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신주쿠(新宿) 전철역 위에 자리잡은 오다쿠(小田急) 백화점 광장. 이곳은 언제나 인파(人波)로 넘실거린다. 연인(戀人)을 기다리는 사람, “오네가이시마스(부탁합니다)”를 연발하며 홍보 전단을 나눠 주는 미니스커트의 아가씨들, 자위대를 군대로 전환해야 한다는 극우단체의 가두시위까지 섞여 있다. 누가 뭐래도 신주쿠 역(驛) 광장의 가장 큰 특징은, 죽은 도시를 연상시키는 일본의 여느 빌딩촌과는 달리, ‘살아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역동적인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신주쿠 역 광장에는 사시사철 구태의연한 표정으로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는 두 명의 구두닦이 할머니들이 ‘명물’로 통한다. 이들이 언제부터 역 광장에서 구두를 닦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본인들에게 물으면 “20년 전에도, 30년 전에도 이곳에 있었다”고 답한다.
구두를 닦는 할머니들의 모습은 과거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없이 단아하다고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할머니들은 광장 땅바닥에 비닐을 깔고 그 위에 방석을 놓은 뒤, 무릎을 꿇은 자세로 손님을 기다린다. 두 할머니의 머리에는 항상 깨끗하게 손질된 스카프가 매어져 있다. 이들은 새벽부터 나와 합성섬유로 만든 앞치마를 두르고 구두 닦는 도구들을 가지런히 정돈한다. 그러나 두 할머니는 단 한 번도 “구두 닦으세요”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앞에 놓인 조그만 의자에는 손님들이 끊임없이 다가와 앉는다. 필자가 이 할머니들을 처음 만난 것은 80년대 초다.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변한 것이라곤 새로 나온 3~4개의 구두약 정도다. 물론 이마의 주름도 몇 줄 늘었다. 구두약을 묻히는 하얀 천 조각과 솔, 광을 내기 위한 길다란 가죽 띠 등을 담은 낡은 나무상자는 20년 동안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래서일까? 할머니들의 손님 중에는 수십 년 단골손님들이 많다고 한다. 구두를 닦던 중년 남자는 “한 달에 한 번쯤 할머니를 찾는다”고 말했다. 그는 “개축 공사를 한 도쿄의 대다수 역사(驛舍)에선 구두닦이들이 사라졌다”며 “이곳 할머니들에게선 옛 향수를 느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손님이 없는 틈을 이용해 질문을 던졌다.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먹을 만큼 먹었어.” 주위에 물어보니 두 할머니 모두 70대 중반이란다. “자식들은요?” “모두 자기 일들 하지.” 누가 물어도 할머니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당당하고 거침없다. 구두 닦는 직업에 대한 회의나 부끄러움은 티끌만큼도 느껴지지 않는다. 일본 속담 중엔 “손에서 일을 놓는 순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로 무덤”이란 말이 있다. 한 할머니는 “자식의 인생은 자식 인생이고 내 인생은 내 인생”이라고 말했다. 의식이 살아있는 한 일을 놓지 않겠다는 뜻이다. 철저하게 ‘마이 웨이(My way)’ 페이스다.구두 한 켤레를 닦고 받는 돈은 500엔. 긴자 같은 고급 번화가에서는 700~800엔을 받는 곳도 있다고 한다. 두 할머니는 하루 평균 20~30여 켤레를 닦는다. 일당으로 치면 1만~1만5000엔쯤 된다. 피크닉 시즌인 봄엔 40~50컬레를 닦는 날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은 10컬레를 못 닦는 날도 있다며 울상이다. 할머니들은 “10년 전만 해도 구두가 반짝반짝 빛나야 멋쟁이 소리를 들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지저분한 대로 신는 것을 멋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손님이 줄었다”고 말했다. 여기에 집에서 간단히 닦을 수 있는 구두약과 구두 닦는 기계가 나온 것도 할머니들의 수입을 시원찮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자신들의 한달 수입에 대해선 ‘노 코멘트’로 일관했다. “죽으면 장례 치를 비용은 모아뒀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두 분이 친구냐”는 질문엔 빙긋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취재를 마치기 위해 할머니들의 이름을 물었더니 한사코 가르져 주지 않았다. 사진을 찍는 것도 완강히 거부했다. “신문에 날만한 일을 한적이 없다”게 이유였다.
(도쿄=柳在順·재일 르포라이터·yjaesoon@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