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봅시다
돌아온 <졸업>의 계절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졸업>은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아이콘이 된 작품이다. 대학을 갓 졸업한 벤자민(더스틴 호프먼)이 이웃의 두 모녀와 맺는 관계는 젊은이의 방황을 혼란스럽고도 매혹적으로 보여준다. 2월 13일 4K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개봉하는 <졸업>의 뒷이야기를 살펴봤다.
오마주와 패러디의 성지
<졸업>은 개봉 직후부터 최근까지 각종 영화 및 대중문화가 꾸준히 소환하는 대상이다. “절 유혹하시는 겁니까?”, “플라스틱”과 같이 영화를 직접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대사는 물론 포스터에 쓰인 오묘한 구도, 도망가는 신부의 이미지는 수많은 영화에서 패러디되었다. <슈렉>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펄프 픽션>은 벤자민이 부모에게 결혼 계획을 통보하고 나가버리는 시퀀스 끝에 울리는 토스터 다이얼을 살인 장면에 활용했고, <로얄 테넌바움>의 풀장 신은 <졸업>의 그것과 닮았다. <500일의 썸머>의 썸머는 이 영화를 보다 눈물짓는다. 상징적 대목은 물론 유머와 불안을 한데 버무린 정서 또한 다음 세대에 전해지고 있다. <졸업>에 상상력을 더한 제니퍼 애니스톤 주연의 <그녀가 모르는 그녀에 관한 소문>(사진)도 있다. 주인공이 <졸업>이 자기 가족 이야기라는 것을, 즉 로빈슨 부인이 할머니를, 일레인이 어머니를 그린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며 벌어지는 소동극이다. <졸업>이 젊은 남성의 이야기라면 이 작품은 여성이 겪을 법한 성장통에 집중했다.
청춘의 표정, 유혹의 몸짓
<졸업>의 프로듀서 조셉 E. 리바인은 오디션을 보러 온 더스틴 호프먼이 창문닦이인 줄 알았다고 한다. 영화 경력이 없던 그는 자신이 전형적인 백인 개신교도인 원작 속 벤자민과 달리 유대인이라는 점을 밝히며 출연을 망설이기까지 했다. 소탈한 청년에게서 어리숙한 벤자민의 표정을 본 감독은 로버트 레드퍼드, 워런 비티 등의 후보 대신 그를 캐스팅했다. <졸업> 개봉 후 스타가 되고 나서도 더스틴 호프먼은 어딘가 불편해 보일 만큼 과묵하게 인터뷰에 임했는데, 감독은 이조차 영화 속 벤자민 같다며 좋아했다고 한다. 로빈슨 부인 역의 앤 밴크로프트는 극중 벤자민 나이의 두배쯤 되는 설정과 달리 더스틴 호프먼보다 6살, 딸 일레인 역의 캐서린 로스보다 8살 위다. 그는 로빈슨 부인이 풍족한 삶을 위해 자신의 진짜 모습을 포기하고 사는 스스로에게 화가 난 여자라는 감독의 설명에 반해 출연을 결정했다. 불만을 가득 안고 먹이를 찾아 헤매는 포식자의 면면을 보여주기 위해 앤 밴크로프트는 동물무늬 프린트가 있는 옷과 털옷을 주로 입었다. 그렇게 유혹의 몸짓이 완성되었다.
속편 제작 가능성은?
원작자 찰스 웹은 2007년 <홈스쿨>이라는 제목의 속편을 발표했다. 한국어 번역본은 출간되지 않았는데, 여전히 로빈슨 부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한 벤자민과 일레인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이 영화화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작가가 <졸업>의 판권을 가진 카날플뤼스에 속편 제작을 제안했다 거절당한 이후 영화화 자체에 거부감을 표했기 때문이다. 추후 새로운 프로젝트가 가능할지 모르나 <졸업>을 다시 보며 <홈스쿨>의 내용을 상상해보고, 책으로 아쉬움을 달래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글 남선우 2020-02-05
자료출처: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