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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 NYT )가 ‘일제의 식민통치에 저항한 독립운동가 유관순’이라는 제목으로 유관순(1902~1920) 열사를 추모하는 기사를 실었다. 그러면서 매체는 “1851년 창사 이래 뉴욕타임스의 부고기사는 주로 백인남성들에 관한 것이었다”며 “이제부터는 주목할 만한 여성들을 추가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매체는 “1919년 봄, 한국의 독립운동이 일어났을 때 16세 소녀 유관순은 민족의 자유를 갈망하는 상징이 됐다”고 전했다. 이어 유관순이 이화학당에서 시위에 참여해 ‘만세’를 외쳤고 최남선과 민족대표 33인에 의해 작성된 독립선언문을 고향 충남 천안에 반입해 만세운동을 이끌었다고 뉴욕타임스는 소개했다.
또한 유관순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 고문을 당하면서도 수감자들의 석방과 한국의 독립을 요구하는 용기를 지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매체는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다”는 발언도 소개했다.
1920년 9월 28일 유관순 열사가 순국 직전에 “일본은 패망할 것”이라는 말을 남긴 사실도 덧붙였다. 또한 매체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2015년 이화여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으면서, 유관순 열사를 언급한 사실을 소개했다.
당시 반 전 총장은 “폭력이 한 사람을 죽일 수는 있어도 그들의 기억과 이상을 죽일 수는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면서 “유관순 열사는 옥에서 가혹한 고문을 받고 그 상처로 목숨을 잃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신념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고, 오늘날까지 열사의 이름은 잊히지않고 있다”고 한 발언을 소개하며 반 전 총장이 그를 잔 다르크에 비유했다고 전했다.
매체는 “‘잊혀서는 안 되는’ 여성들을 전 세계에서 찾아 뒤늦게 그 삶을 조명한다"면서 1주일에 한 사람씩 소개하고 있다. ‘더는 간과하지 않겠다( Overlooked No More )’가 이 시리즈의 제목이다. 2주 전에는 '제인 에어'의 소설가 샬롯 브론테(1816~1855) 기사가 나갔으며 그 전에는 비극적 미국 시인 실비아 플라쓰(1932~1963)를 실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25&aid=0002809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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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간과된 여성들’ 기획기사 “독립열망 한국의 얼굴” 재조명
웹사이트 첫 화면 정중앙 게재
3·1운동에 참가해 옥고를 치르다 순국한 유관순 열사의 부고기사(오비추어리)가 뉴욕타임스( NYT )에 등장했다. NYT 는 28일 ‘일본의 통치에 저항한 한국의 독립운동가’ 유 열사가 “한마음으로 자유를 열망하는 나라의 얼굴이 됐다”며 그의 일생을 상세히 소개했다. 기사는 이날 NYT 웹사이트 첫 화면 정중앙에 게재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1920년 세상을 떠난 유 열사의 삶이 외신을 통해 재조명된 것은 NYT 가 최근 시작한 ‘반성문 격’ 기획 덕이다.
NYT 는 “1851년 창간 이후 작성된 수천 건의 부고기사의 주인공은 대부분 백인 남성이었다”며 큰 업적을 남겼음에도 부고기사가 작성되지 않은 여성들의 일생을 뒤늦게나마 알리는 ‘간과된 여성들( overlooked )’이란 기획을 이달 초 시작했다.
이를 통해 ‘제인 에어’를 쓴 유명 작가 샬럿 브론테(1855년 사망)와 중국 청(淸)대 말의 시인 추근(秋瑾·1907년 사망), 산소통 없이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최초의 여성인 앨리슨 하그리브스(1995년 사망) 등 15명 이상의 일생이 다시 빛을 봤다.
유 열사의 부고는 이 기획의 최신작이다.
NYT 는 1919년 당시 이화학당에 다니던 16세의 유 열사가 3·1운동이 시작된 뒤 고향인 충남 천안으로 내려가 ‘독립선언서 복사본과 태극기 등을 직접 주민들에게 나눠주며 아우내공원에서 3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독립을 외쳤다’고 설명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죽음을 맞이한 유 열사가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으나 나라 잃은 고통만은 견딜 수 없다”는 어록을 남겼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20&aid=0003137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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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히 잔다크따위에 비교하다니
지 이름조차 쓸줄몰랏던 천하무식 촌년이 졸다가 꾼 꿈을 믿구서 나라전체가 엠병떨엇던 어처구니없는 역사
이마저 온갖 미사려구가 떡칠되서 구국의 소녀니 마녀니 중세유럽을 시꺼럽게 만들엇던 역사
봉건주의 궁정과 종교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한 영웅만들기가 어떻게 성공햇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역사
만일 프랑스가 아니고 저 아프리카 서남쪽 조그만 나라엿다면 오늘날 이리도 유명해질수 잇엇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