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2권 4-4 4 능묘陵廟 능과 사당 4 무후묘武侯廟 무후사당
고묘황량수로창古廟荒凉樹老蒼 옛 사당 황량하고 나무는 늙고 푸르른데
비궁년전거호상臂弓撚箭據胡床 활을 들고 살 만지며 걸상에 앉았으니
유생부한탄조기猶生扶漢吞曹氣 한漢을 도와 조조曹操를 잡으려는 기운이 생기 듯하여
불부공성파적장不腐攻城破敵腸 성城을 치고 敵을 깨려는 마음은 썩지 않았네.
사당은 묵고 나무는 늙었는데
활을 들고 걸상에 앉았더니
조조라도 잡을 듯 기운이 뻗고
적을 쫓는 의기 되 살아 나네
측이사문선주촉側耳似聞先主囑 귀 기울여 선주先主의 유언을 듣고 있는 듯
요순여토출사장搖唇如吐出師章 입을 엷은 출사표出師表를 토해냄이리.
소문충식서제벽蘇文虫食書題壁 이끼 끼고 벌레 먹은 글씨 벽에 써 있는데
지시남양충무당知是南陽忠武堂 그것이 南陽의 충무사忠武祠임을 알겠네.
귀 기울여 선주의 유언을 듣고
입으로는 출사표를 토해내는 듯
벽에는 이끼긴 글월들
여기가 남양의 충무사일세
경경단심사불마耿耿丹心死不磨 훌륭하신 일편단심 죽어도 안 없어져
령인요상편자차令人遙想便咨嗟 멀리서 생각하며 탄식하게 하네.
일생공업금안재一生功業今安在 일생의 功業 이제 어디에 있는가?
만안풍광별이과滿眼風光瞥爾過 눈에 가득한 풍광 잠깐 사이에 지나갔네.
거룩한 마음은 죽어서도 성하여
멀리서 생각하며 탄식케 하네
한평생 쌓은 공 다 어디 가고
눈부신 풍광도 순간에 지나가니
충무유심유미취忠武有心猶未就 충무의 마음 있었으나 아직 성취 못했는데
상첨무명욕여하尙瞻無命欲如何 상尙과 첨瞻이 운명 없음 어찌하려 하는가?
지금문자공소수至今聞者空搔首 이제까지 듣는 사람 공연히 머리 긁어
진세종래흠사다塵世從來欠事多 진세에는 종래로 잘못된 일 많이 있네.
충무의 마음 못 다한 터에
아들 손자 불운은 어이할거나.
이제 와서 들으며 머리 긁적이니
흠 많은 세상 틀린 일도 많네
►무후묘武侯廟
제갈양諸葛亮의 시호가 충무후忠武侯인데 후세에는 무후武侯라 했다.
그 사당이 우리나라의 남양南陽에 있었는데 제갈 양이 출세하기 전에
살던 곳의 지명이 남양이기 때문에 그 이름이 같은 남양에 사당을 지은 것이다.
►출사표出師表 조씨曹氏의 위魏나라를 치러 갈 때 제갈 양이 임금에게 올린 글․
충성심이 서려 있는 明文이다.
►상尙·첨瞻
상尙은 제갈 양의 손자이고 첨瞻은 제갈 양의 아들이다.
그들은 후일 촉한蜀漢이 위군魏軍에 함락될 때에 같이 전사하였다.
전에 경기지방을 유람하면서 남양도후부에 들르니
생각지도 않던 충무사忠武祠라는 사당이 있었다.
제갈량諸葛亮이 살았던 남양南陽의 고을과 같다 하여 사당을 세우고
제갈량의 시호를 따서 사당의 현판을 삼았다는 것이었다.
/이문구 장편소설 <매월당 김시습>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