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은 애물단지라고 한다. 불혹(不惑)을 앞둔 아들은 혼자 살겠다고 집을 얻어 나간 지 꽤 된다. 밥은 제때 챙겨 먹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걱정이 태산 같다. 그에 반해 딸은 진즉에 결혼하여 이기 엄마가 되었다. 딸이 낳은 자식은 온 집안의 귀염둥이다.
밤 11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 때였다. 거실에 있던 아내가 딸과 통화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손자가 열이 많이 난다고 한다. 거의 38.5도를 오르내린다고 한다. 코로나 시대에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인가. 순간 눈앞이 캄캄해진다. 아내는 차분한 목소리로, 매개체 역할을 할 딸과 사위는 열도 없고 건강하다며 돌치레 같다고 한다. 돌잔치를 한다고 간단히, 식사를 하며 기념 촬영을 한 지가 열흘이나 지났는데, 지금 와서 웬 돌치레냐고 의아해했다. 돌치레를 몸살쯤으로 생각한 것이다.
다음 날, 병원 두 곳을 들렀다 온 딸이 전화로, 돌발진 같다고 알려왔다. 돌발진 증세에 대해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보통 돌 전후에 발생하며 이유 없이 39도 정도의 열이 며칠간 지속되는 게 특징이라고 되어 있다. 다행히 해열제로 고열을 다스리며 5일 정도만 버티면 열꽃이 피면서 낫는다고 한다. 그제야 코로나로 지레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사흘째 되는 날 아침, 딸에게 걸려온 전화 내용은 어젯밤부터 열이 더 오르더니 잘 먹지도 않고 찡찡거린단다. 한밤중에는 20분간이나 울면서 데굴데굴 굴렀다고도 한다. 그 소리를 듣고 나니 조그만 것이 말도 못 하고 얼마나 괴로웠을까 싶어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프다. 그래도 달리 방법이 없다. 속수무책(束手無策)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나흘째 되는 날, 거짓말같이 열이 내려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집에 잠깐 들르겠다고 한다.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믿지도 않는 여러 신에게 감사한 마음이 된다. 열 일 제쳐놓고 손자를 맞이할 집 정리부터 한다. 녀석은 손닿는 곳에 물건이 있으면 흩트려놓거나 입으로 잽싸게 가져간다. 화분도 마구잡이로 잡아당긴다. 그래서 거실 바닥부터 물걸레로 꼼꼼히 닦기 시작해서, 나중에는 휴대폰, 텔레비전 리모컨, 조그만 형광펜까지 녀석이 입으로 가져갈 만한 것은 모두 물티슈로 두세 번씩 닦는다. 싱크대 수납장 속의 식칼, 가위는 물론 거실에 있는 화분도 손닿지 않은 곳으로 옮겨놓는다. 한숨 돌리면서 아내를 보니 딸이 가져갈 반찬거리를 장만하느라 신명이 제대로 난 모습이다.
손자가 집에 왔다. 얼굴이 해쓱하다. 안아보니 돌잔치 때에 비해서 체중도 좀 준 것 같다. 아직 온전치는 않은지 기운이 없고, 자고 일어나니 저체온 증세도 있다. 그래도 먹을 것을 주면 잘 받아먹고, 거실을 막 뛴 걸음으로 다닌다. 엊그저께까지 기던 놈이 장족의 발전을 했다. 말귀도 대충 알아듣는다. 함박웃음이 절로 난다.
딸 부부는 아들을 맡겨놓고 바깥바람을 쐬러 나갔다. 한참 후 들어오더니, 용두산공원에서 아들 때문에 놀란 가슴을 잠시 달래고 왔다고 한다. 그 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내 새끼들 키울 때가 새록새록 생각났다.
우리 부부는 어린 아들과 딸을 데리고 용두산공원에 자주 갔었다. 지금은 폐쇄되었지만, 당시에는 미화당백화점 꼭대기 층과 용두산공원을 다리로 연결해서 통로로 삼았다. 건물 꼭대기에는 놀이기구가 있었고, 다리 중간쯤에는 매점이 있었다. 애들을 데리고 간 부모들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구조였다. 애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놀이기구 앞에 떡 버티고 섰고, 매점 앞에 빈자리를 부리나케 찾아서 앉았다. 놀이기구 두어 개는 기본이요, 컵라면과 어묵은 덤으로 보장받은 권리였다. 애들은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등 특별한 날만 되면 비둘기를 보러 가자고 보챘다. 실상은 놀이기구를 타고 컵라면을 먹고 싶은 욕심으로 그랬다.
옛날 일을 생각하다 보니 애들이 힘든 고비를 넘어왔던 상황들도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아들은 새 들어 살던 집 2층에서 떨어져 죽을 뻔했다. 큰 병원 두 곳을 옮겨 다니며 애간장을 태웠다. 딸내미는 심한 폐렴으로 며칠간 병원에 입원하며 부모 속을 끓였다. 그래도 모두 잘 성장하여 제 몫을 하고 있다. 손자도 숱한 고비를 넘기면서 커나갈 것이다. 힘들 때마다 할아비의 미약한 기운이나마 보태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헤어질 때 엄마 품에 안긴 손자의 얼굴이 할아비, 할미의 사랑을 듬뿍 받아서 그런지 그럴 수 없이 해맑다. 승강기 앞에서 손을 흔들며 잘 가라는 아내의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있다. 아마 조그만 것이, 세상을 헤쳐나가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그럴 것이다.
토요일임에도 회사에서 일을 하던 아들이 밤늦게 먹을 걸 한 보따리 싸 들고 왔다. 손자와 헤어져 허전했던 가슴이 듬직한 아들로 가득 채워진다. 늘그막에 이런 자식이 가까이에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자식이 애물단지라는 말은 이제 내 뇌리에서 지워야겠다. 오늘은 아들, 딸, 사위, 손자를 한꺼번에 봐서 그런지 마음이 한껏 부자가 된 기분이다.
한 다정한 문우(文友)가 단체 대화방에 가곡 ‘가을 앓이’를 띄워 놨다. 소프라노의 청아한 음색이 손자의 돌 치레로 예민해진 감성을 한층 고조시킨다. “이 가을 깊은 서정에 가슴 베이지 않을 지혜를 일러 주시게” 하는 부분에서는 눈물마저 핑 돈다. 이제 본격적으로 늙는 모양이다.
가을이 더 깊어지기 전에 우리 부부도 용두산공원에 한번 가봐야겠다. 이왕이면 은행나무 가로수들이 샛노랗게 타오를 때면 좋겠다. 공원 벤치에는 애들과 못다 한 이야기, 비둘기와 깔깔대던 날들이 날것 그대로 조금은 남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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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은애물단지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