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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4장 16-18절. 낙심하지 않는 이유4. 요약설교
16절.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1. <그러므로>란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다시 살아나고, 박해를 받아도 다시 살아나고, 죽음을 당해도 다시 부활할 것이므로”란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체험을 많이 했습니다.
즉 사도행전 14장의 루스드라 전도 때는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었으나, 하나님이 다시 살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6장의 빌립보 전도 때는 점쟁이 주인의 고소로 매를 많이 맞고 감옥에 갇혔으나,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우심으로 풀려났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18장의 고린도 전도 시에는 유대인들이 바울을 총독에게 처형시켜달라고 고소했으나, 총독이 기각시킴으로써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9장의 에베소 전도 시에는 수만 명의 군중이 바울을 죽이려고 데모를 했으나, 서기관이 불법 집회라고 해산시키므로, 바울이 살아났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 살려주시는 체험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박해를 당하고 어려움을 당해도 하나님이 구원해주시므로, <그러므로>라고 했습니다.
2.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 하노니>란 우리가 아무리 낙심할 만한 환경을 만나도,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시므로 결정적으로 낙심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8절에는 바울이 에베소 전도 시에 살 소망이 끊어지고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살려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려주신 이유는 고린도후서 1장 9절에 말씀한 대로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3. 바울이 여기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 한다>고 한 것은 고린도 교회의 율법주의자들이 아무리 바울을 거짓 사도니, 헌금을 횡령해 먹는 도둑놈이니, 말이 시원찮은 사람이라느니, 고질병을 앓는 사람이라느니, 여러 가지로 비방하고 모함해도, 바울은 낙심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바울이 당하고 있는 고린도 교회 상황은 낙심할 만한 것이었지만,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신 경험으로 볼 때, 지금 고린도 교회의 문제도 분명히 잘 해결해주실 줄 믿고 낙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4.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오랜 신앙 체험을 통해서 성숙된 신앙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중직자를 세울 때는 초신자를 세우지 말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3:6.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그러므로 교회 중직자를 재판할 때는 신중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5:19. 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거에 하나님께서 어려운 시험에서 건져주신 경험을 회상하면서, 현재 어려움을 당해도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핍박을 받아도, 굳센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 여기서 <겉사람>이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육체를 가진 인간을 가리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속사람>은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 태어난 성도의 영혼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겉사람과 속사람이라는 두 가지 속성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고린도후서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로마서 7: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에베소서 3: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2. 겉 사람은 세월이 갈수록 더욱 늙어가고, 낡아지고, 힘이 없어집니다.
이것은 별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속사람은 세월이 갈수록 더욱 새롭고, 강건하고, 소망이 넘쳐납니다.
이처럼, 속사람이 도리어 새로워지는 것은 중생한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더욱 더 새로운 체험적 지식을 얻어가며, 결국에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에베소서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3. 이처럼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지려면, 매일 기도하고, 매일 말씀 안에서 새로운 은혜를 얻어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세상 연락에 빠져 살면, 속사람도 겉사람과 함께 낡아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5장 5-6절에는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데 교회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기도 안 하고, 성경 말씀의 은혜를 받지 못하니까, 실상 죽은 자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3: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4. <날로 새롭도다>고 했습니다.
즉, 매일 기도하고, 매일 말씀의 은혜를 받는 성도는 매일 새로운 믿음으로 새로운 은혜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육체의 욕심과 세상 향락을 따라 사는 사람은 날로 낡아지고, 침체되어 갈 뿐입니다.
찬송가 295장에는 <한이 없이 넓은 우리 주의 사랑 날로 더욱 귀하다>고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찬송가 266장에는 <하늘나라 즐거움이 매일 새롭도다>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날마다 죽어가면서 날마다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면서 살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날마다 기도하여 성령의 은혜를 받고, 날마다 하나님 말씀의 은혜를 받으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속사람이 새로워지는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17절.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 이 성경 구절에서는 두 가지 내용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즉 하나는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영광을 얻기 위해서는 이 세상 나라에서 환난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 세상의 환난에 비해서 하늘나라의 영광은 훨씬 더 크고 중하다는 것입니다.
2.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하늘나라 영광을 얻기 위해서는 불신자들에게 당하는 환난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도 천국 복음을 전하시고, 병자들을 고쳐주셨지만, 불신 유대인들에게 온갖 핍박을 당하고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도 천국 복음을 전해주고,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었지만,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과 우상 숭배자들에게 핍박과 환난을 당했습니다.
사도행전 14장에서는 유대인들이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은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살려주셨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서는 귀신 들린 여종을 이용해서 돈벌이를 하던 사람들이 자기들의 여종에게서 바울이 귀신을 쫓아냈다고 관가에 고발해서, 바울은 빌립보 성의 상관들에게 매를 많이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기도하고 찬송할 때,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살려주셨습니다.
사도행전 18장에서는 유대인들이 바울을 갈리오 총독에게 고소했습니다.
그러나 갈리오 총독이 고소를 기각해서 바울이 살아났습니다.
사도행전 19장에서는 에베소 성의 아데미 우상숭배자들 수만 명이 모여서 바울을 죽이자고 데모를 했습니다.
그러자 고린도후서 1장 9절에 말씀한 대로, 바울은 살 소망이 끊어지고, 죽은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에베소 성 서기관이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함으로써, 하나님이 바울을 살려주셨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영생 얻는 복음을 전해주고, 병자들을 치료해주었지만, 유대인들과 우상 숭배자들에게 환난과 핍박을 당했습니다.
3. 이것은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불신자들에게 영생 얻는 복음을 전하고 사회에서 병자를 도와서 고쳐주고 선한 일을 하면, 불신자들은 감사하지 않고, 사람들을 현혹한다고 핍박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의학 지식과 약품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고,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면 복을 받고 자녀가 잘 된다고 하면, 불신자들은 하나님이 어디 있냐고 비방하고, 이 세계는 자연적 진화로 생긴 것이라고 하고, 자기가 노력하고 의사와 약을 믿어야지, 기독교는 비과학적이라고 비방을 합니다.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불신자들 마음 가운데는 미혹의 영, 마귀가 역사하고 있어서, 하나님이나 창조나 하나님의 섭리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특히 우리나라에는 반기독교운동을 하고 있는 적그리스도 ‘뉴에이지 운동가’들이 있습니다.
기자들 가운데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 기독교를 멸망시키고, 교회를 다 없애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돈을 모아서 기독교 박멸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교회가 세상에서 선을 행하고, 진리의 말씀을 전해도, 이 적그리스도 운동가들은 기독교회를 없애려고 합니다.
이처럼 이 세상은 마귀가 역사하는 곳이라서 참으로 하나님과 성경을 믿고 신앙생활을 잘하고, 복음과 선행을 베풀어도, 성도들은 세상에서 환난과 핍박을 당합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는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8장 17절에는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운다고 했으며,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고난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디모데후서 2: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4. 예수님이나 바울 사도만이 아니라 베드로 사도도 너희가 악행 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4:13-16.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처럼 예수님을 진실히 믿고, 복음 전도를 하려는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불신자들에게 고난을 받습니다.
5. 그러나 이 세상의 고난은 장차 천국에서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즉 이 세상에서 잠시 받는 작은 환난이 장차 천국에서 지극히 큰 영광을 받게 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라.
이 세상에서도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현재 고난은 장차 성공과 영광을 가져다준다고 교훈합니다.
즉 ‘인내는 쓰나 열매를 달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고등학교 때 고생하면, 좋은 대학에 가고 성공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젊었을 때 고생하면, 늙었을 때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말합니다.
농부들은 무더운 여름에 땀 흘려 식물을 가꾸어야 가을에 풍성한 수학을 거둡니다.
그러나 여름에 덥다고 심고 가꾸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습니다.
개미와 베짱이의 이야기가 그것을 잘 가르쳐주고 있지 않습니까?
즉 베짱이는 여름 내내 노래만 하다가 겨울에 거지 동냥을 하지만, 개미는 여름 내내 힘써 일해서 겨울 내내 따뜻하고 배부르게 산다는 것 아닙니까?
이와같이 우리가 현 세상에서 예수 믿고 복음 전하다가 고난을 당하면, 장차 천국에서 크고 영원한 영광을 누리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예수님도 하늘나라 영광을 바라보고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다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모세도 하늘나라 상급을 바라보고, 애굽의 부귀와 영광을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당했습니다.
히브리서 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바울도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이처럼 우리가 현세에서 주님을 위해서 고난과 환난을 당하면, 내세 천국에서 크고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를 위해서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아두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19-20.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그리고 바울 사도도 이 세상에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천국은 영원하다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그리고 우리의 육신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있으므로, 우리가 하늘나라를 간절히 사모한다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5:1-2.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심지어 피조물들도 탄식하므로 썩어짐을 벗어나서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자유에 이르기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8: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더구나 우리 성도들은 탄식하면서 천국 부활의 영광을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8: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과 복음 전도를 위해서 당하는 고난을 불평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손들에게 복을 주시고, 장차 하늘나라에서 크고 영원한 영광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18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1. 여기서 <주목한다>는 것은 간절히 사모하고 소망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과 성도들이 소망하는 것은 이 세상 나라의 것이 아니고, 영원한 하늘나라의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5장 2절에서는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고 했습니다.
즉 바울은 육신의 몸을 어서 벗고, 부활의 몸을 입기를 간절히 사모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8장 23절에도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고 했습니다.
즉 바울은 속으로 탄식하면서 썩어짐에 종 노릇하는 육신의 몸을 어서 벗고, 부활의 몸으로 덧입기를 간절히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1. 왜 바울이 하늘나라의 것을 주목하고 사모하는지 그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보이는 것이란 이 세상의 것을 말하며, 보이지 않는 것이란 하늘나라의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바울과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이 세상 나라의 것이 아니고, 하늘나라의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24-25절에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고 했습니다.
2.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즉 보이는 이 세상 나라의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하늘나라의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 나라에서 사는 것은 100년 정도의 잠깐 세상이지만, 하늘나라는 영원합니다.
저는 요즘 인터넷에서 장수 프로그램을 자주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산속에서 사시는 분들의 프로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100세를 사시면서도 건강하게 사시는 분들은 얼마나 보기가 좋은지 모릅니다.
그리고 도시를 떠나서 산속에서 사시는 분들이 오염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건강하게 사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래 사는 것을 보면서, 정말 우리 몸이 죽을 몸을 벗어버리고, 각종 오염에 물들지 않고 천년만년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이 간절한 소원으로 다가오는 것을 봅니다.
방금도 박 아무개란 사람과 한의사의 대담 속에서 박 아무개가 세상에서 병이 들어 죽게 되었는데, 산속에 들어와서 각종 약초를 재배해서 먹고 살므로 건강하게 되었다는 프로를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말씀대로 병들지 않고 죽지 않고 영원히 건강의 몸을 다시 덧입게 된다는 말씀이 큰 소망과 기쁨으로 다가옴을 봅니다.
그래서 시편 90편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시편 90:3-5.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시편 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또한 시편 103:15-17.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라.
그리고 베드로전서 1:24-25.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이처럼 세상 나라의 체험은 맛보기에 불과하지만, 참된 하늘나라의 삶은 엿의 본판과 같아서 오염이나 병이나 독한 짐승이 없이 아름답고 건강하고 행복이 가득한 나라입니다.
우리 몸만 해도 죄와 병으로 물든 우리 육체가 죄와 질병과 사망이 없는 행복한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복음의 말씀입니까?
3. 그러므로 영원한 하늘나라를 바라보면서, 아브라함처럼 하늘 본향으로 이사 갈 것을 생각하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영원한 하늘나라를 바라보면서 사는 사람은 영원한 하늘나라로 이사 갈 것을 준비하면서 살아갑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사 가서 살 사람은 살림들을 정리하고, 미국에 가서 살 것을 장만합니다.
우리 딸이 미국으로 이사 갈 때 보니까, 자기가 가지고 살던 살림살이를 전부 아빠에게 주어버리고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 성도들은 하늘나라에 가서 살 것을 준비하면서 살고, 세상 나라 것들을 나이가 들어가면 하나 둘 정리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19-20절에서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나이가 들어 하늘나라가 가까워질수록 세상 나라 것을 정리하고, 어려운 이웃에게 은혜를 베풀면서 너그럽게 살아갈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잠시 있을 보이는 세상 것에만 집착하면서 살지 마시고, 장차 우리가 들어가서 살 영원한 하늘나라를 사모하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 나라를 잘 정리하시고, 죄와 질병이 없는 부활의 몸을 입으시고, 죄와 질병이 없는 복된 하늘나라에서 완전한 행복을 누리시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