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이야기하다
여름이면 보라색 나팔꽃이 아랫집 정희네 수수깡 울타리에서 피었다. 가는 줄기로 수수깡을 타고 오르면서 피는 보잘것없지만 작아서 앙증맞은 꽃. 그 꽃을 보려고 나는 아침마다 울타리 밖을 서성거렸다. 꽃은 씨를 뿌리고 가꾸지 않아도 저 혼자 피고 졌다. 그 흔한 꽃이 우리 집 토담에서는 볼 수 없기 때문이었을까? 정희가 부럽기까지 했다. 어릴 때의 기억이다.
이런 기억 때문인지, 어디서든 나팔꽃을 보면 반갑다. 어느 날 아침 동네를 한 바퀴 돌다 유치원 하얀 울타리에서 커피잔만 한 빨간 나팔꽃을 만났다. 탐을 내며 한참을 바라보았다. 씨 여물기를 기다렸다. 다음 해 여름 우리 집 울타리에서도 나팔꽃이 피었다.
나팔꽃은 울타리를 녹색 줄기와 잎으로 뒤덮고는 쉴 사이 없이 꽃을 피워낸다. 내 손길이 바빠진다. 덩달아 혼잣말도 많아진다.
밤사이 길어진 줄기가 허공에서 춤을 추고 있다. 붙잡을 걸 찾느라 흔들어대는 줄기를 낚아채면서
“헛손질하지 말아라. 그러다 네 줄기만 상한다.”
라며 잡아 끌어들이고선 아래쪽에다 줄기를 묶어놓는다.
“자, 여기서부터 다시 오르는 거야.
여러 포기가 줄기를 뻗다 보니, 서로의 줄기를 타고 오르면서 꼬이고 엉킨 사이에서 꽃봉오리들이 꼼짝하지 못한다. 나는 엉킨 실타래 풀 듯이 줄기들을 살살 풀어서 이쪽저쪽으로 갈라놓는다. 줄기들은 가늘고 부드러워서 내가 하는 대로 고분고분 따라온다.
“아이구, 고마워. 고집부리다 애써 키운 줄기 부러지면 너도 아프지만 나도 아프거든.”
한나절 만에 지는 꽃. 시든 꽃을 따낸다. 한두 송이도 아니고 아침저녁으로 시든 것을 따내는 일이 번거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지는 대로 씨를 맺어 그때그때 따내야 씨로 가는 양분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늘 미안한 마음이다.
바로 진 꽃을 따낼 때는 톡톡 잘 떨어진다. 그런데 며칠 지난 뒤 그러니까 꽃받침 속에 통통하게 씨가 생기면 웬만큼 힘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 가위로 잘라 내야 할 만큼 단단해진다. 내 손에 부딪히는 저항감에서, 품은 자식을 내 줄 수 없다는 의지가 압박으로 다가온다. 아무 저항 없이 순순히 받아들일 때와 달리 씨가 생기면 자식 품은 어미처럼 있는 힘을 다해 막아내려는 태세이다.
나는 이런 나팔꽃을 달랜다.
“미안해. 네가 잘못한 게 아니고, 내가 잘못하는 거야. 하지만 어쩌겠어. 네가 품고 있다고 해서 다 자식이 되는 것은 아니잖아. 너는 꽃나무야. 네가 보여줄 것은 씨가 아니라 꽃이야. 내가 너를 가꾸는 것 또한 꽃을 보려는 것이고. 그러려면 씨 맺는 일을 희생해야 해. 씨는 그저 조금만 있어도 충분하거든.” 시들고 있는 꽃을 찾아 한 움큼씩 따내면서 위로인지 변명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린다.
나팔꽃은 허공에 대고 헛손질하다가도 어느 순간 되돌아와 줄기를 뻗고 있다. 울타리 밖으로 나갔다가도 용케 돌아온다. 줄기는 위로만 오르려고 한다. 나는 이런 줄기들을 하나하나 잡아다 아래로 옆으로 매어놓는다. 어느새 초록 잎이 수채화 물감 번지듯 울타리에 번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애쓴 보람을 느끼면서 한마디 또 한다.
“너희를 이렇게 예쁘게 가꾼 건 나야. 너희는 위로만 오르려고 하잖아.”
이처럼 나팔꽃뿐만 아니라 우리 집 다른 꽃들도 나의 혼잣말을 들으며 자란다.
내가 꽃들을 보며 하는 모든 말이 나에게 하는 말이란 걸 깨닫는다. 내가 무언가를 가꾸고 돌본다는 것, 관심 가지고 아낀다는 것은 결국 나를 향한 손길이며 눈길인 것이다. 내 주변을 꽃들 대하듯 따뜻한 손길을 내밀고, 따뜻한 눈길을 보냈다면, 지금쯤 좀 더 성숙한 모습일 텐데…. 뒤늦은 반성이다.
굳은 흙 헤치고 나온 떡잎을 보며, 반갑고 신기해서 요리조리 살피는 일. 꽃봉오리 보며 그들이 펼쳐낼 색채와 향기를 그리며 설레는 일. 부러진 꽃대 일으켜 세우며 간절한 마음을 품는 일. 한 생을 마무리한 마른 대 뽑아내면서, 그들과 함께 한 꽃의 시간을 돌아보는 일. 이렇게 나는 꽃밭에서 그들을 돌보고, 그들은 나의 속 뜰에서 말없이 나를 가꾼다.
늦가을 뒤늦게 싹을 틔우고 찬바람에 겨우 내 엄지손가락만 해진 풀꽃 줄기에 꽃봉오리가 맺혔다. 어떻게든 꽃을 피워내고야 마는 한해살이 꽃나무들. 이들은 어떤 화려한 꽃 무리 속에서도 절대 기죽지 않는다.
오늘도 풀꽃 앞에 앉아서, 어느 시인의 시를 읊는다.
“기죽지 말고 살아 봐/ 꽃 피워 봐/ 참 좋아.”(나태주,「풀꽃 3」)
이경수
2002년《계간수필》로 등단.
수필집『또 다른 우물』이 있음.
수필문우회. 계수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