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의 아들에게 답서로 보내는 넋두리
시조21 ・ 2024. 9. 1. 9:53
〈나의 뮤즈에게〉―릴레이 편지 / 계간 《가희》 가을호
정형의 아들에게 답서로 보내는 넋두리
-김샴 시조인에게
민병도
솔직하고 진지한, 그러면서도 의미심장한 물음의 편지를 받고 나 역시 명징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입장인가 반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형의 아들이 정형의 아버지께 올리는 편지‘라는 제목을 선택한 데 대해서도 감히 ’정형의 아버지‘라는 위치에서 잠언이나 경전과 같은 대답을 하지 못해 면구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년이 넘는 세월 민족시의 도도한 흐름 위에 배를 띄우고 그 물길을 잡아채고자 한 여정에서의 단편적인 생각들로 즉문에 우답을 하려 합니다.
먼저 ‘읽는다’는 행동에서 ‘본다’는 행위로 대변되는 90년대 출생의 MZ세대이면서 ‘정형이라는 옷, 정형이라는 구조를 극도로 싫어하고 심지어 혐오하기까지’한다는 김샴 시조인이 정형시 시조를 선택하고 십 년 넘게 몰입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와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그 같은 귀한 선택에도 불구하고 ‘정형시의 현실은 너무나 협소하고 어둡’고 ‘답답함을 느낄 때도 많’은 여건을 개선해 밝고 희망찬 현장을 열어주지 못한 점에 대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기성 시조인들을 대변할 자격은 없지만 시조라는 장르 자체의 위의 보다 시조를 개별적으로 점유해온 현대시조의 전개과정에서 나는 책임이 없다고 발을 빼지는 않겠습니다.
김 시조인, 시조를 쓰고 있는 연령층이 너무 노령화되어 불안하고 그로 인해 정형시가 점점 도태되어 간다고 말했지요. 자유시는 주목받는 젊은 시인들의 등장과 젊은 독자층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어 부럽다고 하셨지요. 그리고 시조가 ‘탄탄한 콘크리트 건물’이어서 ‘변형하거나 움직일 수 없“어서 답답하다고 하셨지요. 더하여 ‘시조는 현재 굳게 잠겨 있는 문’이며 ‘열리지 않는 문’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열리지 않는 문은 벽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어쩜 내가 4,50년 전에 잠시 가졌던 생각과도 꼭 같은지 신기합니다. 그러한 몰입과 집착은 결과적으로 나로 하여금 시조에게 많은 상처를 입히게 하였습니다. 난삽한 행갈이도 해보고 의욕만 앞서 지나치게 많은 관념들을 우겨넣어보기도 하고 3장을 깨뜨려 4장, 5장으로도 찢어보았습니다. 꽤 많은 시간 그렇게 시조의 원형을 훼손할 만큼 시조에게서 부정적인 면만 찾다가 깨달았습니다. 내가 시조의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고는 시조의 장점들을 찾아서 시대가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자고 생각을 고쳤지요.
김 시조인은 그러한 시조의 환경임에도 ‘정형의 아들로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잘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그릇을 만드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집을 지어서 파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릇에 담을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고 집을 활용해서 어떻게 동시대의 이웃에게 주어진 삶을 행복하게 해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젊음이 갖는 무한한 자유와 창조적 욕구를 감안하면 처음부터 갇힌 숙명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이 세상에서의 삶에게 부여된 자연의 섭리이며 창조적 질서에 다름이 아닙니다.
또한 ‘열리지 않는 문은 벽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그렇습니다. 이 대목에서는 나 또한 가슴이 답답합니다. 시조의 문을 드나들면서도 ‘열리지 않는 벽’으로 보이는 강박이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지울 수 없습니다. 자동차를 이용하려면 도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유로운 복장으로 마구 달리고 싶으면 들판으로 가야지 빌딩이나 집안에서도 함부로 내달릴 수는 없지 않을까요.
이참에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오늘의 시조단이 겪고 있는 안타까움 몇 가지를 공유해 보고자 합니다. 가장 자주 부딪치는 부분은 시조의 정형성에 대한 불편함과 불식입니다. 많은 경우 시조의 정형에서 벗어나는 것이 현대적이라는 착각을 합니다. 그러나 열어버리면 시일지는 모르나 시조는 아닙니다. 절제와 균형, 조화가 인간의 욕망을 다스리는 중요한 태제라고 했을 때 시조는 작품 안에서 그 과정을 실천해온 역사적 가치와 품격을 지닌 문학입니다. 민족의 시대정신과 미의식을 창작의 미덕으로 삼아왔지요. 처음부터 문법이 있어서 말이 탄생한 것이 아니고 시론이 있어서 시가 창작된 것은 더더구나 아닙니다. 공감대를 겨냥한 감성의 확대재생산과 전달이 우선이었습니다. 따라서 시론이니 시학이니 하는 논리가 우선하는 창작은 매우 부적절한 인위적 권력 행사에 다름 아닙니다.
김 시조인도 언급했듯이 이 같은 부조화의 이면에는 자유시라는 상대적 대상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자유시‘는 추종의 대상이 아니라 극복의 대상이자 병립의 대상입니다. 자유시가 놓친 전통의 가치와 민족 정서를 관류하는 가치질서를 확보하는 일 또한 미룰 수 없는 우선 순서입니다. 일방적인 힘으로 잠식한 자유시를 극복할 생각보다 괴멸하는 줄도 모르고 자기 살을 파먹는 일을 방치한다면 시조의 미래는 비관적입니다.
시조는 정형성이라고 하는 질서의 그릇에 담긴 문학 장르입니다. 그릇은 음식을 담는 도구지요. 그 그릇과 조화를 이룰 음식을 장만하고 맛깔스럽게 담아내는데 집중해야 옳습니다. 국적 없는 퓨전음식을 담아내겠다고 우리 고유의 그릇을 부순다면 음식의 품격이 높아지는 것일까요. 그릇을 바꾼다고 저절로 음식이 맛있을까요.
인쇄문화의 혜택아래 살고 있는 지금 시조나 시에 있어서 배행은 중요합니다. 물론 지은이의 의지를 나타내는 지향 목적 이외에도 독자와의 공감을 확대하기 위한 시각적 배려가 작용되기 때문입니다. 시조를 말할 때 가장 기본 조건으로 일컫는 3장을 5장으로 흩어놓고 1장을 2장으로 분리 표기하는 것 자체만으로 시조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시조의 정형 질서를 훼손한 것 또한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일반 독자들은 그런 의도를 헤아릴 수 없으려니와 그렇게 시조 지킴이의 편에서 읽으려 들지 않습니다. 문제는 형식 질서, 즉 외형을 읽어버린 채 자유시와의 차별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독자성이 분명하지 않은 장르는 공존의 길을 함께하지 못한다는 역사적 경험을 보더라도 이에 대한 반성적 접근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지금이 시조사 천년에 손꼽을 정도로 불안한 환경인 것은 부인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시조의 르네상스라고 규정하기도 할 만큼 창작의 생산량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에 의한 소비가 단절된 상황이니까요. 어쩌면 풍요 속의 빈곤이 날이 갈수록 극점으로 치달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그 불안감에 무릎을 꿇을 때는 더더욱 아닙니다.
시조는 지금 우리가 섣불리 우려하는 것보다 긍정적인 면이 훨씬 더 많습니다. 이조년, 이황, 홍랑, 황진이, 김상용의 고시조를 읽으며 얼마나 무릎을 쳤습니까. 얼마나 긴 생명력을 지녔으며 얼마나 많은 시대와 그 시대의 민중들과 소통을 이루어 왔습니까. 지금은 시조의 그 같은 순기능을 복원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어쩌면 참기 힘들 정도로 멀고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조의 외형은 오래전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시조의 잘못이 아닙니다. 다만 시조를 대하는 사람의 자세가 일방적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면 달리 보일 수도 있습니다. 자칫하면 돌 조각가가 돌이 왜 흙처럼 부드럽지 않느냐고 불평하는 것처럼 비교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유전자에 잠재된 창조력을 확장하여 시대와의 소통수단이 될 때까지 구도자처럼 시조의 미덕을 찾아가는 믿음이라면 난관을 이겨내지 않을까요.
시조는 우리 말, 즉 한글문학입니다. 자랑스러운 민족의 유산이자 자산입니다. 새로운 문명의 유입과정에서 충돌하는 가치의 혼돈으로 소비자 없는, 생산자들끼리의 품앗이에만 의존하는 시조의 오늘이지만 문명의 충돌이 가라앉으면 보다 독자적 지위를 확보할 가치입니다. 다시금 되씹어보지만 다른 양식을 빌리거나 흉내 낸 것도 아니고 자체적으로 세계 유일의 독자적 정형시 양식을 창조해서 천년에 이르도록 발전시켜온 힘에서 시조의 새로운 내일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김샴 시조인, 장거리 선수처럼 호흡하고 속도를 조절하여 이 땅의 민족시, 시조를 이끄는 선봉장이 될 때까지 응원의 박수를 보내겠습니다.
-귀화 식물 천지인 이 땅에서 기죽지 않는 들풀, 민병도 답서
[출처] 정형의 아들에게 답서로 보내는 넋두리|작성자 시조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