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혜숙 산문집_詩를 연주하다/4. 섬진강 연가
아들이 주워온 돌
우듬지에 걸린 봄 햇살이 따사롭다. 겨우내 움츠렸던 목련이 수줍게 꽃망울을 머금고 있다. 올해는 이상기온으로 매화, 목련, 벚꽃이 한꺼번에 꽃망울을 터트려 천지간에 꽃이다. 눈 가고 발길 닿는 곳마다 꽃 잔치다.
몇 해 전 난데없이 운석 열풍으로 온 나라가 부산스러운 적이 있었다. 하기야 칠십 년 동안 잠잠하던 운석이 네 개나 떨어졌으니 신드롬을 일으킬 만하다.
운석은 소행성이나 혜성이 달 또는 화성과 충돌했을 때 떨어져 나온 파편이다. 태양계의 우주 생성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약 45억 년 전 지구의 탄생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학술적 가치가 크다며 어마어마한 가격이 매겨진다고 하니 하늘에서 떨어진 신 로또 당첨이라고나 할까.
시골 동네가 바빠졌다. 비닐하우스를 뚫고 떨어지는가 하면 콩밭에도 도랑가에도 떨어져 전국에서 찾아온 외지인들과 국제 운석 사냥꾼들이 야산과 논밭을 수색하고, 첨단장비와 사냥개가 동원되어 돌멩이 찾기에 열을 올렸다. 황금을 돌같이 보라고 했지만 돌이 황금보다 대접받는 세상이다.
우리 집에도 운석이 한 개 있다. 불에 그을린 듯 거칠게 긁힌 자국이 있고 생김새가 투박하여 그럴듯하다. 이 돌이 우리 집에 온 지 벌써 이십칠 년이나 되었다.
어느 해 추석 전날, 거실을 걸어가던 시어머님이 갑자기 그대로 주저앉아 자리보존하고 누우셨다. 음식은 물론 물 한 모금도 넘기지 못했다. 그 상태가 계속 지속되자 주위 어른들과 시아주버니는 기운이 쇠하여 힘들겠다며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십 년을 모셔온 어머니인데 어떻게든 살려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동네 한의사에게 부탁하여 왕진을 간청했다. 한의사는 내 진심을 알았는지 한 달 동안 왕진을 와서 치료해 주었다. 하늘도 내 마음을 알았던 것일까. 침과 보약으로 정성을 다했더니 어머니는 점차 회복되셨다.
그러나 기력이 회복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치매와 중풍이 찾아왔다. 점점 초췌해지는 시어머니 모습이 안타까웠다. 어쩌다가 정신이 돌아오면 내 손을 잡고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리셨다. 병든 어머니를 껴안았다. 당신의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병이지 않는가. 치매는 한 인간을 처참하게 무너뜨렸다. 어머니의 속 깊은 심성도 인격도 앗아갔다. 힘겨운 나날이 계속되었다.
명예교사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날, 옆집 아주머니가 할머니가 주셨다며 내 반지를 들고 왔다. 또 며칠 후 그 옆 집 아주머니가 귀걸이를 들고 왔다.
“내가 유미 엄마를 잘 알지요. 할머니가 문을 두드리며, 커피 한잔을 달라고 해 드렸더니 귀걸이를 가지고 오셨어요. 아무래도 유미 엄마 것 같아서 가지고 왔어요. 어떡해요, 힘들어서….”
걱정스런 표정으로 내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위 서랍에 넣어 둔 몇 개 안 되는 패물을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나눠 준 것이다. 한숨이 나왔다. 그러나 시누님이 도와주고 온 가족이 합심하여 아기처럼 변해 가는 어머니를 보살펴 드렸다. 벽에다 오물을 문지르는 어머니의 처절한 몸부림을 보면서 우리는 함께 아파했고 병은 우리의 효심을 끝까지 시험했다.
그렇게 고생하시던 시어머님이 목련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날, 먼 길을 떠나셨다. 잠깐 일이 있어 집을 비운 사이 우리 집에 조등이 켜진 것이다. 적막감이 맴돌았다. 집에 있던 유복자 남편은 열세 살 딸과 손수 염을 했다고 한다. 간간이 들려오는 울음소리. 울음을 참느라 토해 내는 신음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예전에는 아파트에서도 초상을 치를 수 있었다. 우리는 어머님 마지막 길을 우리 손으로 보내 드리기로 했다. 관리실에서는 복도 끝까지 불을 밝혀 주었고 조등은 우리 모두의 슬픔을 속으로 태우며 주야로 매달렸다. 어머니를 여윈 슬픔에 넋이 반쯤 나간 상태에서 조문객을 맞았다. 어머니의 체취가 묻은 방에서는 오랫동안 비릿한 냄새가 진동했다.
장례를 마친 후, 남편은 초등학생 아들 방에서 돌멩이 하나를 찾아 들고 나왔다. 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이 돌 어디서 났니?”
“할머니 관을 덮을 때 산에서 주워 온 거예요.”
아들은 허토의식 때 삽에 걸린 돌멩이가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아 슬며시 가져왔다고 한다. 돌아오는 장의차 안에서 베고 며칠 동안 베개 속에 넣고 잔 것이다. 얼마나 할머니가 그리웠으면 그랬을까. 태어나면서부터 할머니와 한방을 썼던 아들은 누구보다도 할머니와의 이별을 슬퍼했다. 그렇지만 그 어린 마음속에 돌멩이처럼 딱딱하게 굳은 슬픔이 있는 줄 미처 몰랐다.
돌멩이는 젖어 있었다. 그 돌을 본 남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본인의 슬픔이 아들과 똑같은 것에 놀랐을까, 아니면 혹여 어머님의 눈물이 아직도 마르지 않았다고 느꼈을까. 할머니를 기억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징표를 삼고 싶었던 아들의 마음에 우리 가족은 숙연해졌다.
“그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돌이구나.”
나는 돌을 잘 씻어서 장식장에 보관해 두었다. 할머니가 생각날 때마다 꺼내 보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이 돌은 우리 집의 운석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돌멩이, 어머니를 기억하게 해 주는 돌이다. 지금도 가끔 돌을 쳐다보며 나직이 여쭈어 본다.
“오늘도 안녕하시지요?”
“그래, 나 아직껏 여기, 네 아들 마음속에 고이 잠들어 있다.”
들리지 않는 대답이 가슴을 적신다. 돌멩이 속에는 마치 어머니의 영혼, 할머니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듯하다. 모든 물체는 눈에 보이는 것 말고도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남에게는 보잘것없는 것, 무수한 사람들의 발길에 채여 하찮게 보이는 돌멩이일지라도 때와 장소에 따라 그 의미가 더할 수 없이 남다를 수 있다.
“어머니~.”
오늘도 나는 돌을 쥐고 나직하게 불러본다. 무언가 말씀하실 것 같다. 묵언의 말씀. 그래서일까. 할머니가 아픈 것을 보고 자란 아들은 성장하여 한의사가 되었다. 어르신들의 아픈 곳을 어루만지며 진료하는 손주의 모습을 보고 제 할머니는 ‘아고, 이쁜 내 새끼!’하며 흐뭇해하실까.
첫댓글 남에게는 보잘것없는 것, 무수한 사람들의 발길에 채여 하찮게 보이는 돌멩이일지라도 때와 장소에 따라 그 의미가 더할 수 없이 남다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