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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주달영
가짜 하나님을 만들고 예배하는 공동체 / 왕상 12 : 25-33
옷을 입을 때 첫 단추부터 잘 끼워야지 잘못 끼우면 다 틀리게 됩니다.
신앙생활도 잘못 시작하면 잘못된 신앙으로 인해 온 가족과 후손들이 망합니다.
이런 일이 분열된 북이스라엘에서 일어남으로 하나님과 상관없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형식은 있었지만 진리가 없는 가짜 하나님을 만들고 예배하며 살다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사탄은 쉬지 않고 이런 일에 열심을 내기 때문에 교회와 성도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벧전5:8-9)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그래서 말씀과 기도로 깨어있어야 미혹을 분별할 수 있고 영적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올 때도 사탄의 미혹을 분별하지 못함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사탄이 뱀을 통해 하와에게 찾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고 빼서 거짓말로 마혹했는데 그 말을 믿음으로 죄인이 되었고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이런 아담과 하와를 위해 여호와하나님은 어떤 짐승을 잡아 가죽으로 허물을 덮어 줌으로 회복의 소망을 주었습니다.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이 어떻게 하나님과 교제하는 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때부터 인간들은 희생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았습니다.
아담은 이런 일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며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며 살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가인과 아벨이 제사드릴 때가 되어 제사를 드렸는데 가인은 하나님이 계시하신 방법이 아닌 자기 방법으로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열납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자 자기 종들과 함께 제사를 드리며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는데 앞으로 이 땅에 제사장나라가 세워질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모세가 호렙산으로 올라가 율법을 새긴 돌판을 받고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백성들이 아론을 찾아와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고 하자 그들을 책망하지 않고
오히려 거짓제사장이 되어 송아지 형상을 만들게 하고 가짜 제사를 드렸습니다.
(출32:2-4)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영이신 하나님이 호렙산에 강림하여 우레와 같은 소리로 십계명을 주신 것이 생생한데
속히 하나님을 떠나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제사를 드림으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약속의 땅에서 일어났는데 이 사건을 제공한 사람이 솔로몬입니다.
부귀와 권세와 지혜를 받은 솔로몬이 타락하여 이방 여인들을 많이 얻고 이 여인들이 섬기던 신들을 허락함으로 거룩한 땅에 많은 우상들이 세워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들 르호보암이 통치할 때 북쪽에 있는 10지파가 떨어져 나감으로 여로보암이 북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왕이 되기 전 아히야 선지자가 찾아와 앞으로 10지파의 왕이 될 것을 예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왕상11:38) 네가 만일 내가 명령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행하며 내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이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
그래서 때가 되자 아히야가 예언한대로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왕이 된 여로보암은 세겜을 수도로 삼고 왕궁을 건축했습니다.
세겜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 제단을 쌓은 곳이고 그 땅을 정복한 여호수아가 마지막 설교를 한 곳이 세겜입니다.
여로보암은 이곳을 수도로 삼고 북이스라엘을 다스렸는데 신앙 문제가 걱정거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왕국을 세우시고 영원한 언약을 주었는데 이 왕국은 메시아 왕국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전 건축을 사모하는 다윗에게 성전 설계도를 주시고 솔로몬에게 성전을 짓게 하여 지성소에 임재하심으로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신 성전은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하기 때문에 어디에도 세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디에 있든지 일년에 세 번, 유월절과 맥추절과 장막절에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며 살았습니다.
(신16:16-17)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그래서 북 이스라엘도 일 년에 세 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이것은 여로보암의 통치 차원을 떠나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고 자기 후손과 백성들의 생명이 달렸기 때문에 기도하며 감사하며 믿음으로 보내 주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이 어떻게 했습니까? (26-27절)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의 앞날을 걱정하며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습니다.
절기 때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제사를 드리면 자기에게 정통성이 없는 것을 알고 자기를 반역하고 남 유다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을 따라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저주와 사망의 길을 택했습니다.
(롬8:5-7)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이 때 여로보암이 자기에게 주신 말씀을 붙잡고 기도했더라면 평안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지 않고 육신의 생각을 따라 악한 길로 갔습니다.
(28-29절)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여기서 계획하고는 의논하다 인데 자기 뜻을 따르는 자들과 긴밀하게 의논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쿠데타나 악한 일을 벌일 때는 자기 뜻을 따르는 자들과 은밀하게 의논합니다.
좋은 일은 공개적으로 하지만 나쁜 일은 비공개적으로 비밀리에 의논합니다.
그래서 여로보암은 비공개적으로 자기 측근들을 불러 자기가 염려하는 일들을 말하며 그들과 함께 악한 일을 계획했습니다.
만약 여로보암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바른 신앙을 가졌다면 누구를 불렀을까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아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입니다.
이들과 의논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일이기 때문에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말을 잘 듣고 따르는 측근들과 의논해서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여로보암이 계획하고 하나님을 대적한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영광을 받으시는데 비 진리와 악령으로 예배했습니다.
송아지 형상을 만들고 하나님이 주신 제사법을 변개시켜 가짜로 제사함으로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성령의 역사가 없는 비진리와 악령으로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1,금송아지를 만들어 벧엘과 단에 세웠습니다. 29절
여로보암이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애굽사람들이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놓고 숭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본 아론이 광야에서 송아지 형상을 만들고 애굽에서 우리를 이끌어 낸 하나님이라고 한 것처럼 여로보암도 동일하게 말하며 송아지를 섬기라고 했습니다.
힘들게 예루살렘까지 올라가지 말고 가까운 곳에서 편리하게 제사를 드리라고 했는데 중요한 것은 가깝고 멀고 많이 모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진리이냐가 중요합니다.
2,산당을 지었습니다. 31절 상.
예루살렘에 성전이 건축되기 전에는 주로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왕상 3:2)
그렇지만 성전이 세우진 이후에는 1년에 3번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못하게 하고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게 했습니다.
이것은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이비 종교를 만들고 백성들을 타락시킨 것입니다.
3,보통백성으로 제사장을 삼았습니다. 31절 하.
제사장직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레위인 중에서도 아론의 자손들만 자격이 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정하셨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이 법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은 교만하여 이법을 무시하고 보통백성을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4,비슷하게 절기를 바꾸었습니다. 32절.
하나님이 주신 장막절은 종교력으로 7월 15일입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은 이 날을 8월 15일로 비슷하게 바꾸었는데 이것은 진리가 아니고 가짜입니다.
가짜는 진짜를 모방했기 때문에 비슷합니다. 그래서 분별하지 못하면 가짜에게 미혹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이비 종교는 진짜를 비슷하게 만들어 사람들을 속이고 빼앗고 죽이는 것입니다.
세상사기는 물질적인 손해와 육신의 고통이 따르지만 종교적 사기는 그 영혼을 지옥으로
보내기 때문에 성도들은 진리의 말씀을 통해 참과 거짓을 분별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에 있어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무엇을 보고 들으면 그러한가 성경을 가지고
확인해야 가짜들에게 속지 않고 자기 신앙을 지킬 수 있습니다.
성경은 여로보암의 일이 죄가 되었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십계명을 어겼기 때문이고 예루살렘 성전을 무시하고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이스라엘을 타락시킨 죄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1,울며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어느 시대나 어디서나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부르신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진리의 말씀을 통해 선악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분별의 기준은 사람의 말도 아니고 세상기준이 아니고 다수의 의견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며 내 생각과 행동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가입니다.
그래서 경건한 제사장들과 레위인과 성도들은 공의의 하나님을 찾고 기도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의 공의를 믿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때보다 더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주권이 나타나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2,그리고 악한 일을 중단하라고 왕에게 항의했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왕을 찾아가 악한 일을 아뢰며 중단하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왕이 악한 일을 멈추지 않자 신앙의 결단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 그곳을 떠나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올라갔습니다.
(대하11:13-16) 온 이스라엘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그들의 모든 지방에서부터 르호보암에게 돌아오되 레위 사람들이 자기들의 마을들과 산업을 떠나 유다와 예루살렘에 이르렀으니 이는 여로보암과 그의 아들들이 그들을 해임하여 여호와께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지 못하게 하고 여로보암이 여러 산당과 숫염소 우상과 자기가 만든 송아지 우상을 위하여 친히 제사장들을 세움이라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 마음을 굳게 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는 자들이 레위 사람들을 따라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고자 한지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그곳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경건한 성도들도 레위인을 따라 모든 것을 버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 갔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살고 후손들도 바르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경건한 사람들이 떠나자 북 이스라엘엔 가짜들만 남아 가짜제사를 드리며 살았습니다.
그들이 수시로 모여 많은 제물을 가지고 많은 사람이 모여 큰 소리로 찬양할지라도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가짜예배입니다. 이런 종교행위가 망할 때가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사 능력있는 선지자들을 보내어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했지만 끝까지 가짜 예배를 드리며 가짜 공동체로 살다가 BC 722년에 망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영과 진리가 아닌 가짜 예배가 성행하고 있습니다.
사도들과 바울이 증거했던 하나님나라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은 전하지 않고 정치인들을 세우고 음모론 자들을 세워 거짓 선동을 하며 거룩한 강단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찬양과 기도도 있고 헌금도 있지만 타락한 북이스라엘이 벧엘과 단에서 드린 종교 행위와 무엇이 다릅니까?
지금 누구를 위해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까? 이것이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입니까?
이런 곳에 성령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믿음에서 믿음으로 나가는 역사가 있을까요?
이 시대 우리는 누구를 정죄하기 보다는 냉정하게 우리 신앙을 점검해야 합니다.
목사들 : (고후2:17)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성도들 : (행17: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이제 우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통회하며 울고 울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 안에서 새롭게 됨으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