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월드컵 경기를 치르는 스페인-파라과이(6월 7일), 폴란드-포르투갈(6월 10일)선수나 관객 중에 만약 미식가가 있다면 그는 골을 넣든 못 넣든 일단 큰 행운을 잡은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으뜸으로 꼽는 전주음식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운동장에 나갔으니 말이다.
전주를 대표하는 음식은 비빔밥.콩나물국밥.한정식.
주변 지역에서 나는 30여가지 재료로 만든 비빔밥의 오묘한 맛은 축구공이 골 그물을 가르는 짜릿함이 가득하다.
또 뚝배기 그릇에서 바글바글 끓고 있는 콩나물국밥은 그라운드의 뜨거운 열기를 담고 있다.
한정식은 한술 더 뜬다. 온갖 산해진미가 한상 딱 부러지게 차려진 모습은 스타 플레이어의 화려한 묘기를 기대해도 충분할 만한 멋드러진 상차림이다.
◇비빔밥
전주의 비빔밥은 우리나라 어딜가든 흔한 메뉴인 비빔밥과는 다른 점이 많다.
전북대 응용생물공학부 신동화 교수는 우선 재료의 조화를 꼽는다. "콩나물.무.미나리.애호박.황포묵 등 30여가지 천연재료가 적.황.록.백색의 균형된 색을 띠며 영양 면에서도 칼로리.단백질.지방.비타민.무기질의 밸런스가 흐트러지지 않은 완전식품이지요."
여기에다 신교수는 남다른 정성을 덧붙인다. 밥을 맹물이 아닌 사골육수로 짓는 배려, 밥이 식지 않도록 데운 골동반이나 돌솥을 사용하는 정성이 깃들여 있다고.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평양냉면.개성탕반과 더불어 3대 음식의 하나로 꼽혔다고 전했다.
전주 곳곳에 ´전주 비빔밥´이란 간판이 눈에 많이 띄지만 ´한국관(063-272-9229)´이 가장 붐빈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에 취한 외국인도 많이 찾는 집이다.
비빔밥을 주방에서 미리 고추장과 참기름으로 비비고, 그 위에 화려한 고명을 얹어 내는 ´성미당회관(063-287-8800)´의 비빔밥도 먹을 만하다.
13년 전 뒤늦게(?) 가세한 공단입구의 갑기회관(063-211-5999)도 비빔밥 전문점으로 확실한 자리를 잡았다. 비빔밥에 녹두묵.고구마조림.파김치 등 밑반찬이 푸짐하게 따라 나온다.
업소별로 차이가 있으나 육회가 들어간 육회비빔밥은 8천~1만원. 일반 비빔밥은 6천~8천원.
◇콩나물국밥
일반적으로 전국의 콩나물 중 전주 콩나물을 으뜸으로 친다.
기후.수질이 콩나물 재배에 안성맞춤인 데다 일명 쥐눈이 콩으로 불리는 이 지역의 서목태(鼠目太)로 기른 콩나물이 질기지 않고 연하며 숙취해소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
이를 이용한 콩나물 국밥은 당연히 해장 음식. 묵은 김치를 썰어 넣어 얼큰하면서도 산뜻하다. 김치나 깍뚜기를 곁들이며 간은 새우젓으로 맞춘다. 계란 반숙을 내기도 하고, 조미김을 국밥에 뜸뿍 넣어 먹기도 한다. 뚝배기 가득한 푸짐함은 삶의 애환 속에서도 넉넉했던 서민의 인정을 느끼게 한다.
원래 전주의 콩나물 해장국밥은 뚝배기에 찬밥과 콩나물 등을 넣고 푹푹 끓여낸 것.
그러나 요즘은 끓이지 않고 밥을 뜨거운 육수에 말아서 내는 일명 ´남부시장식 국밥´과 공존하며 서로 자웅을 겨루고 있다.
전통 콩나물국밥의 대표격인 음식점은 삼백집(063-284-2227). 멸치.다시마 육수를 부어 끓인 것으로 한순간 방심해 국물을 떠먹었다가는 입천장을 데는 수가 있다. 달걀 프라이 한 개를 곁들여 주며 3천5백원을 받는다.
남부시장 스타일을 개발해 전파한 곳은 남부시장 안에 있는 ´현대옥´. 전화번호도 없는 허름한 시장 뒷골목의 찾기 어려운 집인데 손님들이 끊이질 않는다. 주인할머니가 오전 6시부터 오후 1시30분까지만 고집스럽게 말아내는 데 값은 4천원. ´깔끔´을 원하면 다른 곳을 찾는 게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