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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_27_72p The Society and Individual
If she does, she must write some very queer history. Everyone knows today that human beings do not always, or perhaps even habitually, act from motives of which they are fully conscious or which they are willing to avow; and to exclude insight into unconscious or unavowed motives is surely a way of going about one's work with one eye wilfully shut. This is, however, what, according to some people, historians ought to do. The point is this. So long as you are content to say that the badness of King John consisted in his greed or stupidity or ambition to play the tyrant, you are speaking in terms of individual qualities which are comprehensible even at the level of nursery history. But, once you begin to say that king John was the unconscious tool of vested interests opposed to the rise to power of the feudal barons, you not only introduce a more complicated and sophisticated view of king John's badness, but you appear to suggest that historical events are determined not by the conscious actions of individuals, but by some extraneous and all-powerful forces guiding their unconscious will. This is, of course, nonsense. So far as I am concerned, I have no belief in Divine Providence, World Spirit, Manifest Destiny, History with a capital H, or any other of the abstractions which have sometimes been supposed to guide the course of events; and I should endorse without qualification the comment of Marx: 만약 그녀가 그렇게 한다면 그녀는 매우 이상한 역사를 써야 한다. 오늘날 모든 사람은 한다. 인간은 언제나 아마 습관적으로 동기로부터 행동하지 않는다. 완전히 의식한다고 주장하는 동기, 그들이 기꺼이 avow. 그리고 통찰을 배제하는 것은, 무의식이나 unavowed 동기를 배제하는 것은 한 눈을 의도적으로 감고 작업을 하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에 의하며 역사는 꼭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만족한다면 존 왕의 나쁜 점은 그의 탐욕과 어리석음 또는 독재를 휘두르는 야망에 있다고 말하는 것에 만족한다면 당신은 개인적인 특성들을 얘기하는 것이다. 유치원생들도 이해하는 레벨의 개인적인 특성들을. 그러나 당신이 존 왕은 무의식의 도구였다. 이익집단의 도구였다. 반대하는 도구 막 성장하고 있었던 봉건 영주들의 무의식적 도구였다. 당신은 더 복잡하고 세련된 존왕의 나쁜 점을 얘기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당신은 제시하고 있는 듯하다. 사건들은 결정된다. 인간들의 의식적인 행동들이 아니라 어떤 외부의 막강한 힘들에 의해 그들을 무의식으로 이끄는 막강한 힘에 의해. 물론 이것도 난센스다. 내가 생각하는 한, 나는 아래와 같은 것에 믿음이 없다. 신의 섭리, 세계정신, Manifest Destiny, 추상적인 역사등. 그리고 다른 추상적인 것들 때때로 사건의 진행을 예정된 것으로 인도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나는 믿음이 없다. 난 오히려 다음과 같은 마르크스의 생각에 무조건 찬성한다.
Chapter 2_28_73p The Society and Individual
History does nothing, it possesses no immense wealth, fights no battles. It is rather man, real living man who does everything, who possesses and fights. The two remarks which I have to make on this question have nothing to do with any abstract view of history, and are based on purely empirical observation. The first is that history is to a considerable extent a matter of numbers. Carlyle was responsible for the unfortunate assertion that 'history is the biography of great men'. But listen to him at his most eloquent and in his greatest historical work: Hunger and nakedness and nightmare oppression lying heavy on twenty-five million hearts: this, not the wounded vanities or contradicted philosophies of philosophical advocates, rich shopkeepers, rural noblesse, was the prime mover in the French revolution; as the like will be in all such revolutions, in all countries." Or, as Lenin said:’ Politics begin where the masses are; not where there are thousands, but where there are millions, that is where serious politics begin.'' 역사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커다란 부를 소유하지도 않고, 전쟁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다. 살아있는 인간이다. 이 모든 것을 하는 것은. 내가 언급하고자 하는 두 가지 사항은 역사의 추상적인 관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순전히 경험적인 관찰에 기초한다. 첫 번째, 역사는 상당한 정도로 숫자와 관계있다는 것이다. 카알라일은 부적절한 주장에 대해 책임이 있다. 역사는 위대한 사람들의 전기물이라고. 그러나 그의 엘로건트하고 그의 위대한 역사적 작품 중에서 하는 말을 들어보자. 기아, 헐벗음, 그리고 악몽 2천 5백만 사람들을 눌렀던 이러한 것들이 프랑스 혁명의 원동력이었다. 상처 입은 허영심 또는 모순된 철학들, 철학적 지지자들의, 부유한 상인들, 지방 귀족들. 다른 모든 혁명들이 그렇듯이. 다른 모든 나라들이 그렇듯이. 또는 레닌이 한 말을 들어 보자. 정치는 대중들이 모인 곳에서 시작된다. 수천이 아니라 수백만의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진지한 정치들이 시작된다.
Chapter 2_29_74p The Society and Individual
Carlyle's and Lenin's millions were millions of individuals: there was nothing impersonal about them. Discussions of this question sometimes confuse anonymity with impersonality. People do not cease to be people, or individuals - individuals, because we do not know their names. Mr Eliot's 'vast, impersonal forces' were the individuals whom Clarendon, a bolder and franker conservative, calls 'dirty people of no name'. These nameless millions were individuals acting more or less unconsciously, together, and constituting a social force. The historian will not in ordinary circumstances need to take cognizance of a single discontented peasant or discontented village. But millions of discontented peasants in thousands of villages are a factor which no historian will ignore. The reasons which deter Jones from getting married do not interest the historian unless the same reasons also deter thousands of other individuals of Jones's generation, and bring about a substantial fall in a marriage-rate: in that event, they may well be historically significant. Nor need we be perturbed by the platitude that movements are started by minorities. All effective movements have few leaders and a multitude of followers; but this does not mean that the multitude is not essential to their success. Numbers count in history. 카알라일과 레닌의 수백만은 개인적인 수백만들이다. 그들에 관해서 impersonal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와 같은 질문들의 논의는 익명성과 impersonality의 혼란을 불러온다. 사람들은 사람들이기 멈추지 않는다. 개인들은 개인들이기를 멈추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그들의 이름들을 모르기 때문이다. 엘리어트의 vast, impersonal forces는 개인들이다. 이들에 대해 클레이든은, 그는 대담하고 솔직한 보수주의자였다. 부르기를 ‘이름도 없는 더러운 사람’이라고 부른다. 이 이름 없는 수백만들이 개인들이다. 다소 영향을 미치는 개인들,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사회적 세력을 형성한다. 역사가는 통상적으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한 사람의 불만이 있는 농부 또는 마을에 대해서는. 그러나 수백만의 불만에 찬 농부들이나 수천의 마을에 있는 수 백만의 불만에 찬 농부들에 대해서는 어떤 역사가도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존스의 견혼을 맞는 이유들은 역사가의 관심을 끌지 않는다. 그 같은 이유가 수천명의 존스 세대 사람들의 결혼도 막고 급격한 결혼율을 하락을 가져오지 않는 한.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들은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현상이 되는 것이다. 운동은 소수들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흔한 말에 동요될 필요 없다. 모든 효과 있는 운동들은 소수의 리더와 다수의 추종자들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의미하지 않는다. 다수들이 그들의 성공에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수는 역사에서 항상 중요하다.
Chapter 2_30_75p The Society and Individual
My second observation is even better attested. Writers of many different schools of thought have concurred in remarking that the actions of individual human beings often have results which were not intended or desired by the actors or indeed by any other individual. The Christian believes that the individual, acting consciously for his own often selfish ends, is the unconscious agent of God's purpose. Mandeville's 'private vices - public benefits' was an early and deliberately paradoxical expression of this discovery. Adam Smith's hidden hand and Hegel's 'cunning of reason', which sets individuals to work for it and to serve its purposes, though the individuals believe themselves to be fulfilling their own personal desires, are too familiar to require quotation. 'In the social production of their means of production,' wrote Marx in the preface to his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human beings enter into definite and necessary relations which are independent of their will.' 'Man lives consciously for himself,' wrote Tolstoy in War and Peace, echoing Adam Smith, ‘but is an unconscious instrument in the attainment of the historic universal aims of humanity.' And here, to round off this anthology, which is already long enough, is Professor Butterfield: 'There is something in the nature of historical events which twists the course of history in a direction that no man ever intended.’ 내 두 번째 관찰은 더욱 더 잘 증명된다. 사상의 많은 다른 학파들의 서술가들은 동의했다. 아래와 같이 언급하는 것에. 각 개인들의 행동들은 자주 다른 결과를 낳는다고. 처음에 그들이 의도했던 또는 원했던 결과들과는 다른. 기독교인은 믿는다. 각 개인은 그 자신의 이익을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가운데 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무의식적인 도구가 된다고. 맨데빌의 개인적인 악덕, 공적인 이익이라는 말도 일찍이 이와 같은 발견을 표현하는 의도적인 패러독시컬한 표현이다. 아담 스미스의 숨은 손, 그리고 헤겔의 이성의 간계는 개인들을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세팅된 것으로 본다. 비록 개인들은 그들 스스로 그들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을 달성한다고 믿고 있지만, 그리고 이런 것들을 인용하는 것은 너무나 익숙하다. 생산 수단의 사회적 관계에서 마르크스는 정치 경제의 비판이라는 책의 서문에서 썼다. 인간은 확정적이고 필요한 관계에 들어간다. 그들의 의지와는 독립적으로. . . 인간의 의식적으로 자신 자신만을 위해서 산다. 라고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얘기했다. 아담 스미스를 인용하면서. 무의적의 도구이다. 역사에서 인간성이라는 보편성의 목적들을 달성하기 위해서 무의식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마무리 짓고자 한다. 이미 많이 길어졌지만. 버터필드는 교수는 말하기를 역사적 사건의 성질에는 어떤 것이 있다. 역사적 과정을 비트는. 어떤 사람도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역사적 방향을 비트는 역사적 사건들의 성질들이 있다.
Chapter 2_31_76p The Society and Individual
Since 1914, after a hundred years of only minor local wars, we have had two major world wars. It would not be a plausible explanation of this phenomenon to maintain that more individuals wanted war, or fewer wanted peace, in the first half of the twentieth century than in the last three quarters of the nineteenth. It is difficult to believe that any individual willed or desired the great economic depression of the 1930s. Yet it was indubitably brought about by the actions of individuals, each consciously pursuing some totally different aim. Nor does the diagnosis of a discrepancy between the intentions of the individual and the results of his action always have to wait for the retrospective historian. 'He does not mean to go to war,' wrote Lodge of Woodrow Wilson in March 1917, 'but I think he will be carried away by events.' 1914년 이래로, 그 전에는 약 100년 동안의 소규모의 전쟁들만 겪었었다. 우리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가졌다. 아래와 같이 말한다고 해서 이런 현상에 대한 그럴 듯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 더 많은 개인들이 전쟁을 원했다던가, 또는 더 적은 사람들이 평화를 원했다든가 하는 설명. 20세기 전반의 사람들이 20세기 후반의 사람들보다. 마찬가지로 어떤 개인이 1930년대의 대경제 공황을 일으키려고 했다거나 원했다는 이야기도 믿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일어났다. 개인들의 행동들에 의해서, 각자는 의식하면서 완전히 다른 목표를 추구했었다. 차이점의 진단, 개인의 의도와 그의 행동의 결과 사이의 차이점의 진단은 복고적인 역사가를 기다릴 필요 없이 찾을 수 있다. 917년 로지(미국 정치가 1850~1924)는 우드로 윌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전쟁에 참전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그는 사건들에 말려들게 될 것 같다.
It defies all the evidence, to suggest that history can be written on the basis of 'explanations in terms of human intentions' or of accounts of their motives given by the actors themselves, of why 'in their own estimation, they acted as they did'. The facts of history are indeed facts about individuals, but not about actions of individuals performed in isolation, and not about the motives, real or imaginary, from which individuals suppose themselves to have acted. They are facts about the relations of individuals to one another in society and about the social forces which produce from the actions of individuals results often at variance with, and sometimes opposite to, the results which they themselves intended. 역사가 ‘인간의 의도에 설명’이나 행위자 자신들에 의해 주어진 동기에 대한 설명을 기초로, 다시 말해 행위자가 ‘왜 그들 자신의 판단으로 이와 같은 행동을 했는가? 라는 동기를 바탕으로 쓰여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든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역사의 사실들은 개인들에 관한 사실들이다. 그러나 고립된 공간에서 행해진 개인들에 관한 생동들이 아니다. 그리고 동기들이 아니다. 실제건, 상상이건 개인들이 그 동기로부터 어떤 행동을 해 왔다고 가정하는 그런 동기들이 아니다. 그들은 사실들이다. 개인들의 관계들에 관한 사실들이다. 한 사회에서 서로 서로의 개인들의 관계들에 관한 사실들이다. 그리고 사회적 세력들에 관한 사실들이다. 그 사회적 세력들은 개인들의 행동들로부터 어떤 결과를 생산해 낸다. 차이가 나는 또는 아주 반대되는 결과들 처음 그들이 스스로 의도했던 결과들과는 다른.
Chapter 2_32_77p The Society and Individual
One of the serious errors of Collingwood's view of history which I discussed in my last lecture was to assume that the thought behind the act, which the historian was called on to investigate, was the thought of the individual actor. This is a false assumption. What the historian is called on to investigate is what lies behind the act; and to this the conscious thought or motive of the individual actor may be quite irrelevant. Here I should say something about the role of the rebel or dissident in history. To set up the popular picture of the individual in revolt against society is to reintroduce the false anti-thesis between society and the individual. No society is fully homogeneous. Every society is an arena of social conflicts, and those individuals who range themselves against existing authority are no less products and reflexions of the society than those who uphold it. Richard II and Catherine the Great represented powerful social forces in the England of the fourteenth century and in the Russia of the eighteenth century: but so also did Wat Tyler and Pugachev, the leader of the great serf rebellion. Monarchs and rebels alike were the product of the specific conditions of their age and country. To describe Wat Tyler and Pugachev as individuals in revolt against society is a misleading simplification. 콜링우드의 역사관에 대한 심각한 오류들 중의 하나는, 지난 강의에서 내가 논의했던 것 중에서. 가정한다는 것이다. 행위 뒤에 있는 생각, 역사가가 조사하기로 요구되는 행위 뒤의 생각이 개인적인 행위자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잘못된 가정이다. 역사가가 조사해야 할 것은 행위 뒷면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개인적인 행위의 의식적인 생각이나 동기와는 무관하다. 여기서 나는 역사에서 반항자나 반역자에 대해 약간 얘기하고자 한다. 사회에 반기를 드는 반항자를 개인적으로 일반적인 그림으로 그리는 것은 사회와 개인 사이의 잘못된 반 전제를 다시 도입하는 것이다. 어떤 사회도 동질적이지 않다. 모든 사회는 사회적 갈등들의 공론장이다. 그리고 현존하는 권력에 반기를 드는 개인들은 그것을 지탱하는 사람들만큼이나 그 사회의 산물이고 반영물이다. 리챠드 2세나 캐더라인 대제는 강력한 사회적 세력을 나타낸다. 14세기 영국에서, 그리고 18세기 영국에서. 그러나 와트 테일러나 푸가초프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위대한 농민 반란의 지도자이다. 군주나 반항자들은 똑같이 특정한 조건들의 산물이다. 그들 시대와 국가의 특정한 조건의 산물이다. 와트 테일러나 푸가초프를 그 사회의 반항자로서 묘사하는 것은 오도되기 쉬운 단순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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