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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도로, 둘레길 열풍에도 왜 달릴 데가 없을까? | |||
포장도로를 사용하는 이른바 ‘로드스포츠’는 도로시설 여건과 정책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다행히 우리나라 도심을 관통하는 어지간한 강과 하천에는 차량 출입이 통제되는 자전거도로(도보 겸용)가 건설돼 러너, 라이더, 인라인스케이터 등이 더불어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강과 하천을 벗어나면 로드스포츠 동호인들이 이용할 도로가 별로 없다. 이른 바 ‘동네 한바퀴’ 달리기가 쉽지 않다. 이는 보행권보다 교통정체 해소에 초점이 맞춰진 도로정책 탓일 것이다.
러너들은 이명박 정부 때 전국적으로 증설된 자전거도로와 이후 워킹 붐에 의해 만들어진 크고 작은 둘레길에 내심 흐뭇해했다. 이런 도로 인프라를 통해 도심이나 주택가에도 달릴 수 있는 길이 많아질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와 살펴보면 그런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졌다. 왜일까?
건설만 하고 방치… 가로수, 노점들이 주인 행세
실제로 도심과 주택가에 조성된 자전거길, 둘레길을 달려보면 이유를 금방 알 수 있다. 차도에 마련된 자전거길은 굳이 자전거 전용이라는 표지판이 없더라도 러너가 이용할 수 없다. 자전거만 다니기에도 위험하다. 그나마 관리상의 어려움이나 사고 위험 때문에 대부분 철거된 상태다.
물론 그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자전거도로 한가운데 가로수나 가로등이 박혀있고, 차량을 막기 위한 쇠말뚝이 설치된 곳도 있다. 전기설비로 추정되는 커다란 철제 박스가 아예 길 한가운데 턱하니 자리잡은 경우도 있다. 자전거도로는 점유하는 이가 임자라는 듯 딱 자전거도로와 보행로 경계에 포장마차를 놓고 꼬치를 구워 파는 상인을 보면 항의할 의욕조차 사라지기 마련이다.
자전거도로나 둘레길이 가진 가장 큰 문제는 자주 끊긴다는 점이다. 안내 표지판대로 죽 이어질 줄 알았던 길이 작은 건널목에서 홀연히 사라지면 이용자들은 그저 황망할 따름이다. 도로 재포장 후 자전거도로나 둘레길을 표시하는 페인팅이 누락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애초 설계와 다르게 만들어진 경우도 있다. 코스 안에 건널목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다.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자전거도로나 둘레길을 만들다 보니 현실적으로 이용이 어려운 코스가 구성된 것이다.
러너들이 나서서 ‘달릴 권리’ 당당히 주장할 때
지자체의 공무원들은 차량이 통행하지 않는 도로를 제 발로 점검할 여력이 거의 없다. 누군가 불편사항이나 오류를 딱 짚어 제보하지 않으면 몇 년이고 방치되기 십상이다. 따라서 러너들 스스로 달릴 권리를 찾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시민단체가 꾸준히 ‘보행권’을 주장하고 있듯이 말이다. 자전거나 러너, 산책객을 위해 별도로 만든 도로시설이 제 역할을 못하는 상황을 바로잡는 것은 조금도 무리한 요구가 아닌 것이다. 시민 제안을 통해 지속적으로 러너들의 존재를 알려서 러닝에 적합한 도로가 늘어나도록 유도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공원 러닝코스의 유지보수와 종합체육시설 개방 역시 힘을 뭉쳐 목소리를 내면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남산의 우레탄 주로와 한강시민공원 여의도지구의 샤워시설 및 락커는 러너들의 꾸준한 주로 이용과 제안을 통해 생겼다.
쾌적한 주로는 걷지 않던 사람을 걷게 만들고, 걷던 사람을 뛰게 만든다. 지금과 같은 러닝 동호인층이 형성된 것도 강과 하천에 자전거도로를 착실히 만들어둔 덕분이다. 이제 러너들은 도심이나 주택가에도 뛸 만한 코스를 한두 개쯤 만들어 후배 러너들에게 물려줄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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