물 뭉그러지면서 칼로 건드리자 뼈가 훤히 드러났지.
놈들은 그것을 사진기로 열심히 찍었고 천연색 사진이 아닌지 그림 그리는 젊은이가 와서 내 다리를 그리고 색칠을 했소.
나는 모델처럼 앉아서 그 다리를 그림 그리는 젊은이에게 보였지.
나는 문득 경성에서 대학생들에게 미술 지도를 하며 데생을 강의하던 생각이 떠오른 게요."
"아저씨는 대학교수님이었군요?"
260번이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뜻으로 자세를 바로 가지며 말했다.
334번은 그 말에 들은 척하지 않고, 마치 혼잣말 처럼 허공을 보며 말했다.
"그 젊은 군속이 그리는 스케치 보니까 어설펐오. 그래서 뭉그러진 내 다리를 열심히 그리고 있는 그 군속에게 물었지.
‘전에는 무엇을 했느냐고.’ 그러니까 그 군속은 움찔하더니 나를 쳐다보며 말하더군.
자기는 화공이며 전에는 유우젠 날염의 밑그림을 그렸다고."
"유우젠 날염의 밑그림요? 그게 어떤 그림입니까?"
"일본 여자들이 입는 기모노의 넓은 소매를 장식하는 매화꽃이나 단풍, 벚꽃이나 절 같은 명소를 디자인한 그림이지요.
그 군속은 내 다리를 채색하는 그림을 아주 잘 그렸소.
그래서 내가 칭찬해 주었더니 씨익 웃더군. 자기는 병요지지반(兵要地誌班)에 근무하기 위해 왔는데,
이젠 그림을 그리라고 해서 군속에게 참 안된 일이라고 위로해 주었네."
"하하하하......"
745번이 변기에 앉아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웃음이 요란하여 철문 앞을 지나던 특별반 경비원이 창구를 열고 안을 들여다 보았다.
260번은 745번이 웃는 것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보다가 고개를 돌려 철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745번이 웃음을 그치자 창구로 들여다보던 경비원은 그곳을 떠났다.
경비원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면서 복도 입구에 특별반 취사원들이 들어오는 기척이 들렸다.
745번은 그들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단번에 알았다.
그는 재빨리 밑을 닦고 식사를 하려고 뒤쪽 벽 작은 창구 앞에 앉았다.
계속 설사를 했기 때문에 배가 고파 260번은 냄새를 맡으며 얼굴에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국냄새인데, 이번에는 틀림없이 게장국이다. 내가 좋아하는 요리이지."
두 사람은 창구 앞에 쪼그리고 앉아 음식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창구가 열리고 반합에 얹힌 음식이 들어왔다.
반합에는 제각기 해당 번호가 매겨져 있어 그것을 먹어야 했다.
그러나 대부분 같은 음식이 들어왔기 때문에 특별한 차이는 없었다.
다만 열을 내거나 구토를 하는 마루타에게는 죽이며 특별한 요리가 들어왔다.
이번에 안으로 들어온 요리는 745번과 334번이 동일한 것이었고, 260번이 달랐다.
260번은 쌀밥 대신 만두가 수북히 담겨 있었다.
만두는 이번에는 특별난 메뉴였다. 260번의 말대로 국그릇에는 게장국이 담겨 있었다.
물그릇이 들어오자 잦은 설사로 탈수를 느낀 745번이 물을 떠서 허겁지겁 마셨다.
260번은 자기의 번호가 매겨진 반합을 놓고 심각한 표정으로 내려다 보았다.
334번은 음식이 들어왔으나 먹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누워 있었다.
그의 입에서는 계속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몸에 열이 나는지 이불을 끌어당겨 덮고 있었다.
"허허허--, 너에게는 최후의 만찬인 것 같다."
745번은 260번의 반합에 들어있는 만두를 보더니 빈정거렸다.
고참 마루타들에게는 몇 가지 금기사항이 있었다.
그것은 들어오지 않던 술이 들어오거나 감주, 냉과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이었고, 만두도 마찬가지였다. 만두 속에 세균을 넣어 공급하는 것은 공식적인 방법이었으며 고참 마루타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경계를 하는 것이다.
745번이 만두를 보고 빈정거린 것은 그와 같은 이유였다.
260번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만두 속에 반드시 세균이 들어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마루타에게는 쌀밥이 들어오고, 260번만이 만두라면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260번은 만두를 먹지 않고 들여다보더니 만두 속을 열고 냄새를 맡았다.
하지만 방금 넣은 세균이 부패할 리가 없었다.
냄새는 나지 않았으나 도저히 먹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게장국조차 의심스러웠다.
"하하하--, 넌 지독한 겁장이로군."
"설사나 하다가 뒈질 놈의 새끼."
"어차피 죽을 몸인데 뭘 망설이나. 세균이 들어간다고 단번에 죽는 것은 아니잖냐.
그렇지 않으면 저기 아저씨처럼 동상 실험을 해서 너의 손발을 잘라낼 걸."
"잔소리 마라, 이 새끼야. 너같이 설사하다가 뒈지고 싶진 않다."
260번은 만두를 비롯한 음식을 모두 변기 속에 붓고 믈을 내렸다.
담회로요 ----
첫댓글 오랜만에 올려주셨습니다.
해외 다녀 오셨는가 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