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일(寒食日)은 날짜가 정해져 있지 않고 동지(冬至)에서 105일째 되는 날이며, 2024년 4월 5일이다.
한식(寒食)이라는 명칭은 이날에는 “불을 피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다.”는 뜻으로 나온 것인데, 한식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진(晉)나라 헌공(獻公)은 계비(繼妃) 여희(姬)의 모함에 빠져 전처 소생인첫째 아들 신생(申生)은 죽고 둘째 아들 중이(重耳)는 죽음을 피해 유랑 길에 세째 아들 이오(夷吾)도 진(秦) 나라로 도망하였다
둘째 아들 중이(重耳)는 그를 추종하는 약간의 무리와 함께 변방에서 방랑생활을 할시에 그들은 식량이 없어서 고사리로 근근히 연명해야 했다.
그러나 귀족 생활에 몸이 베인 중이(重耳)는 고사리를 잘 먹지 못하였다.
이에 그 무리 중의 한사람인 개자추(介子推)는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내어 그 허벅지 살로 고깃국을 끓여 중이(重耳)에게 대접하는 등 충성을 다했다.
훗날 진(秦)나라의 도움으로 무려 19년이라는 긴 망명생활을 끝내고 기원전 646년 중이(重耳)는 진(晉)나라 새 임금 문공(文公)이 되었다
새 임금이 된 문공(文公)은 논공행상(論功行賞, 공적의 크고 작음 따위를 논의하여 그에 알맞은 상을 줌)으로 인재를 등용함에 있어 지난 날의 기나긴 방랑생활 기간 동안에 자신에게 충성을 다 바쳤던 개자추(介子推)에게 벼슬을 내리는 것을 간과하고 말았다
이에 실망한 개자추(介子推)는 세상을 등지고 노모와 함께 산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진(晉) 문공(文公)은 사람을 보내어 개자추(介子推)를 산에서 내려오게 하였으나 개자추(介子推)는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다른 이야기로는 문공이 처음부터 등용했는데 개자추가 사양했다고 한다.)
진(晉) 문공(文公)은 그를 산에서 내려오도록 하기 위한 방책으로 산에 불을 질렀다. 그때가 동지(冬至)에서 105일 째 되는 1년 중 가장 건조한 날이어서 불은 삽시간에 산 전체에 번졌으나 개자추(介子推)와 노모는 결코 산을 내려가지 않고 포목소사(包木燒死, 나무를 끌어 안고 불에 타 죽음)하고 말았다.
또 한번의 잘못을 저지른 문공(文公)은 크게 후회하고 그를 영원히 기리기 위해 이날만이라도 불을 피우지 않게 하여 찬 음식을 먹었다 하여 이 날을 寒食日(한식일)이라 하게 되었다.
한식일(寒食日)에 비가 내리면 개자추(介子推)의 넋을 위로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를 ‘물한식’이라고 하며 풍년이 든다는 속설(俗說)이 있다.
다른 하나는 고대의 개화의례(改火儀禮)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원시 사회에서는 모든 사물이 생명을 가지며, 생명이란 오래되면 소멸하기 때문에 주기적 갱생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불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오래된 불은 생명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오래 사용한 불을 끄고 새로 불을 만들어서 사용하는 개화 의례를 주기적으로 거행했는데, 한식이란 구화(舊火)의 소멸과 신화(新火) 점화까지의 과도기란 설명이다. 개자추의 죽음은 구화(舊火)를 끄면서 제물을 태우는 관습을 반영한 설화(屑話)라고 한다. 이 중 개화의례(改火儀禮)와 관련짓는 후자의 설이 더 유력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종묘에서 제사를 지내고, 백성들도 술과 음식으로 제사를 지내며, 조상의 묘를 찾아 살피고 봉분(封墳, 흙을 둥글게 쌓아 올린 무덤)을 개수하기도 한다.
만일 무덤이 헐었으면 잔디를 다시 입히는데 이것을 개사초(改莎草)라고 한다. 또 묘 둘레에 나무도 심는다. 그러나 한식(寒食)이 3월에 들면 개사초(改莎草)를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날 성묘하는 풍습은 당(唐)나라에서 신라시대로 전해져 오고 고려시대에는 한식(寒食)이 대표적 명절로 숭상되어 관리에게 성묘를 허락하고 죄수의 금형(禁刑)을 실시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민속적 권위가 더욱 중시되어 조정에서는 향연을 베풀기도 하였다.
한식(寒食)은 양력으로 4월 5일 또는 6일이며 식목일(植木日), 청명(淸明)과 겹치기도 한다. 이 무렵은 씨를 뿌리거나 나무를 심기에 알맞으므로 특별한 놀이를 하지 않고 조상의 묘를 찾아 차례를 지내거나 성묘하면서 조용히 하루를 보낸다.
농가에서는 이날 농작물의 씨를 뿌린다.
한식날에는 전날 준비해 놓은 찬 음식을 먹는 풍습이 있다. 지역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쑥을 이용한 떡, 탕, 화전, 메밀국수 등을 먹기도 한다.
또한, 한식(寒食)은 청명(淸明)과 함께 꽃이 활짝 피는데, 주로 진달래꽃으로 차를 마셨다.
속담으로는
“한식(寒食)에 죽으나 청명(淸明)에 죽으나”
오십보 백보, 거기서 거기란 뜻으로 쓰인다.
“정성이 있으면 한식(寒食)에도 세배간다.”
한식에 갑자기 웬 세배라고 할 수 있지만, 아무리 때가 늦어도 정성만 있으면 하려던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참고문헌 : 네이버지식백과/다음백과/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