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숨은 보석 같은 '용산가족공원'
가는 곳마다 초록 물결이 넘실대는 아름다운 계절이다. 무덥고 습한 공기가 온몸을 감싸 안으며 조금만 걸어도 쉽게 지치는 여름이지만, 이때만 볼 수 있는 청량함 가득한 풍경에 매일 눈이 호강하고 있다.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가 예상치 못한 풍경을 만났는데 박물관 야외에 조성된 거울 못과 석조물 정원을 따라가니 보석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서울의 수많은 장소 중에서 정작 가까운 곳에 존재하던 아름다운 풍경을 수년 동안 놓쳐왔다는 것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다. 아름다운 공원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용산가족공원의 고요하고 따사로운 풍경은 어린 시절 행복했던 추억 속으로 이끌며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용산가족공원
○ 주소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85 (용산동6가)
○ 운영시간 : 매일 00:00 – 24:00
○ 입장료 : 무료
○ 교통편 : 대중교통 이용 권장 (지하철 4호선 이촌역 2번출구)
○ 홈페이지
주한미군사령부의 골프장이었던 부지, 시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이촌·서빙고 일대는 내가 사는 곳에서 지하철로 2~3개 역, 또는 걸어서 동작대교를 건너가기만 하면 될 정도로 가깝지만, 이 넓은 지역을 두루 둘러본 적은 처음이었다. 외국 공관, 이태원 관광특구 등으로 우리에게 좀 더 친숙한 이태원·한남동에 비해 이촌·서빙고 일대는 여전히 주한미군기지가 가장 먼저 생각날 정도로 ‘군사시설’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탓이다.
한강과 인접해 있는 이곳은 군사적으로 역사가 깊은 곳이다. 현재의 주한미군사령부가 주둔하기 전에는 외국 침략군이 주재했었는데 임진왜란(1592년~1598년) 때 왜군이 병참기지로 사용하였고, 임오군란(1882년, 고종 19) 때는 청나라군사가 점유하였으며 갑신정변(1884년)과 러일전쟁(1904년) 그리고 1906년부터 1945년 해방 전까지 일본인들이 군 시설 및 거주지 등으로 사용하였다. 해방 이후 미 7사단 병력이 일본군의 병영을 접수하는 과정에서 주둔하였다가 1948년에 철수하였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다시 용산기지(Yongsan Garrison | USAG YONGSAN)를 사용하면서 현재의 주한미군사령부로 발전하였다.
2017년 7월, 주한미군 지상군 전력의 핵심인 미국 제8군사령부가 평택기지(캠프 험프리스 Camp Humphrey | 험프리스 미국 육군 기지 USAG Humphreys)로 이전, 2018년 6월에는 주한미군사령부가 이전하면서 용산 기지는 우리 정부에 반환되었으며, 반환된 부지는 국가 도시공원으로 조성될 예정이라 한다.
이날 방문한 용산가족공원은 주한미군사령부의 골프장으로 쓰이던 부지를 1992년 11월 서울특별시에서 시민공원으로 조성한 곳이다. 1997년 11월 15일 국립중앙박물관 건립 계획에 따라 넓은 면적의 공원이 축소되었고, 2005년 10월에 국립중앙박물관이 개관했다. 용산가족공원이 내 예상보다 훨씬 오래되었다는 사실에 놀랐는데 무려 29년 동안 이 아름다운 공원을 전혀 몰랐다는 점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서울은 이처럼 인근 지역의 주민들이 즐겨 찾는 숨은 장소들이 많다. 이런 보석 같은 장소들을 발견할 때마다 기쁘다.
용산가족공원은 지하철 4호선 이촌역 2번 출구에서 직진, 공원 정문까지 10분가량 걷거나 국립중앙박물관 내 석조물 정원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잠시 아름다운 공원의 풍경을 감상해 보자.
여름에 만난 이곳의 첫인상은 온통 초록 세상이었다. 너른 잔디밭과 곳곳에 식재된 다채로운 수목들, 심지어 연못조차 초록 생명들이 그대로 투영되어 연녹색 빛을 띤다. 너무나 싱그러운 풍경 덕분에 그저 거닐기만 해도 행복이 가득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이곳의 잔디와 숲, 연못은 주한미군사령부의 골프장으로 쓰이던 부지 그대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산책로와 태극기광장, 놀이시설, 각종 체육단련시설, 자연학습장, 휴양시설 등은 새로 마련되어 시민들이 다양한 여가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너른 공원 곳곳에 놓인 조각 작품들도 빠트릴 수가 없는데 7개의 국가(한국, 프랑스, 스위스, 독일, 영국, 미국, 캐나다)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조각 작품 9점을 기증받아 전시하여 공원의 품격을 높였다. 예술가들의 열정이 스며든 작품들을 찾아 천천히 감상해 보는 것도 공원을 색다르게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는 시민
▼ 연꽃이 가득 피어난 아름다운 연못
함께 방문하면 좋을 장소들
남산과 한강 사이에 있는 용산기지 일대는 주변의 관광명소 어디로든 쉽게 걸어갈 수 있다. 용산가족공원에서 더 나아가 서빙고역에 이르면 ‘용산공원 개방부지(구. 미군장교숙소 5단지)’를 볼 수 있는데 이곳은 대한주택공사(현 LH 한국토지주택공사)가 1986년 미군으로부터 반환받은 땅에 주한 미군 장교 숙소를 건설하여 2019년 말까지 임대·운영했던 곳이다. 이후 정부가 소유권을 확보하여 국민들을 위해 문화·전시·체험 공간으로 개방하였는데 이곳의 분위기는 잠시 다른 나라에 온 것처럼 무척 이국적이다. 시간의 여유가 된다면 이곳을 함께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중단되었지만, 추후 재개될 때 '문화 해설 투어(도보 투어)'와 '용산공원 버스 투어'에 참여해 보자. 이 일대의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