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정(崇貞)기원후(紀元後), 숭정후(崇貞後), 숭정후재, 숭정재
복사본 숭정 3기묘는 숭정후 기묘 3번째라 하여 숭정 3후 기묘라 하는 거. 년대가 맞지 않아 저도 의아스럽습니다. 다만 제가 보기에는 필사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전에 저한테 말씀해주시길 1759년 기묘보, 1999년 기묘보가 있고, 그 앞의 족보는 1972년 임자보라고 하셨습니다.
분명한 것은 숭정 3 기묘는 간지표를 보니 연도가 1819(숭정후기묘: 1699+120년)년입니다./ 위이환
야운 위이환 님, 숭정 기묘는 1639년, 숭정2 기묘는 1699년, 숭정3 기묘는 1759년, 이런 거 아닐까요?/ 호산 위신복
湖山 위신복 님
숭정기묘 1639,
숭정후기묘 1699,
숭정2후기묘 1759,
숭정3후기묘 1819년으로 알고 있습니다./ 위이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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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위이환
숭정은 중국 명나라의 제16대 황제인 의종(毅宗) 숭정제(崇禎帝) 주유검(朱由檢) 때의 연호이다. 1628년을 원년으로 1644년까지 17년 동안 사용되었다. 실질적으로 명나라의 마지막 연호이며, 숭정 17년(1644년)은 청나라 세조(世祖) 순치제 때의 연호인 순치(順治) 원년이기도 하다.
본래 왕이 물러나면 연호도 끝나는데 우리나라 사대부가들은 친 명나라였기에 명나라가 멸망되었음에도 사용했다. 숭정17년 이후에도 어떤 방식이든 숭정연호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숭정연호를 살리면서 간지와 함께 병기했다.
숭정연호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숭정을 넣어야 했다. 그렇게 나온 것이 바로 숭정1이니, 숭정2이니, 숭정3이니, 이런 표기 방식이 등장했다. 또 다른 연호표기식인 숭정후도 나왔다. 숭정후1, 숭정후2, 숭정후3 등이다. 기준점 정해진 것이 없어 빚어진 표기이다. 심지어 집안마다 또는 개인마다 달랐다.
사실 헷갈리는 이유는 알고보면 숭정기년인 1628년을 기준할 것이냐 아니면 1644년을 기준하느냐의 차이다.
1644년 이후에 숭전후나 숭전1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차이점이 생긴다. 가령 숭정1 기묘년이라면 1628년부터 기준, 숭정 기묘년은 1639년이 된다. 숭정2 기묘년이면 1699년이며 숭정3 기묘년은 1759년이 된다.
반면 숭정후를 사용할 경우, 가령 숭정후 기묘년이라면 숭정연호 끝난 후인 1644년 이후부터 오는 기묘년을 이른다. 즉 1699년이 숭정후 기묘년이다. 숭정후1이 생략된 것이다. 그럼 숭정후2 기묘는 숭정후 1699년에서 60이 더해진다. 1759년이다. 숭정후3도 마찬가지이다. 1699년에 간지가 60년 주기인까 120년을 더하는 것이다. 바로 1819년이다
자칫 60년 차이가 생길 수 있으니 이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다음은 숭정후를 쓰는 일람표이다. 숭정재후는 60년을 더한다. 숭정삼후는 120년을 더한다. 숭정사후는180년을 더하면 된다.
숭정연호 숭정기원후 연호 @ 한국 중국 일본 연호 대조표 - http://year.gok.kr/?sub=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