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라” 고아 (1)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신명기 10:18-19)
구약 성경에 보면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라.’는 말씀이 거듭 나옵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라고 말씀 하셨을까요? 특히 고아를 돌보는 일을 첫째로 언급하셨을까요?
필자가 어렸을 때, 6.25 사변을 당해 부모님을 따라 남쪽으로 피난을 가서 살았는데, 그 때 우리 가족이 출석하는 교회가 그곳 고아원 2층에 있는 강당이었습니다. 그 때 구체적으로 고아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전쟁 중에 부모가 동시에 세상을 떠났거나, 부모의 행방을 모르거나, 전쟁의 와중에 혼자 살아가기도 어려운 때, 어린 것까지 돌보기가 힘겨워 자식을 버리고 도망을 가는 폐륜 엄마들로 인해 전쟁고아가 양산(量産)되었습니다. 따라서 전쟁 중에 많은 아이들이 전쟁고아가 되어 고아원에서 살거나 그런 해택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구걸을 하며 살았습니다.
세상에 불쌍한 사람들이 많지만, 어린 고아같이 불쌍한 존재도 없습니다. 성인(成人)들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살아 갈 수 있지만, 어린 고아들은 스스로 살아갈 방법이 없습니다. 그럼으로, 하나님께서는 고아들을 돌보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다행히 한국에서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먹이고, 입히며, 교육시켜 줍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일정액의 자활 자금을 주고 고아원에서 내 보냅니다. 그러나 그들이 받은 적은 돈으로는 고시원 같은 곳에 방 한 칸을 얻고, 홀로 살아갈 기구 몇 개를 마련하고 나면 남는 돈이 없습니다.
직업을 얻으려 해도, 고졸 학력으로는 쉽지가 않고, 더구나 인터뷰에서 고아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불합격 시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다행히 직업을 얻거나, 행상이나, 자력으로 돈을 벌어 어느 정도 자립할 수 있게 되면 결혼을 할 나이가 됩니다.
이성 교제를 한 후, 상견례를 하게 되면, 부모, 친족이 없는 고아는 홀로 나가, 남자 쪽이나, 여자 쪽 가족들은 만나게 됩니다. 상대 쪽 부모들이 가족 상황을 물어 볼 때, 고아라는 사실을 밝히면 근본도 모르고, 가정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여자를 며느리로, 남자를 사위로 맞을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혹은 버림을 받아 서럽게 살아온 이들에게 결혼의 관문은 그들 인생의 최대 난관(難關)입니다. 이렇게 버림받은 고아 출신 당사자는 살 희망을 잃고 절망하여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고아라면 무조건 근본이 없고, 가정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사람으로 교양이 없고, 예의범절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편견을 갖고, 아예 사람 취급을 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아들을 하시(下視)하는 사람들도 어느 순간에 자기들도 자동차, 기차, 비행기 사고로 부부가 동시에 생명을 잃으면 자기 아이들도 고아가 된다는 사실을 간과(看過)하고 살아갑니다. 비단 교통사고뿐만 아니라, 화재, 홍수, 지진, 태풍, 토네이도, 미국 같은 나라에서의 총기 사고 등으로 자기 자녀들도 고아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고아들을 차별하거나 천시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고아를 돌보라고 하셨는데, 오히려 고아를 천대하고 차별하는 사람들에게 심판을 내려, 그 사람들의 자녀들을 고아로 만드실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장애인이 되고 싶어 된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듯이, 고아가 되고 싶어 고아가 된 사람도 없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혹은 부모에게 버림받아 고아가 된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고아들을 돌보아 주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고아들을 돌보아 주고, 차별하지 않기가 쉽지 않지만, 자기 아들이나, 딸이 고아를 반려자로 삼겠다고 데려오면, 며느리로, 사위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같은 태도를 버리고, 고아를 우리 가족이나 친족과 같이 품어주는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복(順服)하는 길이요, 복 받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가는 길은 좁고 협착합니다. 어려운 일을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면서 고아들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 하는 기회가 되기 바랍니다.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신 14:29)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