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장. 이치로는 단번에 깨닫더라도
理雖頓悟
事非頓除
이치로는 단번에 깨닫더라도
현상은 금방 없어지는 게 아니다.
《註解》
文殊達天眞하고
普賢明緣起하니
解似電光이라도
行同窮子니다.
此下는 論修證이니라.
문수 보살은 지혜로 천진한 세계를 통달했고
보현 보살은 보살행에서 연기법을 밝혔으니
이 자리를 번갯불처럼 이해했다 하더라도
살아가는 모습은 가난한 집 아들과도 같다.
여기서부터 ‘닦아 증득하는 수증修證’을 말할 것이다.
출처: 선가귀감, 서산대사 지음, 원순 역해, 도서출판 법공양
첫댓글 또 다른 분(번역인의 출처가 없습니다.)의 번역을 옮겨옵니다.
37. 깨달음의 완성을 이루게 하는 실천적 수행
[존재의 참된 실상에 대한] 이치는 단박에 깨달아질(解) 수 있을지라도 잘못된 행위(事)는 단박에 제거되지 않습니다.
문수(文殊) 보살은 하늘의 진리(天眞: 존재의 실상)에 이르렀고
보현(普賢) 보살은 [만물이] 서로 잇대어 일어나는 것을 명백히 했습니다.
깨달음은 번개 빛과 유사하며 수행은 곤궁한 아이(窮子, 갓난 어린애)와 같습니다.
이 아래는 수행(修)과 깨달음의 완성(證)을 논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e8bBclou2w&list=PLwWQdPwuhgTxzQoXdjEnWEfya59GIWWW7&index=22
8분 10초까지 들으시면 좋습니다.
PLAY
우리 카페 불자님들은 이제 돈오돈수 돈오점수에 대해 확고한 개념이 서셨으리라 봅니다.
理雖頓悟 事非頓除
이치로는 단번에 깨닫더라도 현상은 금방 없어지는 게 아니다.
--->여기서 끝나야지,
그러니까 닦아서 현상을 완성해야 한다, 고 생각하면 그냥 돈오에서 십만 팔천리 멀어집니다.
벌써 일념이 일어난 거 거든요?
일념이 일어나면 분별이 생기고
분별이 일어나면 그만 본래 자리와는 십만 팔천리가 되지요.
文殊達天眞하고 普賢明緣起하니...
보현이 연기를 밝혔다....고 말한 부분이 새롭습니다.
문수는 그러면 연기를 못 밝혔나? 천진, 하늘의 진리가 바로 연긴데?
그런데 왜 굳이 보현이 연기를 밝힌다... 이렇게 말했을까요?
문수가 연기를 밝히지 않고 말아지요.
그건, 연기, 라는 건 행을 통해 실재하게 되거든요?
이치로 실재하는 게 아는 게 아니라,
행으로 실재하기에 문수가 아니라 보현이 연기를 밝힌다, 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족:원순스님, 여기서도 천진을 그냥 아이들이 천진하다, 는 식으로 번역하신 듯.
사실은 하늘의 진리, 라고 하는 게 더 나을 듯.
빅뱅이 일어나니 시간과 공간이 갈라지고 우주가 창조 됐죠
빅뱅이 一念 이지요
연기는 행으로 존재하기에 보현이 연기를 밝힌다.......
배우고 갑니다.
보문님 공양감사드리며,선생님 덧글 가르침
늘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보현선생님 댓글을 가만히 뜯어보다 이렇게 정리해 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해석하는 것이 더 와 닿네요. 너무 억측일까요? ^^;
理雖頓悟 事非頓除
이치로는 단번에 깨닫더라도
현상은 금방 없어지는 게 아니다.
-- 깨달음은 단박에 얻을지라도 그렇다고 그 사람의 행동이 단숨에 바꿔지진 않는다. (습기때문?)
文殊達天眞하고 普賢明緣起하니
- 문수의 지혜로서 반야를 얻되, 수행자는 보현의 행으로서 연기를 실천(증명)해야만 한다.
解似電光이라도 行同窮子니다.
- 비록 깨달음을 얻었다 할지라도 실천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행은 가난한 집의 아들처럼 비루하기만 할 것이다
(깨달음을 보현행으로서 실천, 증명함의 중요성)
법혜님 해석은 제가 보기엔 어깨에 힘이 좀 들어간 듯
글을 읽을 땐 내 생각을 배제하고 글 자체만 읽는 게 좋지요.
文殊達天眞 普賢明緣起는 문자 그대로 문수는 하늘의 진리에 달하고 보현은 연기를 밝히고...
解似電光 行同窮子는 이해는 번게 같아도 행은(또는 행을 하는 건) 가난한 집 아들 같다...
이렇게 저는 번역하고 싶네요.
큰스님께서도 한문 번역 시 글자 그대로 번역하는 걸 더 선호하셨던 듯합니다.
그리고 한글 번역이 어려울 땐 굳이 한글로 해서 원 뜻을 곡해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원문 그대로를 하셨고요.
그래서 큰스님의 번역은 제 마음에 쏙 들지요.
경전 한문을 번역할 땐 내 생각이 없어야 해요.
그냥 읽는 거죠.
그렇게 그냥 몇 번을 읽다 보면 글 뜻이 글 밖으로 튀어 나와요.
생각이 들어가면, 생각이 들어간다는 건 내 주관이 들어간다는 말이고,
그렇게 되면 원 뜻과는 멀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원순스님 번역에 간간히 제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것도,
원순스님 번역엔 스님의 개인 생각이 강하게 들어가는 경우가 꽤 되기 때문이지요.
중생을 깨우쳐 주려 애쓸 필요 없거든요?
번역할 땐 원 글 쓴 이의 말씀 그대로만 전하면 .되겠지요
보현선생님과 법혜님 덕분에 보현행으로 연기를 실천하고 증명하고 있음을 공부합니다.
고맙습니다._()()()_
보문님 공덕이 큽지요
늘 좌판을 벌려 놓으시니까 놀기 좋지요 딱! 이지요
제가 법혜님 의견에 태클(?)을 건 것 같지만 그건 아니고(법혜님 그렇다고 기 죽으면 안돼요 다음에도 의견 주세요)
이렇게 서로 의견을 나누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요즘은 카페 회원들도 얼마 없고
조회수도 별로고
그나마도 의견 주시는 분들도 없으니 카페가 재미가 없겠지요.
그러니 더 사람들이 안 오시고...
부처님 가르침도 묻고 답하는 사이에 경전으로 만들어지지요.
반면 부처님이 혼자 씨부렁(?) 댄 경전은 몇 개 없고요.
뭐든지 일방적으로 떠드는 것보다는 질문과 답, 그리고 서로 의견이 오고갈 때 더 활기 차 집니다.
부처님뿐 아니라 동서고금의 모든 철학, 과학, 사상들이 그렇게 발전했지요.
학회도 질문 없는 학회는 재미가 없습니다.
연자 발표에 질문이 활발히 나와야 학회가 열기를 띠지요.
역시 제 억측이었나 봅니다. ㅜㅜ
이런 해석 괜찮은것 같은데?...어깨에 힘이 좀 들어갔나 싶습니다. ㅎㅎ
뭐 그런들 좀 어떨라구요. 요즘 저는 웬만해선? 기 안죽습니다. 걱정 안하셔도 되지요. ^^
보현 선생님 조언 말씀 잘 새겨 놓겠습니다~~-()-
활기가 있어 댓글 읽기도 신났습니다요.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서산대사께서도 좋아하시겠습니다. 번역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네요.
조금이라도 더 쉽게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 한글로 풀이하면 의역이 되어 먼길로 가버릴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