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만남도 아닌데,
밤새 설친 잠으로 아침이 분주하다
가출하는 여인처럼 별 잇속도 없는 보따리만 크다
고속도로 입구쯤에서야 생각이 났다
큰딸 점심상 잊었다는걸
큰딸방에 점심상을 놓아 드리고
다시 대문을 나서려는데 흑고니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젯밤 늦게까지 마신 술로 눈이 안떨어 진다나
그제사 안개꽃님 태우러 간다며 천천히 오라며 생색을 낸다.
속으론 옳커니다 일찍 가겠다한 나도 횡설거리고 있으니...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뭐가 지나 간거 같은데...
횡성에서 못빠지고 지나쳐 버렸다
북원주에서 다시 돌렸다
오늘은 도대체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속도 오르기에 자동차 속이 시끄럽다
속도 오르는 만큼 볼륨도 높인다
휴대폰을 못 받는다는건 그만큼 속도를 내고 있다는거다
속사리까지의 시간이 거의 맞아 떨어질거 같아
횡성휴게소에서 한숨 돌렸지만
자꾸만 조급해 진다
내가 기다려야하는게 도리잖은가
흑고니님댁에 도착하니 파랑새도 없다
안개꽃님 계신 미탄으로 흑고니님 태우고
운전기사 하러 갔댄다
자꾸만 들락거렸다
길지 않은 시간을 엿가락처럼 늘이고 있었다
팥방구리 드나들듯 들락거리는데
눈에 익은 차가 마당으로 들어 와 멈춘다
안개꽃님이 두팔을 벌린다
아무말도 못하고 둘다 그저 안기만 했다
그 무슨말도 마음속을 그려 낼 수가 없었다
함께 오대산 입구에서
항아리 속 꿈을 익히는 새사업인 흑고니님 장독 구경을 했다
많다 크다 정갈해 보였다
항아리 속에서 소금물과 메주가 그러하듯
안개꽃님과 나, 월정사를 가는 내내
손 두개가 뜨거운 키스를 하고 있었다
"일년에 두번쯤 올까?"
"두번이라한들 달라질게 뭐 있는데요"
파랑새랑 둘이
법당에 가서 부처님께 절을 하란다
손 내밀어 파란 복전을 한장씩 받아 들었다
주문을 외우듯 한가지를 빌었다. 그건 비밀이다.
경내에 있는 찻집으로 갔다
국화차와 보이차를 주문했다
국화꽃잎은 가을향을 우리는데
보이차 제맛 아닌데도 좋다는거 보니
흑고니님은 아직도 술이 안 깬게 확실하다
벙개를 하기 위해 예약 해 놓은
경포의 팬션을 보러 가는데 뒷자리가 휘둘리킨다
뜨거운 목욕탕에 들어 갔을 때 처럼 속이 울렁거린다
암시렁도 않은척 참았다
얻어 타고 가는 해안도로의 바다 풍경이 좋았다
강릉IC 보다는 음주단속 확률이 낮은 북강릉IC와
해안도로가 드라이브 하기엔 훨 좋다고 흑고니님은 뻥을 쳤다지만
그건 절대 뻥이 아니었다
벙개할 곳을 둘러 보고
쉴곳을 찾아 정동진으로 가면서
밤안개를 닥달해서 썬크루즈에 객실 두개를 예약했다
썬크루즈에서 안개꽃님과의
따뜻한 해후를 한번 더 하고도
한참을 기다렸지만 우찌된 영문인지 흑고니님 기척이 없다
의아해 안개꽃님을 쳐다보니 가방 풀고 오라 했단다
안개꽃님 별도 못봤는데
입덧하듯 먹고 싶다해서 우리집 냉동실 털어 간
곶감, 천혜향, 얼음연시를 들고 흑고니님 방으로 갔다
안개꽃님이랑 작당을 해서
멋진곳, 근사한 곳으로 가자고 꼬셨다
표정이 난해했다
밤안개님 흑고니님 체질이 아니란다
그래서 꼬득이다 말았다
밤안개님 친구 누님이 한다는 횟집으로 갔다
전복죽은 제대로의 제맛인거 인정한다
기생도 기생같지 않은게 안주만 축낸다고 혼났다
그래서 오기로 먹었다
쐬주 두병은 내가 먹었나보다
11시반쯤 썬크루즈로 돌아왔다
이름도 모르겠는 양주향이 좋다며 먹어 보라고 꼬신다
내친김에 양주 세잔까지 집어 넣었다
그래도 샤워까지 하고 잤다. 취했던 기억은 없다.
새벽이다 5시 반도 안됐다
커텐을 삐끔이 들치고 내다 보니
행운의 손이 이슬비에 촉촉히 젖고 있었다
속이 할퀸다
주님을 영접 해 봤어야 빠져나간 술자리가 우떤지를 알지
디지게 힘들었다 그래도 참았다
갈증도 안나는데 엄한 생수만 한병 다 먹었다
7시다
속이 요란을 떨어 더는 못참겠다. 건더기를 먹어야 할거 같았다.
우리방엔 물밖에 없다.
흑고니님 방 벨을 눌렀다. 잠깐 사이를 두고 세번이나 눌렀다.
잠귀가 소심줄인가 보다.
눈 한번 흘키고 걍 가려는데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인상 드럽게 쓴다. 냉장고 채 들고 가란다.
해장국 먹으러 가자고 했었으면 난 죽었을거다.
먹기는 내가 더 많이 먹은거 같은데
우째 맨날 주님 영접에 이골이 난 흑고니님이 더 취하냔말이다.
경포의 팬션에서
안개꽃님 소원인 판 벌렸다
나 그거 못한다고 했더니 개망신 준다
옆에서 구경했다
뭐가 뭔지... 그래도 알아 듣는거 몇개는 있었다
파도가 부른다
이제 불장난 시작해야 한다고
흑고니님과 천사의향기님이 준비한 저녁메뉴
불피우는데 일가견이 있는 흑고니님
천사의향기님은 예전의 그날 처럼 불장난에 신명이 났다
키조개, 가리비 또 이름을 모르는 어떤 조개, 양미리, 꽁치 굽고...
흑고니님과 두꺼비님은 예사 솜씨가 아니드라.
복분자로 건배하고 KGB가 맛있다고
술 전혀 못하는 천사의향기님 꼬득였다.
맛있다며 홀짝거리던 천사의향기님은 한시간여를 저승을 배회하다 왔다.
내 천적은 아무래도 KGB가 틀림없는거 같다.
강산이 몇번이나 변한 세월의 앞에 서 있었다
열네살적 유행가 간드러지게 부르다 작은오빠한테 걸려
팔자 사나워 지고 싶어 쬐끄만 기집애가 그런 노래부르냐고
엄청 혼난 이후로 처음 해 본 짓이다.
모든 음을 되거나 말거나 솔에 맞추었다.
끝까지 알고 있는 노래가 없다고 믿으며 살았다.
노래방을 갔었더라면 꿔다 놓은 보릿자루였을거다 틀림없이
근데 아니드라
우찌된게 취하지도 않고 아는 노래가 그리도 많은지...
지금까지의 나는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끼를 어찌 숨기고 살았냐며,
그동안이 내숭인것도 모르고 속았단다.
절대 내숭은 아니었다. 내 속에 내가 여럿일뿐.
늦은 밤, 검은 바다는 파도 소리 뿐이었고,
마당의 소나무 가지에 걸린 초엿새 쪽달을 보고
흑고니님이 한다는말, 저 달이 어찌 저리도 괴괴해 보이냐...
모닥불 가에서 늦도록 함께한 이야기속엔
흑고니님 안개꽃님 정선님 물망초님 밤안개님 두꺼비님
천사의향기님 수수꽃다리님 긴또깡님 그리고 나.
지난밤 별을 볼 수 없도록 흐린날이었기에
일출을 볼 수 있을거라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근데 우쩌라고 젤루 먼저 잠에서 깨는지...
부시럭 거린다 야단 맞을까봐 죽은 척 있으려니 환장할거 같았다
그래도 얼마를 참다 사지가 뒤틀릴거 같아
할 수 없이 도둑고양이처럼 방을 빠져 나왔다.
구름 낀 바다는 그래도 나름대로 그럴 듯 했다.
좋았다. 행복했다. 가슴이 울렁거릴 만큼...
새벽 바다를 얼마나 서성였을까,
누굴 끌고 나오지 않은걸 후회했다.
다시 기회가 온다면 꼭 물귀신처럼 한넘을 잡아 끌고 오리라.
하늘과 바다와 아침해의 빛깔이 뒤엉켜
이별이란 멀어 보였다.
허지만 늦은 아침의
흑고니님이 끓여 준 조개국의 청양고추 덕에
제일 먼저 이별 예감을 앓아야 했다.
내게 있어 길들여 지지 않는건 이별인거 같다.
속사리에서 11월에 보자며 처음처럼 안고 등을 다독이는데
안개꽃님께 고마웠다는 말을 채우지도 못한체
흑고니님의 배려를 감사해 하지도 못하고
가슴에 그어지던 빗금이 배어 나와 빗물이 되었다
그런 내가 싫었지만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한웅큼의 화장지가 옆자리를 어지럽혔다
첫댓글 보기 쉬우라고 행간을 나누었어요. 좀 무식하기도 하고...
이걸가지고 선생님께 야단 안 맞을라니 얼마나 끙끙거렸겠어요 ㅋㅋ........
지난 여름 흑고니 와이프인 파랑새와 아들인 눈사람이 시애틀을 다녀 왔지요 파랑새는 2주 눈사람은 2개월 동안
왕복 항공권만으로... 그거 고마워서 나와 안개꽃님이 함께하기로 했던 벙개 전날을 흑고니님이 기사, 비서 역할을 자청했던거지요
참 좋은 인연이네요. 부럽네요. 필연같은 인연으로 좋은 글로 표현하니 더 새롭고 신선하네요.
그어졌전 빗금이 새어나와 빗물이 되었다는 언니의 따뜻함이 예뻐요;좋은 인연도 부럽구요
좋은 만남, 좋은 인연. 오프라인 만남이 긍정보다는 부정이 더 크겠지만(본문에, 여기엔 없네. 공감하는 문장이었거든요) 그래도 좋은 인연이라 생각됩니다. 벙개후기하니 앞으로 우리도 산행을 갔다오면 산행 후기 올립시다. 누가 일등으로 올리나 봐야지. ㅎㅎ
역시~~ KGB야 술도 음료수도 아닌것이? 아 맛이 있던데 이 마트에 동날라 호호호 후후후
야외수업할때 필히 KGB 사 가지고 갑시다요. 술도 아닌 음료수도 아닌 것이 대체 그 맛이 무엇일까나?
빨강은 자몽맛이고 하양은 레몬맛인데 빨강이 달콤하고 좋드라머!ㅋㅋ.....
하양도 맛있었어요...하
근사한 영화 한 편 본 느낌올시다. 한웅큼의 화장지에는 내 눈물도 분명 묻었으리니.......엉엉 흑흑
사실은 빼 놓은게 더 많아요 대따 재미있었거든요. 오늘도 전화하다 큰딸 점심이 늦었답니다 ㅋㅋ.
아무튼 모르는 말이분의 일은 들었어요. 그래도 재미있어요. 여기서 시 추려 담고 수필 추려담고 온 춘주회원 마음 모두 끌어 모았으니 도대체 무슨 재주가 그리 많은감유.
너무 너무 멋져요! 짱 부러운것 아시죠 . 소설 한편 읽은듯 감동 감동 ....
즐거워 해 줘서 고마워요... 이럼 나 주책 자꾸 떠는데.
저는 언니 글 읽고 KGB잡았잖아요..ㅎㅎ맛..죽이더군요...
내 주책이 여러사람 베려 놓는건 아닌지 ㅋㅋ......... 책임 안짐. 못짐.
제 행동의 책임은 제가 져야죠..언니는 KGB값만 책임지면 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