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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직분이 섬김의 직분(마가복음 10:42~45)
2023년 12월 10일 성락교회 주일연합예배 설교 : 김성현 감독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가복음 10:42~45)
<기도>
하나님 아버지, 종이 주님의 명하신 뜻을 따라 이제 입술을 열어 하늘의 복음을 선포할 때에 하나님 도와주시고 우리 모두가 감동받도록 하나님 친히 우리 중에 계셔서 감동하여 주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법을 배우고 하나님을 닮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오늘 이 마지막 세대에 우리에게 주신 우리의 임무를 수행하는데 차질이 없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이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시고 또 우리를 모든 세대, 각 세대마다 또 일일이 부르시고 우리에게 할 일을 주시며 그가 이루시려는 뜻을 이왕이면 우리 손으로 이루게 하셔서 영원한 나라를 만들어 가십니다. 이것은 머지않아 있을 이 세상의 종말을 위한 것이며 영원한 나라의 시작, 곧 시간이 존재하는 시대를 이제 지나서 영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들을 준비하고 있는 시간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직분을 감당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하나님의 예비하신 그 나라, 지금 하나님이 지배하시는 그 나라, 오늘 이미 우리에게 그 성품으로, 그 나라의 성질로, 그 나라의 법으로 우리 가운데 지배하고 계신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에 따라 우리를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직분이 다 그 나라의 법에 맞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갖는 성격과 많이 다른 점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경제 법칙이 많은 면에서 우리 삶을,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곧 먹고 살기 위한 것으로서 사람들 간에 약속이 이루어져서 소위 사회가 이루어집니다. 이제는 국가라는 규모까지 크게 확장되어서 국가와 국가 사이를,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선한 경쟁을 통해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서 일종의 약속들을 행하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또 그런 가운데 이 세상에는 그저 원시시대부터 있었던 법칙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힘의 원리, 강한 자가 지배하는 것입니다. 약육강식적인 그런 법은 여전히 이 땅에 가장 유용하면서도 가장 많이 적용하고 있는 세상의 법입니다. 이 세상의 법은 ‘힘이 센 사람이 차지한다.’ 이런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겉으로 주장하는 일반 민주적인 모든 원리와 원칙에는 힘의 원리라는 것이 대단히 거슬리고 맞지 않는, 모순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삶의 방향이 그렇게 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악해져 있습니다. 원래 악한 사람들입니다. 인간들이 원래 악하니까.
여전히 악은 꿈틀거리고 여전히 악이 지배하려고 하면서 악의 힘은 어디든지 지배하고 있지만, 사회의 법이 이렇게 막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법으로 사람들의 탈선으로 인해 사회 공동체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장치를 해 놓은 것일 뿐입니다. 인간을 고치지는 않았습니다. 또 인간들이 현대사회에 오면서 사람들이 선해진 것이 아닙니다. 그저 서로 계약하고 약속한 것들에 대해서 법이 막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법이 조그만 어떤 허점만 있어도 그대로 뚫고 들어와서 범행이 일어나는 것이죠. 이 세상은 그렇게 모든 구성원이 근본적으로 도덕적이지 않고 불의합니다. 그러한 일원들을 모아서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교회 안에도 뚫고 들어와서 역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법은 이 세상의 법과 완전히 다릅니다. 이 세상은 힘의 원칙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힘의 어떤 균형이 다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힘을 마음대로 부릴 수 없도록 장치를 해 놔서 그렇지, 힘은 언제든지 작용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특별히 많이 좀 진보적으로 변화된 바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우리를 사회주의로 구분하고 있기도 한데, 제 기억에 제가 소년 때쯤, 한 60년대에는 그냥 길거리에도 시비가 붙으면 그냥 막 싸웠습니다. 주먹이 센 사람이 대장이었습니다. 그 때는 깡패도 굉장히 많았고, 소위 화가 나면 주먹으로 누가 옳고 그른지를 가려냈습니다. 굉장히 흔했습니다. 그렇다고 경찰이 와서 잡아가지는 않았습니다. “감독님, 그거 무슨 이조시대 때 얘기입니까?” 아닙니다. 불과 얼마 전, 엊그제 같은 기억일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 주먹을 좀 쓰면 뭔가 되는가 보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인생이 너무나 슬펐습니다. 이 세상은 그런 세상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도 많이 뚫고 들어와 있었습니다. 나는 너무 슬펐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뭘 하는 곳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들 말로는 하나님 나라가 들어온 곳이라고 그럽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가 거의 이름만 있을 뿐, 하나님의 영향력도 없는 그런 곳은 하나님 나라가 아닙니다. 진짜로 이 세상에는 그런 법을 능가하는, 이 세상의 망가진 법을, 세상을 망가뜨리고 인격을 다 부숴 트린 그것을 극복하려는 하나님의 법이 이 땅에 와있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세상은 주먹으로 해결합니다. 대체로 권력으로 투쟁하여서 하나가 지면 다른 사람이 올라오고 또 다른 투쟁합니다. 그런데 그런 세상의 방식이 교회에까지 와있었습니다.
내가 굉장히 슬펐던 경험 중에 하나가, 우리 교회의 어떤 기관에서 정기 총회를 할 때가 있었습니다. 불과 몇 해 전입니다. 사태가 일어나기 전인데, 너무 슬펐습니다. 누가 앞에서 얘기하면 빈정대는 그런 모습이 너무 살벌했습니다. 조금 전에 예배드리고 왔는데 도무지 신앙인이라고 볼 수 없는 그 모습을 보고 저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너무 괴로웠습니다.
우리 교회 절대로 그렇게 되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고서는 앞으로의 미래가 있다고 도저히 볼 수가 없습니다. 세상사람이라 해도, 굉장히 날카롭고 차가운 모습이었습니다. 나는 누가 다른 의견을 갖고 와서 제시한다 그래도 나는 막을 겁니다. 그건 하나님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의 원리는 사랑의 원리입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죽는 데까지 자신을 다 내어 놓고 인생을 내 놓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살아날 수 없을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자기의 가진 걸 다 내어주었습니다. 그가 실수해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게 하기 위해서, 너희 죄를 속하기 위해서, 너희 죄를 씻기 위해서 나를 내어 준다.’라고 요한복음에 분명하게 주님이 죽으신 의도를 말했습니다. ‘너희 죄를 씻기 위해서 내가 죽는다. 너희 죄 있으면 너무 불행해. 너희 죄 있으면 너희는 너무 악해. 너희 죄 있으면 너희 앞날은 매우 어둡고 소망이 없어. 난 너의 죄를 대신 짊어질 거야.’ 주님은 그래서 우리 위해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믿는 바,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신 분입니다. ‘사랑의 원리로 내가 그렇게 할 거다. 오늘 밤이 지나면, 나중에 내가 다시 너희에게 이 모든 걸 알려주리라. 그러나 오늘은 서로 사랑할 것을, 순종할 것을 약속해라.’ 사랑의 계명을 주셨습니다.
우리 신앙은 힘의 원리가 작용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감사가 충만하고, 감사하니 충성합니다. ‘내가 손해보던 말던 상관하지 않습니다. 손해에 대해서 무슨 알레르기 반응을 낼 필요 없습니다. 그저 사랑하고, 희생한다.’ 이겁니다. 주의 교회는 사랑과 희생의 법입니다.
그래서 처음 여기서 중생하고 거듭났을 때부터 훈련을 받아야 됩니다. 우리는 그런 훈련이 상당히 부족한 편인데, 여기에서는 그 나라의 법을 따라야 됩니다. 오늘 교육하시는 목사님들도 잘 생각해야 됩니다. 새가족아카데미에서부터, 새신자들은 새로 태어난 사람들인데 뭐부터 할까요? 굉장히 기초적으로 밥 먹는 것부터 배우빈다. 나중에는 ‘아빠’, ‘엄마’ 하고 말하기 시작할 텐데, 모든 것을 하나님 나라의 법대로 사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가 이제 성장하면서 이제 말도 하고 걷고 하는 어떤 작업을 의도적으로 할 수 있을 때가 되면 그 다음에 성령의 쓰시는 일꾼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나가서 다 섬겨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70~80년대에는 ‘지도자’라는 개념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당시 기독교 교회가 그렇게 컸습니다. 당시에 우리에게도 어떤 과도기로써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상징이나 언어로 우리 신앙을 설명해야 하고 또 교회 발전의 토대를 만들어야 됐기 때문에, 그때에는 지도자라는 개념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 당시 지도자란 권력 있는 사람이 압박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어디서든지 질서가 있기 때문에 우두머리가 있습니다. 지금 지도자라는 게 무조건 나쁘다는 말이 전혀 아닙니다. 어디든지 지도자가 있어야 되고 질서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망가지고 타락한 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착 끌리고 당겨지는 것은 힘으로 이루어진 지도와 리더십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신앙으로서 교회의 의무, 성도의 의무, 그리스도인이 된 자들의 자세 같은 것들을 잘 가르치지 않고, 힘의 원리가 전수되었습니다. 능력 기반으로 하니 사람들이 자꾸 그것을 ‘기회가 오면 모든 것을 덮쳐서 다 탈취할 수 있다.’ 이렇게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 모습은 여실히 드러납니다. 힘으로 지배하려고 하고 기회가 있으면 ‘어? 이것 봐라? 자리가 비어 있네?’ 그렇게 뚫고 들어와서 ‘내 자리다.’ 하고 치려고 하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것은 우리 성락교회의 미래와 세계를 향한 교회의 앞날을 볼 때 말도 안 되고 논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어린 아이 같은 자가 하늘나라에서 받아들여진다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말씀 중에 보면, ‘우리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않는다.’ 했습니다.
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고린도후서 4:1~2)
우리는 직분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직분자입니다. 크리스찬도 직분이고. 또 우리 교회에는 목양사나 여러 가지 기관에 있어서 팀장과 같은 직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옛날 방식처럼 행동하지 않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않고 오직 진리를 나타내고 또 양심적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가 양심을 갖는 것은 굉장히 그리스도인답습니다. 자기 양심에 대해서 논하고 자기의 양심을 하나님의 법으로 비추는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한 경계로써 굉장히 중요합니다.
디모데전서 보면 ‘착한 양심을 가져라. 우리는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다, 성경에 주신 말씀을 따라 내가 지배할 수 있어도 사랑을 대신해 지배하지 아니한다.’라고 했습니다.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단에게 내어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말게 하려 함이니라(디모데전서 1:18~20)
우리의 양심은 우리의 믿음에 기반합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능력을 가지고 그냥 기회가 오면 더 센 사람이 약한 사람의 자리를 빼앗는 것, 다른 사람의 것을 탐내는 것은 너무 불행한 모습입니다. 그런 성락교회는 영원히 뒤로 보내야 합니다.
우리는 그저 감사와 충성, 사랑과 희생으로 신앙생활할 뿐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팀장 급 직분이라도 ‘회장’이라고 하니까 무슨 벼슬로 압니다. 어디 큰 기관에 가면 그것이 어떤 자기의 경력에 들어가는 거죠. ‘무슨 회장’ 그 다음에는 사람을 아래로 내려다 봅니다. 이런 모습은 마땅치 않습니다. 그런 모습은 아주 크리스찬답지 않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가졌던 모습이라도 절대 크리스찬답지 않습니다. 절대 주님이 원하시는 자세가 아닙니다.
세상에 있던 권력과 원리를 교회로 그대로 가지고 들어와서는 안 됩니다. 탐욕으로 인해 하나님의 보좌까지 노리다가 이렇게 하나님의 어떤 권위와 명예까지 상하게 한 모습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깨기 위해, 오늘 파괴된 세상을 살리기 위해서 교회가 들어섰는데 다시 그 원리를 교회에 들여온다고요? 성경에 어디 그런 말씀이 있습니까? 성경 본문의 말씀에는 절대로 희생과 섬김으로 한다고 그랬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겟세마네를 통해 그가 갈보리로 가실 것을 미리 염두에 두고 말씀하고 있는 것인데, 그 와중에 제자들은 ‘천국에서 누가 더 높은 것이 될 것인가?’ 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앞으로 닥칠 고난을 생각하고 있는데 제자들은 그거 가지고 서로 다투고 있었습니다. ‘내가 더 높지 않느냐?’ ‘내가 더 높지 않느냐?’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이 저렇게 다릅니다. 주님은 ‘세상에서는 그렇게 하는 거다. 높은 자가 지배하지만 여기는 그렇지 않느니라. 여기는 섬기는 것이다. 너희가 직분이 있다면, 네가 무슨 장이라면 섬겨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회장이라는 말 쓰지 않습니다. 팀장이라고 합니다. 팀장이라도 그 역시 이름만 바꿨지 여전히 같은 자리로 생각합니다. 이전의 생각 벗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팀장도 1년을 하면 다음 팀장이 나와야 됩니다. 매년 1년 혹은 1년이 아니더라도 빨리빨리 교체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누구 개인의 것도 아니고, 누구 개인의 어떤 명예욕을 채워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누구를 높여 주는 장치가 아닙니다. 우리는 지옥의 영향력이 쭉 깔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다니고 있습니다. 원수가 가득 찬 곳으로, 우리는 음부의 권세 중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가 이렇게 막혀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잘 들을 수가 없는 이런 데서 성령의 힘으로 싸워가되 주의 법으로 해야 됩니다. 누가 봐도 어리석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법! 사랑의 법! 희생의 법!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는 법을 만들어서 모두가 양심적으로 섬겨야 됩니다.
팀장 직분은 1년이 지났으면, 다른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든지 팀장이든 회장이든지, 다른 사람을 세우려 하면 그 다음에 감독을 원수로 삼습니다. 저는 그런 것을 너무 많이 경험했습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의 보기에 악했습니다. 우리에게 악을 행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너무 악하고 우리에게 피해를 줍니다. 그러면 이제 최소 1년을 했으니까 “이제는 다른 사람으로 하겠습니다.” 하고 권면하면, 원수가 됩니다. 어떤 사람의 경우, 너무 불쌍해서 그에게 좋은 직분을 줬는데, 정말 너무 좋은 직분이어서 저는 그분이 제게 평생 고마워하고 충성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저를 배반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우리 교회에서 아무도 그렇게 하지 맙시다. 주의 교회는 하나님이 지배하는 곳입니다. 당신의 양심이 하나님과 맞서 싸우지 않기 바랍니다. 팀장이 됐든, 무슨 된장이 됐든, 그 직ㅈ분에 하나님을 위해 당신의 생명을 놓고 가시기 바랍니다. 시간 딱 떨어지면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이 됐어.” 그럴 때에는 놓고 빠져야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시선이 딱 내리쬐고 있는데 거기서 “나 계속할래. 나를 못하게 했어? 나를 잘라? 잘라??” 이렇게 하고 있으면 당신은 하나님께 “하나님, 나를 잘라?” 하는 거랑 똑같습니다. 다음 사람이 해야 됩니다. 교회는 누구를 바꾸려면 무섭습니다. 왜냐하면 확 배반합니다. 우리 교회가 권위가 약해져서 그런 것이 굉장히 힘들어졌습니다. 굉장히 힘듭니다.
우리가 여기 왜 와있는 줄 아십니까? 여기에서 ‘나 세상에서 권력 있는 사람인데, 나 여기 권력을…’ 그런 것 하지 마십시오. 여기는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성경에 에베소서만 봐도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이 있습니다. ‘in christ’ 여기는 영역이 다르단 말입니다. 영역 개념으로 썼습니다. ‘in christ’라고 하면 마음에 그런 소속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그 영역이 천국의 영역이다 하는 것입니다. 여기는 하나님의 영역에 들어온 것입니다. “감독님, 무슨 말씀이에요? 나는 이 건물 안에 들어왔는데?” 맞습니다. 건물 안에 들어왔지만 여기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당신이 밖에 나가고, 식당에 가고 어디를 가더라도 그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의 영역 속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다는 개념은 여러 군데서, 많은 부분 여전히 혼란 속에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 드릴 때 찬양하는 모습을 보고 옛날에 어떤 분이 그랬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을 그렇게 하면 되냐? 예배 끝나고 해라.”라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린다.’ 이 분은 정말 순전한 마음은 있지만 뭔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예배는 하나님께 학예회회처럼 ‘우리 열심히 해서 하나님께 보여드리자.’ ‘뭔데? 궁금한데?’ ‘조금만 잠깐 계세요. 우리가 다 준비하고요. 하나님, 이제 나오세요. 하나님, 받으세요! 찬양! 찬양!’ 이거 하는 줄 아십니까? 성경에 그런 개념이 있습니까? 하나님께 우리 찬양을 드려 가지고 기쁘게 하고, 예배를 드려서 주님을 ‘하하하. 아이고, 귀여워! 하하하하. 흡족하네.’ 이렇게 우리 것으로 주님을 만족시켜 드린다고요? 온 세상이 하나님 것이고, 산과 들이, 모든 짐승이 하나님 것인데요? 주님은 ‘너희보고 제사 드리라는 것이 하나님께서 송아지 드시고 싶고, 양을 드시고 싶어서 그런 줄 아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찬양하고 우리가 예배드리는 것은 우리가 기뻐서 좋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 돌리고 신나서, 구원의 은혜에 취해서 서로 격려하고 좋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찬양할 때 ‘하나님, 받으세요~ 찬양~ 찬양~ 어디 계시지? 하나님, 이쪽 방향인가? 찬양~ 아, 여기구나! 찬양~ 받으세요~~’ ‘그~래~’ 이렇게 될 줄 알았습니까? 우리가 좋아하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 구원받은 후 좋아서 ‘우리는 해방됐다~ 해방됐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했다~ 앞으로도 계속 우리 가운데 역사할 것이다. 우리를 지배하는 악한 존재들도 많지만, 그러나 우리는 해방됐다~ 하나님은 우리 영혼을 구원하셨다.’ 하고 기쁨의 찬양을 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좋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그 모습을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 까무러치게 하려고 노래 암만 해봤자 그런 마음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으로 인해서 우리 마음이 신령과 진정으로 서로 모여서 다 통하는 그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서 갖고 있던 그런 개념을 여기서 적용시키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기는 세상과 완전히 다른 곳임을 기억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여기는 하나님의 성령이! 하나님의 법이! 역사하는 곳입니다. 성령을 괴롭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은 소멸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자꾸 힘을 잃으시고, 뭔가 몸 둘 바를 모르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를 영접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는 집안에서 자꾸 눈치 보고 계시다가 ‘내가 여기 있어야 되나?’ 하고 괴로워하실 수 있습니다. 성령을 모시는 것은 우리가 영원토록 기념해야 될 봉사의 기회입니다. 성령을 우리의 주인으로 삼고서 성도를 잘 섬기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자기에게 팀장으로서 일할 시간이 1년 주어졌을 때 그가 그 동안 자기 에너지를 다 쓰면 그 1년동안 하나님께는 너무 소중하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너 훌륭해. 너 기억할 게. 너의 인생을 또 앞으로 이렇게 준비할 게. 그 다음에 내가 준비한 내 백성 또 있어.’ 이렇게 하실 때 ‘하시옵소서.’ 이렇게 해야합니다. ‘누가 나를 건드려? 감히?’ 이런 생각하면 우리 교육에 대단히 문제가 있다는 것은 정말 말하지 않아도 분명합니다.
성락교회는 하나님의 교회, 성락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 성락교회는 성령의 교회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우리 기도합시다. 우리 하나님 자신의 성품의 원리, 하나님 본연의 원리, 하나님의 행하심의 원리, 하나님 마음의 원리, 하나님의 진실의 원리, 그분의 참 모습의 원리가 우리를 지배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참 모습, 하나님의 참 모습은 나의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참 모습은 나의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참 모습은 나의 영원한 소망입니다! 하나님 참 모습은 나를 살린 능력입니다. 우리를 받아 주시고, 변화시켜 주시고, 당신의 법에 맞추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 같이 합심하여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 들은 우리 교회를 도와주시사 우리가 세상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세상의 문화와 운영 원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하늘의 법을 따르고,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희생의 법을 따르고, 소망을 주는 내일의 천국을 약속을 받은, 보증을 받은 자의 기쁨을 나누어 소개하고 자랑하는 선한 우리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우리의 원칙과 법을 따르기 원합니다. 우리를 받아 주시고, 우리 교회를 그렇게 발전시켜 주시옵소서. 원수가 우리 사람들의 겉모습을 통해 뚫고 들어와 우리를 망치게, 다시 한번 사망으로 끌고 가는 그런 영향력이 하나도 없도록 도와주시고, 우리가 함께 있을 때마다, 우리가 뭉쳐있을 때마다 생명이 불어나고, 소망이 불어나고, 하나님의 기쁨이 불어나고, 하나님의 의가 불어나고, 성공하는 우리 교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교회 모두가 하나님의 법에 잘 순종하게 해 주시옵시고, 원수가 이용하는 모든 세상의 법을 거절할 수 있는 능력과 분별력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출처] 20231210 모든 직분이 섬김의 직분(마가복음 10:42~45) 성락교회 주일연합예배 김성현감독|작성자 이기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