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 흑백 영화를 처음 봤던 때가 국민학교 초급 시절이었던 같다, 학교 강당에 마을 사람들을 저녁에 모아
놓고 전기가 아직 안들어 오던 시절이라 쿵쾅거리는 발전기를 돌려 놓고 변사가 해설을 하였는데 제목이
[양산도} 였던 것 같다.
"...이러차야 아무개와 아무개가 물래방아에서 몰래 만나 이렇게 사랑을 속삭였던 것이었다....."
그러다 한번씩 해군 위문단이 거제에 찾아 와서는 학교 운동장에서 밤에 유성 흑백영화를 틀어 주곤 했었다,
주로 장동희등이 주연으로 나오던 반공 전쟁 영화등이었는데 적을 무찌를 때는 이구동성으로 환호를 지르며
박수를 치곤 했었지, 어쩌다 최은희가 나오는 순애보 영화도 있었는데 제목만 기억나는 {촌색시}가 있었는데
어린 마음에도 청순 가련한 최은희를 보며 나도 크면 저런 색시를 각시로 맞아야지 하는 꿈을 꾸었었지.
허장강이 김마담을 꼬시며 하던 대사는 자주 흉내내며 놀았었던 같다
"...김마담, 이번 일만 잘 된다면은 ...허 허 허 ..."
어릴 때 영화를 활동사진이라 했고 영화 보러 가는걸 활동사진 보러 간다고 그랬는데 움직이는 사진이라고
그랬던 것 같다.
얼마뒤에 천연색 칼라 영화가 나오면서 가설극장 업자들이 오면서는 마을 공터에 흰색 가림막을 치기 시작하고
1톤 짐차에 배우들을 그린 선전 그림판을 세우고 트럼펫으로 가요를 불어대며 동네를 돌아다니며 선전을 하기
시작하면 마을은 완전히 축제 분위기 같이 들떴었는데 꼭 안빠지는 선전문구가 있었다.
"총 천연색 씨네마스코프"
우렁찬 발전기가 돌아 가고 백열등 전구에는 벌레떼들이 몰려들고 입장료 구할 길이 없는 우리들은 옹기종기
모여 우째 가림막 텐트를 몰래 끼여들까 기회를 노리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어쪄다 잽싸게 끼어들어 간 애를
부러워 하다가는 얼마뒤 목덜미를 잡혀 끌려 나온는 걸 보고 깔깔거리기도 했다.
"밖에만 지키는게 아니고 안에서도 지키는 갑다 그자?"
"그랑께 머리부터 디밀어 드가모 안되고, 궁디부터 디밀어 들어 가야 한다 그래야 잡히도 들어가는게 아니고
나가는거라카모 이리 나가모 안되고 들어와서 문으로 나가야 한다고 덷고 들어간다카이 낄낄낄"
고등학교 진학하고서는 가끔 영화 단체 관람을 가곤 했는데 그날은 마냥 즐겁기만 했다. 국산영화 개봉관이었던
광복동의 부산극장과 대영극장에는 간 기억이 없고 외화 전문 극장이었던 중앙동의 현대극장, 그리고 남포동의
동명극장엘 가곤 했었지.
기억에 남는 영화는 007의 전신격인 {OSS117} 그리고 토니 커티스 주연의 {80일간의 세계일주}가 생각나고
철판을 가슴에 깔고 나타나던 크린트 이스트우드의 {황야의 무법자}가 감명 깊었고, 홍콩 영화 전성기에 왕유의
{외팔이} 도 있었지.
단체 입장료가 10원이어서 1원짜리 열개를 꼭 쥐고 줄지어 검표원에게 주며 들어 갔는데 누군가가
"정본아 니 1원짜리 열개 들고 있나?"
"응 그래"
"다 줄거 없다, 일일이 세어 보지도 않응께 한 여덟 개만 줘도 모른다."
난생 처음 해보는 사기 행각에 벌떡거리는 가슴으로 입장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언젠가는 명경이가
"정본아 우리 공짜 영화 보러 안갈래?"
"공짜로 영화를 우찌 보는데."
"김영수 삼촌이 대영극장 간판을 그리는데 삼촌 만나러 왔다 하고 들어 갔다가 영화 보면 된단다."
그래서 셋이서 삼촌 만니러 욌다 하고 간판 그리는 곳까지는 들어갔는데 그날 삼촌은 만나지도 못하고 간판실에서
극장 들어가는 문을 찾지 못해 지독한 페인트 냄새만 두시간가량 맡으며 삼촌 기다리다 만나지 못하고 허탈하게
돌아 나와야만 했었던 적도 있었다..
이제 머잖아 8순을 바라 보며 역사의 증인 되어가나 싶다. 대통령이 벌써 13번짼가 살만큼 살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