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장 12-13절에 대한 사계님의 이해와 저의 이해
이지끼을
요한복음 1장 12-13절은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라는
말씀인데 사계님과 저의 이해가 다릅니다.
어떻게 다른지 왜 다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음은 사계님의 글,
[이지끼을 님을 위한 글: ‘알미니안 신학 구원론’과 ‘개혁 신학 구원론’ 비교] 로 부터 인용한 부분입니다.
https://cafe.daum.net/1107/YlDw/19
(번호 (1)과 (2)는 제가 붙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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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름에 달 가듯이”를 오독誤讀한 알미니안 신학:
믿음(회심)은 중생에 선행한다.
요한복음 1장 12절
① 원인
상반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② 결과
하반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2)
요한복음 1장 12절~13절
② 결과
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분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회심) 하나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칭의)
① 회심과 칭의의 원인
13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 난 자들이니라.(⇨중생)
★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 믿기로 결단해 하나님 자녀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낳아주셨기에
비로소 그분 이름을 영접하게 된다는, 믿게 된다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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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은 저의 이해이고 (2)는 사계님의 이해입니다.
사계님이
★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 믿기로 결단해 하나님 자녀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낳아주셨기에
비로소 그분 이름을 영접하게 된다는, 믿게 된다는 말씀이다.라는 말을 하는 이유는
사계님은 전적부패교리에 따라 성경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전적부패교리는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살려 주시기 전에는(중생케 하시기 전에는)
인간 스스로 믿음을 가질 수 없다고 주장하는 교리이기 때문입니다.
곧 "중생은 믿음에 선행한다"고 주장을 하는 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 1:12-13절을
하나님께서 먼저 낳아주셨기에 비로소 그분 이름을 영접하게 된다, 믿게 된다 는 말씀으로, 사계님은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먼저 낳아주셨기에 비로소 그분 이름을 영접하게 된다, 믿게 된다 라는 사계님의 주장은
자신이 앞에 말한 것을 교묘하게 생략한 것입니다
이 주장을 다시 보면
(1) 하나님께서 먼저 낳아주셨기에
(2) 비로소 그분 이름을 영접하게 된다, 믿게 된다 라는 말만 있습니다
사계님에게는 중생이 먼저이므로, 요1장 12-13절의 순서를 바꾸어 읽는데, 그 순서대로 사계님이 분석한 말을 보면
13절에서는 (중생)
12절에서는 (회심)과 (칭의)가 있습니다
사계님의 분석과 사계님의 주장을 맞춰 보면
13절의 (중생) -- (1) 하나님께서 먼저 낳아 주셨기에
12절의 (회심) -- (2) 비로소 그분 이름을 영접하게 된다, 믿게 된다 라는 말과 맞출 수 있는데
12절의 (칭의)에 대한 주장은 없습니다
12절에서 분석한 (칭의)에 대한 주장이 빠져 있는 것입니다.
12절의 (칭의)에 해당하는 말은, 요 1:12절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계님의 분석과 주장을 다시 쓰면
13절의 (중생) -- (1) 하나님께서 먼저 낳아 주셨기에
12절의 (회심) -- (2) 비로소 그분 이름을 영접하게 된다, 믿게 된다
12절의 (칭의) -- (3)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라고 쓸 수 있습니다.
이제 사계님의 주장만을 다시 쓰면
(1) 하나님께서 낳아 주셨기에
(2) 비로소 그분 이름을 영접하게 된다, 믿게 된다
(3)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라고 쓸 수 있고
이 주장을 이어서 쓰면
(1) 하나님께서 낳아 주셨기 때문에 (2)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되고, (3) 그래서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주장이 됩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1) 하나님께서 낳아 주셨으면 그 자체로 (3)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계님의 주장은
(1) 하나님께서 낳아 주셨기 때문에 (2)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되고, (3) 그래서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니까
(1)하나님께서 낳아 주셨기 때문에 ( = (3)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기 때문에)
(2)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되고, (3) 그래서 그 믿음으로 또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주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석할 때는,
13절의 (중생) -- 12절의 (회심) -- 12절의 (칭의) 를 말하고
자신의 주장을 할 때는
(1) 하나님께서 먼저 낳아 주셨기에 -- (2) 비로소 그분 이름을 영접하게 된다, 믿게 된다 라는 말만 하고
12절의 (칭의) 에 해당하는 (3)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는 말은 안 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12-13절 [개역개정] 과 [NIV]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개역개정]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NIV]
12 Yet to all who received him, to those who believed in his name, he gave the right to become children of God--
13 children born not of natural descent, nor of human decision or a husband's will, but born of God.
한글성경으로는 알 수 없지만
영어성경이나 헬라어성경을 보면 13절이 자녀(children)라는 말로 시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13절이 12절의 "자녀"라는 단어에 대한 설명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12절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13절)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13절은, 믿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12절의 의미에 조금도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계님은 성령의 내주하심(중생)으로 믿음을 갖게 된다는 교리에 따라
"중생"을 의미하는 13절을 12절 앞에 위치시켜서
13절(중생) -- 12절 (회심), (칭의) 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이상한 해석이 됩니다.
그래서 12절의 (칭의)에 대한 주장은 생략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12절의 (칭의) 에 해당하는 (3)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까지, 자신의 주장에 함께 써서
(1) 하나님께서 낳아 주셨기 때문에 (2)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되고, (3) 그래서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라는
주장을 하면
자신이 이상한 해석을 한다는 것이 쉽게 드러나기 때문에 12절의 (칭의)에 대한 주장은 생략한 것입니다.
요 1:12절을 다시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13절)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사계님은 (칭의)라고 분석하였는데 맞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은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이신칭의)을 받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리고 (13절)이 중생을 의미하므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13절)가 된다는 말씀은
믿음으로 중생한다는 말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생이 믿음에 선행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중생에 선행하는 것입니다.
곧 믿음으로 중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계님은 전적부패교리에 따라 성경을 거꾸로 읽는 것입니다.
첫댓글 역시 이지끼을 님답게 예리하게 잘 짚어내셨습니다. 제가 교묘한 것은 아니고,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제 글 밑단에 설명을 덧붙인 글을 올렸습니다. 링크합니다.
[이지끼을 님을 위한 글: ‘알미니안 신학 구원론’과 ‘개혁 신학 구원론’ 비교]
https://cafe.daum.net/1107/YlDw/19
제가 말씀드린 것은 그보다
13절을 12절 앞에 위치시킨 것입니다.
어떻게 12절의 자녀를 설명하는 말인 13절을 12절 앞에 위치시킬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전적부패 교리에 맞추다 보니 그러신 것 같은데
그렇게 맞추니 중생이 믿음에 선행한다는 주장과 일치하네요.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따르는 것이겠지요.
@이지끼을 제가 이지끼을 님 예리한 지적으로 덧붙인 글에 요한복음 1장 12절~13절을 설명한 글로 “존재(원인)가 당위(결과)를 낳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김홍전 목사님 강설에서 배운 말입니다.
헬라어에 까막눈인 저에게 헬라어 원어 해석을 들이대셨던 이지끼을 님은 지금 ‘12절이 앞이고 13절이 뒤인데, 왜 사계 님은 선후 관계를 뒤바꿨냐?’ 하셨습니다.
관계대명사는 ‘선행사’의 본질(Origin)을 규정합니다. 그런데 13절은 관계대명사 “οἳ(Who/Which)”로 시작합니다. 물론, 이 관계대명사의 선행사는 12절 “영접하는 자들(믿는 자들)”입니다.
Sollen(당위, 결과)를 뜻하는 12절//주절: 영접하는 자들(현상) → 자녀의 권세(법정 선언)
Sein(존재, 원인)를 뜻하는 13절//관계절: 그들은(οἳ) 하나님께 난 자들이니라. (존재의 출처)
결론: 관계대명사 “οἳ”는 12절 믿는 자들이 이미 하나님께서 나신 ‘존재(Sein)’임을 증명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나시지 않은 자는 12절 주어(영접하는 자)가 될 자격조차 없습니다.
더 설명해야 할까요?
@四季 朴埰同 <<<이미 하나님께서 나신 ‘존재(Sein)’임을 증명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나시지 않은 자는 12절 주어(영접하는 자)가 될 자격조차 없습니다.>>>
공감합니다!
@四季 朴埰同
그러니까 사계님께서는
(1) 하나님께서 낳아 주셨기 때문에 - (중생)
(2)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되고, (회심)
(3) 그래서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칭의) 는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이군요
따님이 하나 있으시다고 했지요?
그런데 그 따님을 낳으셨을때 사계님은 아빠가 아니셨습니다.
님의 주장에 따르면
따님을 낳으셨던 것은 생명을 준것입니다 (중생)
그 따님이 사계님을 알아 보고 믿을 때 (회심)
따님은 사계님의 딸이 된 것입니다.(칭의)
그러므로 그 따님을 낳으셨을 때, 사계님은 그 따님의 아빠가 아니셨습니다.
사계님 이런 설명이 맞습니까?
사계님이 따님을 낳으셨을 때 사계님은 따님의 아빠가 되신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중생)과 (칭의)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해야 됩니다.
@四季 朴埰同
우리가 그동안 (중생) 또는 (거듭남) 이라는 단어를 쓰다 보니
이러한 단어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됨과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난 몇개월간 중생에 대해 공부하면서 알게 된 것은
중생(거듭남)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낳아 주심"과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심"과 같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四季 朴埰同 제가 어제 "born of God" 이 무엇인지 구글 검색을 했는데 다음과 같은 글을 찾았습니다.
Being "born of God" (or "born again") refers to a spiritual transformation where an individual
receives a new, divine nature through the Holy Spirit, becoming a child of God.
It signifies a shift from spiritual death to life, resulting in a love for God, a desire for righteousness,
and the ability to overcome sin.
"하나님께로부터 난다"(또는 "거듭난다")는 것은 성령을 통해 새롭고 신성한 본성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이는 영적인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전환을 뜻하며, 그 결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를 갈망하며 죄를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四季 朴埰同 사계님
중생(거듭남)이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됨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12절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13절)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고 위글에 쓴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13절)가 된다'를 '하나님의 자녀(= 13절)가 된다' 라고 썼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12절)
어떤 자녀가 된다는 것이냐?
(13절)과 같은 자녀가 된다는 것이다 라고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지끼을 <이지끼을 님 비유는 독해하기 힘든 ‘궤변의 극치’입니다.>
《(1) 하나님께서 낳아 주셨기 때문에(중생)→ (2)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되고(회심)→(3) 그래서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칭의)는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이군요.》 하셨습니다. 말은 똑바로 합시다.
①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녀로 낳아 주셨기 때문에(중생: 혈통 자권)→ ②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되고 (회심)→③ 그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 유업을 상속받을 하나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는다.(칭의: 법정 자권)
제 딸에 관한 비유가 “그 따님을 낳으셨을 때 사계 님은 아빠가 아니셨습니다.”는 전제 때문에 독해가 참 힘들었습니다.
“사계 님이 따님을 낳으셨을 때 사계 님은 따님의 아빠가 되신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중생)과 (칭의)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해야 됩니다.” 하셨습니다.
@이지끼을 제 딸은 출산해서 제 딸이 된 것이 아닙니다. 뱃속에서부터 제가 불러주는 노래를 듣거나 제 목소리를 들으면 제 목소리를 알아듣고 뱃속에서 발을 차고 놀았습니다. 또한, 아내가 출산했을 때 제가 우리 딸내미 아빠가 된 것이 아닙니다. 이미 저는 뱃속 딸내미에게 “아빠야!” 하고 말했습니다. 즉, 잉태 순간부터 저는 제 딸내미 아빠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제 핏줄인 딸내미 법적 아빠가 되는 순간은 언제입니까? 제 딸내미는 언제 제 유업을 이어받을 법정 자권을 받는 자녀가 됩니까? 나라에 출생신고를 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이지끼을 님은 ‘세례’라는 절차를 거쳐야 아기가 탄생하고 아빠가 된다고 하십니다. 저에게 “이런 설명이 맞습니까?” 하신 이지끼을 님, 이지끼을 님이 하신 “이런 설명이 맞습니까?”
해괴망측한 마술론의 궤변 아닙니까?
@이지끼을 <옛 추억을 떠오르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인장으로서 할례가 생명을 만드는 일이 아니었듯이, 인장(세례)이 생명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참고로, 우리 딸내미가 태어났을 때 병원에서 우리 부부에게 “당신들은 이 아이 출생신고 전까지는 이 아이 부모가 아닙니다. 이 아이 역시 당신들 딸내미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딸내미 볼 생각도 마세요.” 하지 않았습니다. 여자답지 않은 긴 호흡의 우렁찬 울음을 터트리며 태어난 제 딸내미를 간호사 선생님들이 보여주며 “딸입니다. 축하드립니다.” 하며 축하해 주셨습니다.
제 딸내미가 잉태된 그 순간부터 우리 부부는 딸내미 부모였습니다. 바꿔 말하면, 제 아내 뱃속에 잉태된 아기는 우리 부부 아이였습니다. 또한, 출생신고 시 찍는 인장으로 딸내미가 우리 부부 딸내미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바꿔 말하면, 출생신고 시 우리 부부가 딸내미 부모가 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중생의 증거입니다. 즉, “믿음의 행위”는 중생의 열매입니다.>
번역문 《‘하나님께로부터 난다’(또는 ‘거듭난다’)는 것은 성령을 통해 새롭고 신성한 본성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이는 영적인 죽음에서 생명으로 전환을 뜻하며, 그 결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를 갈망하며 죄를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를 살펴봅시다.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하나님 자녀가 아닙니다. 그 죽은 사람이 “성령을 통해 새롭고 신성한 본성을 받아” “영적인 죽음에서 생명으로 전환”하는, “영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그 순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입니다. 바꿔 말하면, 영적 할례인 귀와 마음과 몸 전체에 할례를 받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이 영적 할례 결과는 무엇입니까?
“그 결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를 갈망하며 죄를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죽은 믿음이 아닌 살아있는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이니, 교회가 전하는 “믿고 세례를 받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는 주님 말씀대로 ‘세례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살아있는 생명이기에 주님을 고백하는 믿음과 마귀를 저주하는 믿음으로 세례를 받아, 주님의 교회 몸 된 지체임을 눈에 보이는 교회와 세상 앞에서 드러내 자신의 생명을 보여줍니다. “믿음의 행위”를 보여줍니다.
이지끼을 님은 중생의 ‘결과’를 뜻하는 요한복음 1장 12절을 ‘원인’을 뜻하는 13절과 등치(=)하셨습니다. 이 두 구절을 시간 순서를 뜻한 구절로 독해한 나머지 ‘원인’을 ‘결과’로, ‘결과’를 ‘원인’으로 뒤바꾸는 것보다 진보한 것이지만, ‘원인’은 ‘원인’으로 그 ‘결과’는 ‘결과’로 읽으시면 됩니다.
“권세”라는 말은 ‘법정 용어’인데, 태어나지 않은 아이, 존재하지 않은 아이에게 무슨 권세를 줄 수 있습니까? 제 딸내미는 제가 출생신고서 인장을 찍어서 제 딸내미가 된 게 아닙니다. 제가 출생신고서에 인장을 찍은 그 결과 제 딸내미가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제 딸내미가 태어난 그 결과 저는 출생신고서에 인장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제 딸내미는 혈통으로나 법으로나 제 딸임을 ‘인(印)’ 친 것입니다.
② 결과: 12절// 태어난 생명은 그 생명을 발현해 하나님을 영접하며 의지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회심과 법정 자권의 칭의
① 원인: 13절// 하나님께서 먼저 생명을 줘 낳으셨다.⇨혈통 자권의 중생
@四季 朴埰同
1)
영적할례라는 말을 쓰시는데
영적할례가 "그리스도의 할례" 곧 "마음의 할례"라는 의미이지요?
골 2:12-13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四季 朴埰同
2)
그리고 인치신다는 말씀을 하셔서 생각나는데
엡 1:13절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And you also were included in Christ when you heard the word of truth, the gospel of your salvation.
Having believed, you were marked in him with a seal, the promised Holy Spirit, (NIV)
성령으로 인치심, 곧 성령의 내주하심은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은 후에 있습니다.
그런데 님은 성령의 내주하심이 먼저라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중생하고 그래서 믿음을 갖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이해하시는 것입니다.
전적부패교리에 따라 자신의 생각을 주입해서 이해하시는 것입니다.
사계님은
성령께서 말씀의 씨앗을 품고 우리 안에 들어와 믿게 하신다고 하셨지요?
이런 말씀이 있는 성경 구절을 제시하면 좋겠습니다.
@四季 朴埰同
3)
그리고 권세라는 말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계님은 하나님께서도 출생신고서에 도장을 찍으신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그때까지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것인가요?
갈 3:26절을 보면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이 중생하는 순간이고 그리고 성경의 내주하심이 있습니다.(갈 4:6절)
또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