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백인 여성이 진열대에서 뭔가 서둘러 찾다가 "밴디 좀 찾아 주세요!" 라고 청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밴디"란 식료품은 떠 오르지 않아 머뭇거리며 캐나다 문화를 아직도 너무 모르는구나 하고 자책을 했다. 그러자 상처 난데 필요한 '밴디지" 찾는 것이라고 시늉을 했다. 서구에서 밴드는 일용상품으로 일반 진열대에 수북히 쌓아 놓지만 우리에겐 의료용품이란 관념에 의약품코너에 따로 진열을 하는 문화의 차이에서 온 작은 해프닝이었다. 이것이 문화차이에서 오는 단편적인 불통과 오해의 사례다.
조금 성질 급하면 서로 무식하다거나 바보같다는 선입감에 말 싸움까지 할 수 있는 상황이다. 다민족 다문화의 대표적인 캐나다에서는 조용히 이해시키려 노력하던지 아니면 물러나 잊고 말기 때문에 갈등으로 비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쩌면 무관심으로 확대될 수도 있는 문화라고 우려는 되어도...
캐나다에 이민을 왔을 때, 수많은 이들이 여러 삶의 우리식 요령들을 일러 주었지만, 한 선배로 부터 "캐내디언들의 겸손과 합리적인 사고와 문화를 먼저 배워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다. 문화를 알아야 선진국도 되고 돈도 벌 수 있다고 서울, 대전, 부산에 문화기획자 개발원 설립과 강의를 했던 내게는 가슴 깊이 와 닿는 얘기였다. 다 민족 다 문화의 남의 나라까지 와서 상대를 모르고 존중할 줄도 모르면, 역으로 무시를 당하게 될 것이라 생각되었다.
캐나다에서도 인종간, 문화간의 다름에 선뜻 이해가 안 되거나, 선입견 또는 편견에 따른 불편한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도자들이 틀을 만들고, 백성들이 지켜 가는 전통을 조용히 어깨너머로 보고 따라 가는 양해와 양보가 문화화되어 있어 큰 탈은 없을 뿐이다. 개인, 종족, 지역간의 문화와 사상과 종교의 차이로 오는 불통이나 오해는 살인이나 전쟁까지도 불러 오는 무서운 원인이며 장벽이 되기 때문에 역사를 통해 모든 나라나 단체들의 걱정거리인데 비하면 훨씬 평화적이라는 것이다.
유태인들과 함께 천손이며 단일민족이라고 외치면서도, 유일한 남북 분단 국가면서 또 내부적으로 산산히 금간 채 겨우 형태만 유지하고 있는 진공유리 같은 희한한 곳이 우리 나라라는 느낌이 든다. 동서로 지역갈등과 수많은 종교 사상적 갈등을 안고도 세계 경제 13위의 기적을 이룩했지만 분열과 불통의 결과로 언제 부스러저 내릴지 모르는......
이 와중에 세계적인 흐름과 한류의 영향으로 다문화가 급속히 퍼져 다문화 가정이 이미 100만을 훌쩍 넘어 섰다고 한다. 문화차이에서 오는 가족간의 갈등도 많다고 한다. 가족 특히 고부간의 갈등이 문화차이에서 오는 문제중에 가장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경제적으로 발전한 단면만 보거나 사랑만 믿고 시집을 오는 타민족 신부들과의 심각한 갈등이 모든 고질적인 갈등의 표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서로의 국가와 문화, 경제, 교육적 환경의 차이를 서로 다른 언어로 제대로 표현도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불통에서 시작된다. 이 마음의 벽을 헐어내고 진공유리처럼 보다 단단하고 평화로운 가정을 꾸리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같은 언어와 문화 속에 성장한 한국 사람들끼리도 편이 갈리고 고부간에 심각한 갈등이 있는데, 평생을 다른 나라, 다른 문화에서 살다 시집 온 며느리들을 이해하기에 앞서 자기의 주장을 고집하면 갈등은 당연한 것이다. 다름을 문제 삼기 전에 그 차이가 무엇이고 해결책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일 것이다.
한국의 결혼은 가문의 가장 큰 대사로, 준비부터 결혼 뒤까지 관례와 어른들이 배려할 일이 너무 많다. 서구에서는 두 사람의 진정한 사랑이면 거의 모든 일은 두 당사자의 뜻대로 마무리가 된다. 설령 예비 시어머니와의 갈등이 있으면 결혼식에 초청을 안 하더라도 우선 원만한 식을 치루는 예까지도 있다고 한다. 억지를 부리며 버티다 서로 상처를 다 받은 뒤에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한탄하기보다 우선 건전한 사고의 신랑신부의 의견을 지원해 주는 문화이다. 초청된 손님들은 결혼식도 끝나기 전에 밥만 먹고 가는 것이 아니라 밤 늦게 까지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새 식구, 친지들과 친분을 쌓고 벽을 낮추는 것이 격식에 우선하지 않는 서구식 결혼 문화의 차이이다. 예의와 도덕적 기준으로 보면 후레자식들의 문화라고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단지 고부간의 갈등으로 결혼을 못하는 것보다 시간을 가지고 풀 수 있고 보다 더 친밀해 질 수도 있다는 합리적인 배려라고 보면 좀 이해가 된다.
서로 어려운 만남과 결정을 통해 가족이 되기로 했으면 서로 존중하고 보듬어 주려 고 노력하면 오히려 쉽게 풀릴 수 있는 일들이다. 일부 다문화 가정들이 문제가 있다고, 부정적인 예를 전부 다 모두가 그런 것처럼 말하고, 의심하면 문제는 실제보다 비약적으로 증폭하여 불행한 결과까지 진전되는 것이다. 이는 가족에서 시작 해 지역사회와 국가의 문제로 확대될 수 밖에 없다.
근래에 큰 문제가 되고 있는 미국의 불랙 매터 사건이나 한국의 고질적인 지역갈등 역시 발단의 원인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의 불랙 매터란 백인 경찰이 흑인 범죄자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과잉대응하다가 사망을 하게 한 사건으로 경찰 당사자가 책임지고 경찰국이 보다 세부적인 규정을 만들어 재발하지 않도록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걸 흑인 인종차별이라고 시위를 한 것까지는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시위를 증폭시키려는 일부 과격한 세력의 선동으로 타 민족들의 재산을 약탈하고 폭력을 일삼아 순수한 목적과 정의감을 잃어 의식있는 흑인들 부터 돌아서게 되었다.
아직 부정선거 논란으로 결론이 나지 않고 있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 트럼프 후보 쪽이 역대 최고의 득표를 한 이유의 하나가 의식있는 흑인들이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트럼프 쪽으로 예전 대비 배 이상 많이 늘었다는 것이다.
전에는 흑인들이 아이를 많이 나아 머릿 수를 늘리면 언젠가는 흑인들이 영구히 투표를 통해 백인들을 이기는 자유민주주의의 맹점을 이용하고자 했다. 그들의 생각대로 첫 흑인 대통령까지 배출했지만 다문화 단일 국민성을 주장하는 미국의 국가 정체성과 자유민주주의 정의를 우선하는 쪽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번 불랙매터에서 결정적으로 정의와 국가 대의에 반하는 것을 보고 아무리 종족의 인권을 명분으로 내세워도 부당함을 안고서는 타민족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한층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약탈과 폭력을 사용하면 스스로 다민족 자유민주주의 국민으로서의 신뢰를 잃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의 지역갈등은 자유민주주의의 정의에 반하는 일에도 무조건 지연, 학연 위주로 몰입한다는 것은 스스로 선진 국민이기를 거부하는 행위나 다름이 없다. 이는 정정 당당함보다 피해 의식에만 집착하던 초기 흑인들처럼 점점 늘어나는 다문화 가족 자녀들에게 국가 정체성보다 민족별로 맹목적일 정도로 뭉치는 계기와 토대를 만들어 주는 꼴이 되어 더 분열을 심화시키게 될 것이다.
부정선거나 부정직한 국가 지도자들일지라도 내 고향, 우리 당 사람이라고 무조건 찬양하는 행위는 독재정권이나 미친 네로황제에게 용비어천가를 불렀던 역사들을 간과한 어리석음의 발로라 할 것이다. 자유 민주주의의 정의와 인권을 사랑하는 선진 국민으로 스스로 변신하지 않는다면 잠시 권력은 유지할 수 있을지 몰라도 선진국으로 가는 길에 장애가 될 뿐이다.
캐나다에서는 나이, 재산, 혈통을 묻지 않는 것이 예의다. 친해져 슬며시 혈통을 물으면 여러 조상들의 혈통을 나열하다가 머리를 긁적이며 "나 개인의 인격으로만 봐죠!"라는 답을 들을 수 밖에 없다. 이는 종족이나 문화의 차이에 다른 선입견으로 보지말고, "밝고 착하고 성실하며 정의로운 인격으로만 판단하고 사귀자"는 의미다. 즉 다문화 시대에 "다름"을 자기 입장만 생각해 "나쁨"으로 잘못 표현하거나 다투려고 하는데서 오는 모든 갈등을 일단 막을 수 있는 첫 걸음이며 결론인 것이다.
이는 "진정으로 사랑과 존중을 받으려면, 진실로 상대를 먼저 이해하고 존중하며 사랑하라"는 우리 나라의 개천 철학인 "홍익인간" 정신으로, 스스로 구현하면 온 세상 어떤 관계의 갈등도 풀 수 있을 것이라 본다.
- 계간 "글의 세계" 겨울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