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꼭꼭 꼬끼오∼.” “휘이익 휘리리릭∼.” 신새벽. 닭울음 소리에 눈을 뜨면 소와 염소를 불러들이는 목동의 휘파람이 온 산 가득 메아리치는 곳,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조동리 도화덕 마을(근동에서는 도래덕으로 부른다). 스위스 알프스의 목동이 된 듯, 요들송이 흐르는 풍경 속으로 목장여행을 떠나고자 한다.
영동고속도로 새말나들목으로 나와 안흥방면 우회전, 단풍이 아름다운 42번 국도를 타고 평창시내를 벗어나 4km쯤 가면 조동리·지동리 이정표가 나온다.
여기서 좌회전, 노산분교를 끼고 농로를 따라 가다보면 아스팔트길이 나오는데 눈여겨보면 왼편에 새로 세운 듯한 다리가 있다. 민박 ‘700빌리지’ 푯말을 보고 좌회전, 다리를 건넌 후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어 가파른 산길을 따라 민가가 보이는 곳까지 오르면 도래덕이다. 아래 지동리는 20여호 사는 꽤 큰 마을이나 이 곳은 단 세가구만 들어서 있는 한적한 동네다.
산골에서는 어느 집이든 산자락이 다 앞마당이지만 멀리서 보니 ‘빨간 꽃밭’을 품고 있는 듯한 농가 한채가 눈길을 끌었다. 서울에서 10년 전 이사와 고추농사를 짓는다는 집이었는데 뙤약볕 아래에서 허리 굽어지게 농사지은 생각은 안 나고 아름답다는 생각부터 설친다. ‘타들어간다’는 표현이 맞을까.
‘쟁반 같은 마당’에 가득 멍석을 깔아놓고 빨갛게 널어놓은 고추가 꽃을 피운 듯하다. 그 예쁜 풍경을 카메라에 담을 요량으로 고추밭길을 따라 들어서는데 이 산골에 웬 ‘개조심’ 푯말? 개가 물을 듯이 짖어대는 바람에 빠른 걸음을 옮기기라도 하면 앙칼맞은 이빨을 드러낼 게 뻔한 터라 줄행랑은 못치고 등줄기에 땀이 오싹 나는 곤욕을 치렀다. 아마도 새끼를 품고 있었던 듯하다.
이 곳에서는 꼭 탑산골에 올라보길 권한다. 무엇보다 걷기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횡재 같은 코스다. 9부 능선까지 차로 올라갈 수 있도록 임도가 정비되어 있어 9부 능선의 기온차를 감안해 따뜻한 점퍼 하나만 준비하면 문제없다. ‘700빌리지’에서 4,5km 거리다. 옛 절터임직한 평야지대가 나오면 잘 찾은 것인데 그 곳에 서서 두루두루 굽어보자. 화전민들이 고단하게 일궜음직한 밭에 강아지풀이며 억새가 언감생심 똬리를 틀었다. 특히 만병산·장암산·청옥산·삿갓봉 등 먼발치 산들이 다 내 발 아래에 있는 듯 머리를 조아리는 장관을 연출한다. 시야가 탁 트이는 게 가슴속까지 시원해진다. 일제시대 때부터 있었다고 전해지는 곳으로 간간이 집터도 발견된다고 한다.
이젠 목장을 만날 차례. 소나무·잣나무 등 나무냄새에 후각을 헹구며 산길을 조금만 올라가면 15만평의 너른 초지가 탄성을 자아낸다. ‘휘리릭∼’ 목동의 휘파람 소리에 구름처럼 몰려드는 소떼들. 1백여마리가 넘는데 모두 새끼를 얻는 번식우로 수컷은 단 한마리 뿐이라고. 한해 40∼50마리의 송아지가 탄생한다. 이 소들은 이른 봄 방목을 하면 풀이 없어 스스로 먹이를 구할 수 없게 되는 늦가을에야 우리로 되돌아오는데, 한 칸의 풀을 다 뜯으면 옮겨주는 ‘구간방목’을 한다.
소들은 신통하게도 풀이 떨어지면 문앞으로 몰려와 옮겨 달라고 말을 하듯 소리를 지른다고 한다. 널려 있는 소똥 주변을 눈여겨보면 쇠똥구리의 힘센 몸놀림도 볼 수 있어 아이들을 동반하면 더 없는 자연학습장이 될 듯하다. 염소들도 우람한 대장염소의 눈치를 보며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할 따름이다. 게다가 봄이면 고사리·곤드레 나물·취나물 등이 많아 나물 뜯는 즐거움이 있고, 여름엔 근처에 강이 있어 더위를 모르며, 가을엔 빨갛게 물든 단풍은 물론이고 지천에 널린 머루며 다래 따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겨울엔 비료포대 눈썰매 타는 즐거움이 소복하다.
따라서 4계절 언제라도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달려가기 더없이 좋은 천혜의 자연환경이다. 목장길 따라 트레킹 하거나 청옥산 등산 코스로도 손색없다. 도래덕 근동에서 하루쯤 머물며 주변을 돌아보고 휴식을 취하면 만족할 만한 여행이 될 게다. 이른 새벽 해맞이하러 산 정상에 올라도 좋다. 자욱한 안개를 밀치고 빨갛게 솟아오르는 해와 덩달아 달아오른 연인, 가족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가까이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리라.
생체리듬에 가장 좋다는 해발 7백m. 가파른 숲길을 얼마나 들어갔을까. 도저히 집이 있을 것 같지 않은 평창군 평창읍 조동리 깊숙한 산자락에 민박집 ‘700빌리지’(033-334-5600)가 있다. 이 곳은 서울에서 체육관을 경영하다가 2년 전 귀향한 정철화(47)·백복희(44) 부부가 조심스럽게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건강 휴양원이기도 하다.
이 땅은 본래 정씨 아버지가 군유지를 20년 전 불하받은 대물림 농장이다. 옥수수밭을 포함, 5천평에 눌러 앉아 있는데 건물은 1백50평을 올렸다. 40평형 콘도를 비롯, 방 10개를 두고 있고 3만∼15만원까지 인원 수에 맞게 가격 조정이 가능하다. 게다가 족구장·방갈로·세미나실 등 각종 편의시설을 갖춰 집을 벗어나지 않고도 휴식과 자연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아침이면 곤드레 밥(1인분 5천원)을 해주는데 갖가지 산나물과 더불어 푸짐한 산골 밥상도 이 집만의 특징이다. 미리 예약하면 직접 키운 토종닭 백숙이며 흑염소 불고기 등 건강식도 준비해 준다. 여기 가면 얼마 전까지는 몸에 좋은 야생 복숭아즙 맛을 볼 수 있었는데 요즘엔 호박즙·산야초즙을 직접 내준다.
무엇보다 겨울 눈썰매는 이 집 여행의 백미. 눈이 많이 내려 가파른 지름길이 빙판이 되면 짐은 완만한 임도로 차편을 통해 내려 보내고 손님들은 정씨의 인솔 하에 눈썰매를 타고 1.5km를 내려가는데 그 짜릿한 스릴이란….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동심으로 돌아가 한번 타본 사람이면 두고두고 이야기하는 명물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