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1일.
강화도 밴댕이 마을에서 점심을 먹고 교동도의 아담한 향교를 답사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류영하 님이 스마트폰을 열더니 누군가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어! 그거 내 솜씨 같은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확신은 없었다. 글을 더 읽어 내려가서야 어느 핸가 수요반의 야외수업이 떠올랐지만
내가 후기를 썼다는 것과 후기를 써서 어느 방에 올렸는지는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낭독이 끝나갈 무렵에 이르러서야 그날 오정옥 선생님의 작품을 공부했다는사실을 알았다.
류영하 님에게 부탁을 했다. 이 글을 찾아서 '여혜당의 일기'방으로 옮겨달라고.
오정옥 선생님이 작년 초겨울 작고 하신 것을
에세이스트의 어느 누구도 모르고 있다가 얼마전에야 그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오 선생님을 아시는 분들께 선생님의 부음을 전합니다.
삼가 오정옥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수요반 강화 후포항 야외수업
5월이다. 강화 후포항의 갈매기가 우릴 부른다.
담백하고 고소한 밴댕이가 제철을 맞았는데
어찌 익선동 9층 좁은 방에 비비대고 앉아 공부할 맛이 나겠는가?
떠남은 즐겁다. 가슴이 설렌다. 길 찾아 가는 일은 김종완 샘께 맡기고
40에서 80대까지의 학생들이 "하하 호호" 연발인데 김인숙 님이 긴급 제안을 했다.
"여러분, 손뼉을 치며 '괜찮다, 괜찮다'를 외쳐 보세요."
곧,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손뼉장단에 맞추어 '괜찮다'의 사설이 줄을 이었다.
"어려운 일이 닥쳐도 괜찮다, 괜찮다."
"남편이 짜증을 내도 괜찮다, 괜찮다."
" 글이 잘 써지지 않아도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고 괜찮다."
속이 후련했다. 모든 일이 다 괜찮아 지는 느낌이었다.
강화에서 밴댕이가 가장 많이 잡히는 곳은 화도읍 내리에 있는 선수포구.
갯내음이 짭쪼름하게 풍기는 이곳은 밴댕이 배들의 베이스 캠프다.
김포댁 정정자 샘이 일찍부터 길 터 놓은 밴댕이 마을이다.
어구를 손질하던 구릿빛 어부는 친절했다.
이곳에서는 하루 평균 10여 척의 어선이 출조하는데
많을 때는 하루 수십여 톤의 밴댕이를 포구에 쏟아 놓는다나...
질서정연하게 '옆으로 나란히' 하고 있는 횟집 간판들.
느긋하지 못하고 속이 좁으면서 이해심이 없는 사람을 일러 흔히
"밴댕이 소갈머리 같다"고 한다. 이 말은 밴댕이의 급한 성질에서 연유한 것인데,
밴댕이는 그물에 걸리면 제 성질을 못 이기고 파르르 떨다가 바로 죽어버린다. 그래서
어부들도 살아 있는 밴댕이를 구경하기 힘들단다. 냉동시설이 발달하지 못했던
70년대까지만 해도 밴댕이를 횟감으로 쓸 수 없었던 것이 그 때문이다.
밴댕이 코스 요리는
회 -> 무침 -> 구이 -> 완자 매운탕으로 이어진다.
완자를 넣은 매운탕은 왜 아니 보이느냐구요?
맨 마지막에 나오니까 쬐매 기다리셔요.
음식은 신속하게 차려졌고 배는 적당히 출출하고...
김삼진샘이 꿍쳐가지고 온 향기로운 술로
건배!!!
흐음...!!! 향기 먼저 마시고...!!!
깻잎에 된장을 살짝 바른 후,
초고추장을 듬뿍 바른 밴댕이를 싸서 눈을 흘기며(?)입에 넣었다.
오호라, 깻잎의 쌉쌀한 향과 밴댕이의 고소한 맛의
절묘한 조화!
밴댕이는 불포화 지방산이 많아 성인병이나 허약체질에 좋다.
강화도의 우스갯소리 중엔 "팔십 노인이 밴댕이를 자주 먹으면 주책을 부린다" 거나
"밴댕이를 잔뜩 먹고서는 외박하지 말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니
더 말하면 잔소리...
밴댕이 쌈의 크기에 비해 김종완 샘의 입은 넘 작았다.
회 접시가 깨끗해지자 정정자 님의 불호령이 홀을 가로지른다.
"뭐 하는 거요. 접시가 비었는데..."
"갑니다 가요. 새콤달콤한 밴댕이 무침 대령이요."
이런 말 들어 보셨지요?
"집을 나가려던 며느리도 밴댕이 굽는 냄새에 슬며시 신발을 되돌려놓는다."
가을에 집 나간 며느리는 전어가 불러들이고,
봄철에 집 나간 며느리는 밴댕이가 돌아오게 한다던가...
완자매운탕의 칼칼한 맛에 취하며 식사 종료.
이제는 수업시간. 커피 한 잔으로 입가심하고 자리를 옮겼다.
오정옥 샘의 두툼한 원고를 받아든 학생들의 태도가 금새 진지해졌다.
김종완 선생님 옆엣분이 오정옥 선생님
"어린 새댁은 입에 물 한 모금을 머금고 발갛게 물든 명주에 물보라를 좍 뿜어댔다.
...(중략)...'인생은 다 그런 거지 뭐'하는 말로도 도저히 나의 이 허무감을 달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늘 일몰의 빛이 그렇게도 쓸쓸하게 보였나 보다."
부러웠다. 목소리에 문제가 있는 나는, 무려 8페이지나 되는 원고를
낭창거리는 목소리로 차분히 읽어 내리는 80대의 오정옥 샘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오정옥 샘의 부군은, 제가 청주사범부속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동요작곡을 지도해 주신 스승이십니다)
모두 설명체로 된 것을 중간중간 묘사체로 바꿀 것을 비롯하여
몇 가지의 지적이 있었고... 야외수업이 끝났다.
교통체증에 걸리기 전에 돌아가야 한다.
선수 밴댕이마을에 모여 들었던 차들이
하나 둘 주차장을 빠져 나간다. 우리도 그 대열에 끼었다.
가로등에 높이 올라앉은 갈매기의 전송을 받으며...
- 2009. 5. 20 -
첫댓글 역시 여혜당선생님의 사진이 들어가야 제 맛입니다.
맛깔스런 김샘 후기에 양념을 조금 더 넣었는데 괜찮은지요.
무슨 말씀을... 너무 좋습니다.
꿀꺽.
잘 씹어 삼키세요.
맛있는 밴댕이와 정다운 모습들 그리고 진지한 공부... ^^ 꼼꼼히 정리하시고 즐겁게 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마구찍사라 사진이 별로지만 그냥 기록으로 보아주십시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건 완전히 포토에세이입니다.
에궁~ 글솜씨가 시원찮아서...
밴댕이는 말로만 들었지 먹어본 적이 없는 저로써는 먹음직스럽게 변신한 밴댕이를 보는 순간 입이 다 벌어집니다...,
회 좋아하는 저도 작년에 처음 먹어보았는데 입안에서 살살 녹더군요. 벌써 내년 5월이 기다려집니다.ㅎㅎㅎ...
오늘 저녁에 김종완 선생님 입을 자세히 봐야겠어요...ㅋㅋ
어쨌거나 밴댕이쌈은 무사히 통과했음 ...ㅋㅋㅋ
분위기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언제 한국 들리면 저같은 사람도 끼워주실까요?? 글공부를 해야 되나요?? 암튼 부럽습니다. 보기 좋고요.......좋은 모임 계속 발전하길 바랍니다.
한국 오시면 꼭 연락주십시요. 만사 제쳐놓고 모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옛 사진도 가끔은 볼 만 하네요.....무척 좋았습니다. 사진 잘 보고 갑니다~~~~
오늘(5월 21일) 옛 수요반 문우 몇 명이 후포항을 찾아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류영하 님이 스마트폰에서 윗글을 읽더군요. 기억 속에서 지워졌던 옛일이 '왁자지껄 방'에 있다기에 찾아서 '여혜당의 방'에 올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때 오정옥 님의 작품을 공부했는데...이제 다시는 뵐 수 없는 분이 되셨기에 이 자리를 빌어 삼가 명복을 빕니다.
선생님 저는 수요반 학생일 때가 제일 행복했습니다. 오늘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어 어찌나 좋던지...
사진에 제가 있네요ㅋㅋ 선생님의 구성으로 새롭게 태어난 장면 장면이 옛추억을 되새기게 합니다.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