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닫고 깨닫지 못한 것이 같다! 아무 차별, 차이가 없다!
불자야(보현보살이 문수보살을 불자라 부름) 가령 어떤 이가 항하사 모래 같은 마음을 내어 일일심에 다시 항하사 같은 부처님을 화작해서 항하사 겁이 다하도록 쉬지 않으면 불자야 이 사람의 화심 화작여래가 얼마나 많겠느냐? 문수가 답하대 제가 아는 바로는 화와 불화가 아무 차별이 없으니 왜 얼마나 되겠느냐 묻습니까?
佛子야 假使有人이 能化作恒河沙等心하고 一一心에 復化作恒河沙等佛호대 皆無色無形無相하야 如是盡恒河沙等劫토록 無有休息하면 佛子야 於汝意云何오 彼人의 化心하야 化作如來가 凡有幾何오 如來性起妙德菩薩이 言하사대 如我解於仁所說義컨댄 化與不化가 等無有別이어니 云何問言凡有幾何니잇고
보현이 답하대 선재선재라 문수여, 당신이 말씀하듯 설사 일체중생이 어일념중에 실로 성정각을 해도 불성정각과 하나도 차이가 없으니 왜 그런가. 보리는 무상이라 무상이면 즉시 증감이 없으니 문수여, 보살은 성등정각이 보리에 같고 일상 무상임을 응당 알아야 합니다.
普賢菩薩이 言하사대 善哉善哉라 佛子야 如汝所說하야 設一切衆生이 於一念中에 悉成正覺이라도 與不成正覺으로 等無有異니 何以故오 菩提는 無相故라 若無有相이면 則無增無減이니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應如是知成等正覺이 同於菩提하야 一相無相이니라
-여래출현품 권 3
첫댓글 깨닫고 못 깨닫고가 아무 차이가 없다는 말씀이 화엄경에 이렇게 딱! 나오는군요!
그니까 부처는 깨친 중생이고 중생은 못 깨친 부처인 거죠.
깨치고 못 깨친 차이는 있지만 못 깨친 중생도 부처인 건 조금도 틀림이 없죠!
마치 경주 남산의 부처님 중에 목이 없는 부처님도 계시는데,
목이 없어도 부처는 부처이지 않습니까?
~~~
이리하여
돌지말고
바로 보.현.행.원
을 실천하면 부사의한 일이 일어난다는~~
깨친부처와
못깨친부처 밖에 없으니 굳이 부처 되려하지말고 바로 실천행으로~~^^
여래현상품이 아니고 여래출현품인듯 합니다. 화엄경 법문 감사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앗 맞아요 출현품 수정할께요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호호님,예리하시군요! ^^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