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달리 정이 가는 사람이 있듯 나무도 그렇다. 부산시민공원 남문에 자리 잡은 녹나무이다. 어린가지가 녹색을 띤다고 녹나무라 부르고, 향기가 난다고 향장목香樟木이라고도 한다. 시청사 옆 고물상 자리에서 어느 누구의 시선도 받지 못하고 백년이 넘도록 서있던 외톨이가 시민공원 알짜배기 나무로 대접받게 된 남다른 발자취 때문이리라.
녹나무는 희귀나무이면서 부산 땅과 사람들에게는 더 없이 친숙한 나무이다. 우리나라는 제주도에만 자생하는데 삼성혈 주위에 군락이 있다. 남해안에도 아주 드물게 자라는 난대성나무로 지금은 생장 북방한계선이 부산까지 올라온 것 같다. 추위를 무릅쓰고 여기까지 찾아와 뿌리를 내린 것을 보면 이 땅과 무슨 인연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부산에는 상록활엽수들이 많다. 북쪽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사철 푸른 잎으로 거리의 품격을 더해주는 고마운 나무들이다. 제주도 여행에서만 볼 수 있었던 후박나무가 뿌리 내린 지도 20여년이 넘었다. 만덕터널 낙동강 쪽 가로에서 추위에 떨던 후박나무도 이제 제법 자리를 잡았고, 해운데 해수욕장에서도 이미 친근한 나무가 되었다. 하얀 꽃에 까만 열매를 달고 4촌지간인 키다리 광나무와 땅딸이 쥐똥나무는 여정실女貞實과 남정실南貞實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이들은 고혈압과 당뇨에도 효능이 있다.
아파트 화단에 빠지지 않으면서 '아직도 왜 나를 모르나요.'라고 서운해 하는 아왜나무는, 이름은 생소하지만 누가 보아도 '아하 이 나무' 할 정도로 가까이에 있다. 이와 비슷하게 생긴 굴거리나무는, 강추위가 오면 잠시 잎을 오므리고 엄살을 떨다가 금방 생기를 찾는다.
송도해안볼레길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돈나무는 조경수로도 손색이 없고, 화분에 앉아 앙증맞고 친숙한 자태를 뽑내며 이제 안방까지 넘보고 있다. 불에 탈 때 꽝꽝 소리를 내는 꽝꽝나무도 금정산 등산길에서 군락지를 볼 수 있다. 하늘을 찌르는 편백나무 아래에서도 기죽지 않고, 2년에 한 번씩 도토리까지 내어주는 가시나무는 성지곡에서 만날 수 있다.
요즘 길거리에는 새로운 꼬마나무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겨울의 한 복판인 1월에 만개하는 애기동백은 큰 동백보다 추위에 더 강하다. 가시나무 같지 않은 모양새를 하면서 가시를 달고 있는 홍가시나무도 인도와 차도의 담장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꽃이 시들기 전에 댕강 떨어진다는 꽃댕강나무는 가녀린 몸매로 추운 겨울을 잘도 참는다. 이들이 부산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것은 지구온난화 영향도 있겠지만, 나쁜 일만은 아니다. 서울이라면 식물원과 공궁에서나 볼 수 있고, 남해안이라도 이렇게 다양한 아열대성 나무가 뿌리내리는 곳은 드물다.
그 중에 으뜸이 시민공원 녹나무다. 우리나라에는 제주도에 두 그루, 남해에 한 그루와 함께 100년이 넘는 나무는 네그루가 전부라고 한다. 추위에 약하여 부산만해도 자생목은 보기 어렵다는데 어떤 연유로 그 자리에 왔는지도 궁금하다. 온난화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이니 지금보다 더 추웠으리라. 긴 세월 동안 녹 쓴 양철 울타리에 가지가 찢겨가면서 뿌리는 쓰레기더미 속을 비집고 살았다. 사람들의 외면 속에 자라다보니 오히려 더 독한 마음을 먹고 살아남았는지 모를 일이다. 도로확장공사로 잘려나갈 위기에 처하고서야 빛을 보게 되었다.
땅 주인이 이별을 나누는 자리에서 그를 알아본 것이다. 수목 폐기처분으로 받은 250만원을 만지작거리면서 잠시 망설인 후였다. 몇 십 년을 함께 한 주인이지만 보내는 마당에서 진가를 알았고, 녹나무는 풍전등화가 될 때까지 묵묵히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이다. 쓰레기더미 태생에서 부산시민의 사랑을 받는 시민공원 남문에 우뚝 서게 된 녹나무야말로 고물더미 속에서 찾아낸 보물이다. 땅 주인의 안목이 없었다면 가지는 엔진톱에 잘려나가고 뿌리는 괴물 일각수에 파헤쳐져 흙이 되었거나, 기껏해야 어느 집 거실에 가구로 놓였으리라. 사람이 헤어지는 자리에서 이보다 그적이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마침 시민공원이 만들어지고 있었던 일도 그의 운명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황량한 들판에 공장건물이 들어서고 연기를 내뿜는가싶더니, 신작로가 8차선으로 넓어지고 뜸을 좀 들이더니 시청청사가 들어왔다. 녹나무는 어디선가 많은 나무들이 이사를 올 때는 이를 지켜보면서 부러워했으리라. 동족은 한 그루도 보이지 않아 더 외로움을 탔을지도 모르겠다. 청사 앞뒤 쪽 공원에서 올망졸망한 후배들이 시민들의 사랑을 받을 동안 속은 상하지 않았을까. 해마다 잎을 갈아입는 활엽수와 달리 사시사철 잎을 매달고 기다리는 모습은 묵묵히 살아온 어떤 인생 같기도 하다. 죽음 직전까지 좋은 자리를 향해 몸부림치고, 끼리끼리 몰려다니며 이상한 궁리나 하고, 남의 사랑을 시샘하는 인간들과는 사뭇 다르다.
녹나무가 자리를 옮기는 날이다. 대형크레인 2대와 트럭 8대가 동원되고 경찰순찰차 7대의 호위가 따랐다니 대단한 정성이다. 온몸에 붕대를 감고, 여름이라 광합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잎만 남긴 앙상한 몸으로 아슬아슬 육교 밑을 통과하여 새 보금자리를 찾은 것이다. 알성급제하여 금의환향한 이도령의 행렬에 진배없고, 주나라 재상 강태공의 등용을 닮은 것도 장구한 세월 불평 없는 기다림의 열매였으리라.
지금 녹나무가 서 있는 시민공원은 6 · 25 전쟁 통에 하야리아 부대가 주둔(1950~2006)하면서 시민들과 한참동안 멀어졌다. 가깡누 현대사에서는 원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전화위복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시민들과 소원했던 세월이 없었다면 이미 그 자리는 울창한 아파트 숲으로 시민들의 가슴을 더욱 답답하게 조였을 것이다.
녹나무는 하늘을 찌르는 기상보다 땅을 넓게 감싸는 포근함이 있다. 처음 옮겨 심었을 때는 꼭대기 가지가 대부분 잘려나가고 없어 바늘이 하늘을 찌르는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새 가지와 잎을 내주어 둥그스름한 손바닥을 벌려 하늘을 받들고 있다. 어머니의 넉넉한 품을 시민들에게 제공한다고 '어머니의 나무'라고 지었다니 이보다 더 적절한 애칭이 있겠는가. 녹나무는 병충해에는 강하고 추위에는 약하나, 추워질수록 잎의 광택이 더한다니 다행이다.
새 생명이 싹을 틔웠다. 천운을 타고 혜성처럼 나타난 녹나무는 날이 갈수록 세상에 윤기와 향기를 뿌려줄 것이 틀림없다. 식물을 유달리 좋아하다보니 고물상에 있을 때부터 내 마음 한 구석에 담아두었던 적이 있다. 오랜 직장생활을 접고 새로운 인생 첫발을 내딛는 나에게도 희망을 주었다. 더 좋은 자리를 찾아간 녹나무를 보고 바뀌는 환경에 대한 두려움도 많이 줄었다. 시민공원 1호 나무로서 지금도 손색이 없지만,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을수록 품을 더 넓혀 우리를 감싸줄 것이다.
시민공원 나들이 때 꼭 한 번 안아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