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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4:3-4]
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여러분 이렇게 말씀을 들으면 다른 성경과 연결이 될 겁니다. 왜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할 때에 빛이 어둠에 비취대 어둠이 깨닫지 못한다고 말했던 이 말의 의미가 뭔지, 분명 사도는 다른데, 바울과 요한. 단어만 같은 게 아니라 의미가 통하거든요.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이 바울에게 긍휼을 입혀 우리가 직분을 받은 자로, 참 그 확신이 내 수준의 확신이 아니라,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과 각 사람 속에 양심에 스스로 추천 할 수 있을 정도로 여러분 복음의 실제가 뭡니까? 저는 이번에도 이 본문을 보면서 우리가 복음을 말한다고 말하면서 복음이 실제 근본을 다루는 게 아니라, 실제 속에서 나온 것 표피속에서 우리가 놀았는지. 우리가 아까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다. 대부분 이런 말을 단어가 좋으니까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단어인데 우리가 좋은 단어로 사용하는 그런 개념의 말이 아니거든요.단순히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우리는 평생 과정입니다. 그러면 평생 과정 속에 하나님이 하신 만큼 변화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평생 과정속에 있는 만큼 정도는 누구나 있는 거예요. 사망에서 사망에 이르게 하는 냄새에요. 이걸 아니라고 할 필요 없어요. 포장할 필요가 없고, 있는 거예요. 우리는 과거에 이것을 없는것 처럼 했고, 그런 것이 없어야 되는 것으로 믿었거든요. 그런게 아니잖아요. 우린 이미 날때 부터 원죄성을 갖고 태어났는데 살아온 인생이 몰라도 사망에서 사망에 이르는 냄새로 이게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것만 있다면 인간은 괴물이에요. 사람이 뭐냐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다는 것은 첫 사람 아담이후에 죄가 사람에게 들어왔기 때문에 사망에서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정도차이지 없는 사람이 없어요. 그런 인생 속에 하나님이 빛으로 찾아오셔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아멘? 이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거든요. 그렇다면 그때부터 평생 믿는 자가 이 땅에 살아가는 믿음 생활이라는 것이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좋냐 나쁘냐, 사실은 안 좋은 건데 이게 비밀입니다. 우리는 이것 때문에 고통을 당하 거거든요. 그런데 바울의 이 말의 의미가 뭡니까?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라는 그 바울의 증거가 무엇을 의미 합니까? 천국에 갈 그것도 포함되겠지만, 이 고난을 통하여 사망에 이르는 냄새, 오늘 본문 4절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런 만큼 우리는 사망에서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왜?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속일 수 없는 인생의 고난을 통하여 이걸 깨우시는 거예요. 이걸 흔드시는 거예요. 사망이라고, 그래서 여러분 이 땅에서 사망은 그림자이지 원형적인 사망이 아닙니다. 육신의 사망도 육체의 죽음을 통해서 사실 그림자입니다. 영원한 사망을 나타내주는 것처럼 이 땅에 살아가면서 당하는 고난도 원형적 고난이 아니라 지옥의 영원한 고통의 그림자입니다. 그래서 이걸 징계라고 하는 겁니다. 심판은 마지막이거든요. 이게 하나님이 인간을 사망에 그늘이죠. 고통이고, 흔드시는 거예요. 깨우시는 거예요. 무엇을 위하여? 여러분 혼미 하다는 것을 알아요? 우리가 혼미 하다는 것을 안다고 해서 해결 할 수 있어요? 하려고하는 만큼 더 혼돈 속에 빠져 버려요. 한마디로 어둠이라고 하는 겁니다. 어둠은 눈 깜고 가만히 자는게 좋은 거예요. 어둠 가운데 뭘하는 만큼 전부다 흐트러지는 거예요. 어둠이기 때문에 그래요. 이걸 하나님이 인생의 고난을 통하여 깨우시는 거예요. 징계에요. 인생을 흔드시는 거예요. 무너트리는 인생 같이 보이죠. 이게 하나님이 구원을 나타내시는 구원의 영광이거든요. 그래서 여러분 오전에 말씀을 드렸지만, 이런 부분들 속에서 얼마나 사실적으로 우리 안에 나를 좋은 사람 만들 필요도 없고, 하나님이 좋은 사람 되게 하면 되는 것이고, 그것도 내 무기가 아니라, 내 의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로 나타나야 되고, 누구나 평생 과정이고, 사망에 이르는 냄새 우리의 죄성과 어둠 이 사망의 그늘이 왜 없겠습니까? 있는 이것도 단순히 해결 받아야 되는 그런 문제가 아니죠.
여러분 요한 웨슬레라고알죠. 감리교의 창시자라고 하는데, 그 분의 사모님이 세계 3대 악처에 들어간다고 하더라고요. 요한 웨슬레 목사님이 부인한테 맨날 맞으면서 살았다고 하더라고, 나타난 결과를 보고 보니까 그렇지만, 그런 일이 안 나타났다고 한다면 야 이거 목사 같지도 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부인한테 두드려 맞으면서 한시대를 살리는 전도자가 됐습니까? 드러나지는 않아요. 제가 볼때는 하나님이 그 웨슬레 목사님 속에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거예요. 인간은 그리스도의 향기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가장 잘 나타내는, 모든 피조물 속에서도 나타내지만 인간만 가장 잘 나타나는 영적 존재기 때문에 그 실제 속에서 요한 웨슬레 부인은 선한 부인이에요? 악한 부인이에요? 오죽하면 세계 3대 악처로 불릴 만큼 악하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요한 웨슬레 목사님이 한시대를 살리는 그런 은혜를 주셨고 그런 만큼 하나님이 한시대 살리는 전도자로 쓰임 받게 하셨어요? 우리는 나타난 것만 보고, 은혜야. 하지만 그 은혜가 뭐냐고요. 우리는 복음의 실제성이 너무나 종교적인 거예요. 그렇게 되면 만일 나도 그와 같은 어려움에 빠지면 결과만 붙잡고 실제 그 과정이 풀어질 수 있겠습니까? 인내해라, 언약 붙잡아라, 기도해라. 하나님이 응답 하실 것을 믿고! 우리 맨날 이짓했거든요. 물론 잘못됐다는 건 아니에요. 그것 때문에 된다면 그건 종교에요. 복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에요. 아멘. 은혜주실 자에게 은혜 주시는데 어떻게 주시는가? 요한 웨슬레 목사님을 통해 드러나지 않은 사실인데 드러난 실제를 볼수 있어야 하거든요. 제가 볼때는 진짜 못된 아내 만났어요. 진짜 행복하게 살다 가도 부족한데 진짜 인생 피폐 해졌어요. 이게 현실이에요. 그런데 거기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있어요. 그런 부인을 허락하시고 그런 비참한 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그것 까지도 허락하시고 구원을 이루시는 이게 보이지 않는 실제가 보이는 나타난 결과를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냐, 한시대 쓰임 받은 이게 영광인줄 아는데 그것도 포함되죠. 그럼 그런 일이 안 일어나면 영광될게 없거든요. 제가 볼때 요한 웨슬레 목사님에게는 악처인데, 그리스도의 향기였어요. 아멘 아무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정말 맞아요. 너희 앞에 두 가지 길이 있다. 사망과 화, 생명과 복, 너와 네 후손이 생명을 택하고, 우리가 노력으로 되는건 아니지만, 내가 믿는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 복음의 실제는 이것 까지도 허락하시고, 나도 어둠이고 저도 어둠인데, 더 악하고 나는 악한 부인 만나 고통 당하는것 뿐인데 그것 가지고 논한다면 평생에 답없고, 서로가 속힘일뿐, 복음만 가려지는, 우린 이걸 볼수 있어야 되요. 이걸 못 봤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 붙잡고 또 우리 수준의 하나님을 만들어 버려요. 종교적인 하나님, 몰라도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에 결과는 있는게 그 결과를 누가 봐도 하나님이 하신 일이 맞고, 따라 가면서 은혜 받는데 또 그런 일이 아니 일어나, 이게 기독 교회사에요. 계속 반복되는 겁니다. 우리가 이런 말씀을 듣는다고 해서 되냐? 아니요. 그렇게 된다면 간단한 얘기에요. 그런데 왜 이렇게 증거 합니까? 언제나 우리는 하나님이 하신 일만 맞지, 우리가 맞는게 아니거든요. 문제는 하나님이 하신 것을 가지고 이걸 모르면 우상 세계를 만들어 간단 말이에요.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우상에게 내어주는 일을 우리가 그짓하는데 그걸 몰라요. 여러분 솔직히 불신자의 성공도 하나님이 하신 거예요. 마귀가 한 거예요? 마귀가 했다는 손들어봐, 그것도 나름 의미가 있어요. 예수님이 마귀가 시험할 때 다 무슨 시험이에요? 다 주는 시험이에요. 그럼 못주는데 준다고 했냐? 아니에요. 그래서 마귀를 세상 임금이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 2장에 그 마귀를 공중 권세 잡은 자다. 그럼 이게 하나님의 허락하심인데 언제까지? 주 예수의 재림때 까지, 그때 까지는 이 세상은 나타난 일은 마귀가 주관하는것 같아요. 그걸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세요. 왜? 하나님의 구원 때문에 허용 하신 거예요. 그 허용 안에서는 그래서 마귀는 꼭 나쁜것만 역사하는 것만 아니라, 좋은것 갖고 속인다는 것을 생각지 않아요. 좋은건 문조건 하나님께로 왔다고 생각하고, 나쁜건 전부다 마귀로 생각 하는 것은 이원론적 신앙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에요. 마귀도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어요. 주예수의 재림때 까지 공중 권세 잡은 자로 하나님이 허락하심은 하나님의 주권 속에 마귀의 역사를 허용 하시고, 당신의 구원의 계획을 이루는 계획 속에 보셔야해요. 그 허용 안에는 줄수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이게 있기 때문에 능력이 나타나는 거예요. 이게 있기 때문에 심지어 귀신도 내어 쫓을 수 있어요. 귀신도 급수가 있거든요. 예수님이 내어 쫓는 것을 갖고 저가 바알세불 그 능력으로 행한다고 하거든요. 그때 만일 내가 바알세불의 능력으로 귀신을 내 쫓았으면 그 집이 서지 못할 것이다. 왜? 더 큰 귀신이 들어온 것뿐인데 귀신 나갔는데 더 큰 귀신 불러들인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것도 영적으로 바로만 볼수 있다면 속지 않는데, 사람들은 좋은건 하나님께로 나쁜건 마귀, 이게 말이 안 되는 겁니다. 좋고 나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마귀 역사도 그래서 악한 자도 악한 날에 쓰임 받기 위해서 지은 거예요. 우리는 무조건 나쁜 것은 없어야 되는 거야. 이게 있기 때문에 인간의 죄성이 첫사람 아담이 죄를 범하면서 태어나면서 인간은 원죄를 갖고 태어나는데 살아가는 만큼 전부다 자범죄, 스스로의 죄에요. 그런 만큼 이 죄성은 구원을 받아도 평생 사단의 공격의 통로가 되요.
그래서 죄와의 싸움, 옛사람과의 싸움이 되는 것이고, 그럼 이걸 왜 허락하셨어요? 이게 있기 때문에 죄가 죄로 드러나는 거예요. 이걸 모르면 똑같은 거예요. 마귀 왜 안 끝내셨지? 머리 박살냈다며, 지금 실제로 보면 박살 안난것 같잖아요. 그죠? 계속 의문이 된다니까. 진짜 혼돈 한 거예요. 실제 귀신 마귀역사 같으면 예수 이름으로 결박하고, 내 쫓고, 왜? 예수가 마귀를 꺾으셨으니까. 머리통 박살냈으니까, 우리는 그 능력을 힘입어, 예수이름으로! 무조건 꺾어야할 마귀, 이게 종교에요. 그럼 마귀가 너희 잘 논다. 하며 큰 귀신 붙여요. 결박되는것 처럼 하면서 속여요. 이게 종교에요. 왜 이런걸 허락하셔요? 구원 때문에, 아니 몰라도 저와 여러분들이 조금씩 조금씩이지만, 아니 몰라도 조금씩 조금씩 이지만, 이게 구원의 가치잖아요. 몰라도 구원이 영생이고, 하나님 나라의 기업이기 때문에, 뭔지 보이지 않고, 내게 육신에 속한 것은 아닌데 그것이 소망이요 가치가 됨이 똑같이 사는것 같은데 다르게 살아지는 나로 나타나게 되요. 알아요? 몰라요? 몰라요 대 부분. 그래서 제가 답답하다는 거예요. 나도 몰랐었어요. 우리는 나타나야, 육신 속에. 그 말은 체험되야. 그때서야 맞아. 아이고 좋아. 그럼 안 나타나면 없는 거네? 그래서 마귀가 우리를 얼마나 잘 속이게 됐어. 그래서 영적으로 깨닫고 보면 우리가 한 짓이 진짜 우리가 혼미 했구나. 마귀도 알텐데, 마귀가 우리를 보며 어떻겠나. 한 마디로 잘 논다. 헷갈리는 것이 어떤 때는 먹히는것 같아. 어떤 때는 안 먹혀. 이게 미치고 환장 하는 겁니다. 안할 수도 없고 하긴 하는데, 되면 좋은 거고, 안되면 이 답답함, 이게 종교 생활의 한계거든요. 귀신문제만 아니라, 생활도 똑같아요. 영적 원리기 때문에, 기도해. 하나님, 이 문제 해결해 주세요. 해결되면 좋아요. 그때는 살아 계신 하나님 같고, 능력의 하나님처럼 느껴져요. 어떤 건 기도 해도 응답이 안 되면 답답해지기 시작해요. 그럼 서서히 힘빠지기 시작해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은 지식일 뿐이고 나에게 실감이 안나요. 살아가는 삶속에서 하나님이 안 계신것 같아. 그런데도 몰랐다고, 그럼 잘 보세요. 이것은 깨져야 하거든요. 안깨지면 계속 속아요.
신년집회 10강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