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는 인연이 아닌가 보다’하고
지금의 만남에는
어떤 조건도 끼어 들 자격이 없습니다.
과거의 흔적이란
일단 완료完了된 상태에 지나지 않습니다.
생명이 활동한다는 것은 언제나 이기에,
과거를 연장한 만남이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새로운 만남일 뿐이며,
시간적인 단락으로 본다면 진행형進行形으로 전개 됩니다.
앞으로의 삶에 대한 태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이나 직위나 같은
부족한 조건이 아나지면 형편이 피겠지.’가 아닙니다.
최상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해서
최상의 행복이 저절로 따라 오는 게 아닙니다.
자신의 삶을
신뢰하는 만큼 조건을 누리고 사는 것입니다.
‘복福에 치었다’든가,
‘복福에 겹다’는 말에 담긴 속내와 같이,
감당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조건의 충족이 도리어 해害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나름대로 한다고 했는데도
생각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했다면,
그것은 후회와 원망할 일이 아닙니다.
아쉬움은 분명히 남겠지만,
‘아마 나와는 인연이 없는가 보구나.’하고
내 버려두면 그만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미련 때문에 많은 낭패를 보곤 합니다.
못난 자신을 합리화라는 게 아닙니다.
생명의 무한한 능력이
다른 좋은 기회를 맞으려 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나의 삶은 본래부터
조건화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다가오는 어떤 조건도 최상의 조건으로 작용합니다.
한 여름에 눈에 덮인 스키장은 연상하거나,
추운 날에 삼복더위를 떠올린다는 것은 삶의 진상眞相이 아닙니다.
‘여름은 더워서 싫고 겨울은 추워서 싫다.’고 하는
사람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를 그답게 하는 자신의 생명,
스스로 선택한 조건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더울 때는 옷을 벗고,
추울 때는 옷을 입으면 그만입니다.
나 자신의 바깥에서
생명의 가치를 구하려는 시도는
거지의 구걸과 다르지 않습니다.
자기가 선택한 삶인데도 누리고 살지 못한다면,
처음부터 아예 갖고 있지 않은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요즘은 휴대폰이 대중화 되었습니다.
휴대폰 배터리의 수명이 다 되어서,
세 것을 사러가니 그러지 말고
휴대폰을 통째로 바꾸는 게 더 싸다는 제의도 받곤 합니다.
멀쩡한 기기를 버리라는 제의는
신상품을 하나라도 더 팔려는 기업의 판매전략에 맞물립니다.
그러면 하나 산다면 누구의 탓일까요?
자신의 잘못은 잊고 타他를 탓합니다.
만일 그 상품을 사게 되면
희열에 빠지며 포장지를 뜯어냅니다.
묵약黙約이 이루어지게 되면,
상황이 급진전이 됩니다.
※ 묵약: 말 없는 가운데 뜻이 서로 맞음.
또는 그렇게 하여 성립된 약속으로 거래되는 일.
애지중지하던 휴대폰에는 눈길 한 번 던지지 않고,
겹겹으로 싼 포장지를 뜯으며,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만족해합니다.
우리는 바로 업業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업業이란 어쩔 수 없이 결정된 숙명이 아닙니다.
생명이 선택한 운명을 가리킵니다.
업業으로 인해서로
나를 제외한 세상사는 눈에 띄지도,
귀에 들리지도 않는 법입니다.
남이나 말질과 비교하며,
구걸하고 살기 위해 태어나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복福을 받지 못했구나.”가 아니고
지금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숨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는 것만이라도,
음식을 씹어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저 고맙습니다.’하며 매양 그런 마음으로 살면 됩니다.
더 큰 것 잡으려다 깡그리 망칠 수 있습니다.
나와의 인연이 아닌 것에 집착하십시오.
이것이 오늘 드리는 따끈따끈한 글입니다.
행복한 시간들로 가득 차시기 바랍니다.
2023년 09월17일 오전05:35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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