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맨하탄
원제 : Tales of Manhattan
1942년 미국영화
감독 : 줄리앙 뒤비비에
출연 : 샤를르 보와이에, 리타 헤이워스, 진저 로저스
헨리 폰다, 찰스 로톤, 에드워드 G 로빈슨
토마스 미첼, 시저 로메로, 엘사 란체스터
조지 샌더스, 폴 롭슨, 에셀 워터스
유진 팔렛, 게일 패트릭, 제임스 글리슨
해리 데븐포트
프랑스의 거장 줄리앙 뒤비비에는 과거 프랑스 감독 중에서 유독 우리나라에서 많은 선호를 받은 인물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미국 영화 위주로 영화수입 편중이 되는 현상은 과거에도 심했는데 그런 와중에 상당히 많은 줄리앙 뒤비비에 감독의 프랑스 영화가 개봉이 되었고, 그의 개봉작 편수는 어지간한 미국 유명감독 못지 않았습니다.
줄리앙 뒤비비에는 미국에서 몇 편을 연출하기도 했는데 상대적으로 프랑스에서 연출한 작품보다 저평가를 받는 편입니다. 그리고 그의 영화가 대체로 재미있다보니 오히려 예술영화 타령하는 일부 평론가들에게 르네 클레망 감독과 함께 평가절하되기도 했는데 그건 뭐..... 할말없는 상황이지요. 사실 프랑스 제일의 거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감독인데.
'운명의 맨하탄'은 1942년, 2차대전 시기에 만든 미국영화입니다. 2차 대전 파리 함락 시절에 줄리앙 뒤비비에는 미국에서 활동을 했었습니다.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인데 영화를 보면 '역시 줄리앙 뒤비비에'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이국땅인 미국 무대에서도 역시나 썩 괜찮은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무도회의 수첩'이나 '나의 청춘 마리안느' 같은 그의 대표작 반열이 아닌 잠시 미국 외도시에 만든 작품임에도 영화는 결코 가볍지 않고 꽤 재미와 깊이도 있습니다. 당시 잘 나가는 미국 명배우들을 아주 적절히 활용하여 만들었고, 프랑스 출신의 샤를르 보와이에와 영국의 찰스 로톤도 슬쩍 끼워 넣고 있습니다.
20대 중반 시절의 관능적인 리타 헤이워스
왼쪽부터 토마스 미첼, 리타 헤이워스, 샤를르 보와이에
남편, 아내, 그리고 불륜남
죽는 연기의 달인인 연극 배우가 결국
현실에서 최고의 연기를 보인다.
1940년대 뉴욕 맨하탄을 주요 무대로 하여 펼쳐지는 내용으로 5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유명 연극배우가 입었던 연미복이, 결혼을 앞둔 남자의 집으로 옮겨지고 다시 음악에 소질이 있는 어떤 남자가 입게 되었다가 차이나타운에 사는 부랑자에 가까운 남자가 입었다가 마지막에 가난한 흑인마을에 떨어지게 되면서 그 옷이 어떤 큰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이야기입니다.
각각의 에피소드에는 꽤 유명한 배우들이 등장하고 배경도 뉴욕인데, 마지막 에피소드에만 가난한 흑인들이 사는 시골마을로 무대가 옮겨지고, 유명배우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두 편은 남녀간의 불륜에 대한 이야기이고, 다른 두 편은 어렵게 살던 남자가 그 연미복을 통해서 행운을 얻게 되는 이야기고 마지막 다섯번째 에피소드는 가난한 흑인 마을에 크리스마스 이브에 찾아온 엄청난 선물의 이야기입니다.
관능적인 모습으로 등장한 진저 로저스
예비 신랑의 옷에서 나온 편지를 몰래 읽을때
까지는 괜찮았지만.....
궁지에 몰린 친구를 돕기 위해 등장한 헨리 폰다.
왼쪽부터 헨리 폰다, 진저 로저스, 시저 로메로
당신이 사자인줄은 몰랐어요~
30대 시절의 파릇파릇한 헨리 폰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샤를르 보와이에, 리타 헤이워스, 토마스 미첼이 펼치는 남녀간의 불륜 이야기입니다. 그 연미복은 샤를르 보와이에가 입은 옷인데 그는 연극에서 죽는 연기를 기막히게 잘합니다. 부유한 남자 토마스 미첼과 결혼한 리타 헤이워스와 몰래 사랑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 와중에 사고가 발생하고 그는 연극무대보다 더 훌륭한 명연기를 펼칩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는 진저 로저스, 헨리 폰다가 등장하는 달콤한 분위기의 이야기입니다. 결혼식을 앞두 진저 로저스는 남편의 옷을 뒤지다가 비밀 편지를 발견하는게 그 사건을 수습해주기 위해서 찾아온 남편의 친구 헨리 폰다와 순식간에 사랑에 빠진다는 다소 엉뚱한 이야기입니다. 헨리 폰다의 뻣뻣한 남자같은 능청스러운 연기가 볼만하며 진저 로저스의 역할도 무척 재미있습니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음악에 무척 소질이 있는 남자가 연미복으로 인하여 망신을 당할뻔 하지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서 성공하는 이야기입니다. 영국의 명우 찰스 로톤과 감초 같은 조연 연기의 달인 엘사 란체스터가 부부로 출연합니다. 찢어진 연미복을 입고 지휘하는 수난을 겪지만 관객들이 모두 상의의 벗으면서 격려하는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네 번째 에피소드는 뉴욕 차이나타운에서 거렁뱅이 처럼 지내는 명문대 출신 중년 남자 에드워드 G 로빈슨이 연미복을 빌려서 동창회에 가서 성공한 친구들을 만나면서 겪는 이야기입니다. 젊은 학창시절에 여러가지 원대한 꿈을 꾼 동창들, 대부분 사회에서 크게 성공하여 동창회에 모였지만 에드워드 G 로빈슨은 실패한 인생을 숨기고 돈도 없이 참석했고, 생각지 못한 사건으로 어려움을 겪지만 오히려 가식을 벗어던지는 모습을 연기합니다. 제법 긴 연설장면에서 명연기를 보여주며 그의 얄미운 동창 역으로 조지 샌더스가 출연합니다.
다섯번째 에피소드는 5만달러의 돈을 훔쳐서 비행기로 달아나던 남자가 실수로 돈이 들어있는 연미복을 떨어뜨리고 그 옷이 가난한 흑인 마을에 떨어지게 되어 그 마을이 횡재하는 이야기입니다. 돈을 서로 기도한 만큼 나누며 함께 잘 살려고 하는 모습이 인상적인데 그러면서 기도에 의해서 주님이 준 선물로 여기는 내용도 재미있습니다.
음악의 천재로 등장하는 찰스 로톤
미국 뉴욕 배경의 영화에 프랑스 배우 샤를르 보와이에와
영국 배우 찰스 로톤이 슬쩍 끼어들었다.
부부로 등장한 찰스 로톤과 엘사 란체스터
연미복이 작아서 지휘 도중 찢어지는 사고가 발생
옴니버스 영화의 묘미는 20여분 정도의 짦막한 이야기들이 몇 편으로 나누어 등장하여 지루하지 않고 여러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보통 몇 명의 감독들이 각 파트별로 나누어 연출을 하는 경우도 있고 한 감독이 다 연출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영화는 줄리앙 뒤비비에 감독이 5편의 이야기를 혼자 연출하였습니다. 마치 오헨리 단편선을 보는 느낌인데 실제 오헨리 단편을 엮어서 만든 '인생의 종착역'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그 영화보다 더 재미있습니다.(가만 보니 찰스 로톤은 두 영화에 모두 등장했네요) 하나의 물건이 각 에피소드마다 새로운 주인에게 옮겨지는 내용은 60년대에 만들어진 '노란 롤스로이스'라는 영화와도 비슷한데 역시 그 영화보다 더 잘 만들었습니다. 옴니버스 영화중에서는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헨리 폰다, 찰스 로톤, 에드워드 G 로빈슨, 진저 로저스, 샤를르 보와이에, 리타 헤이워스 등 전설급 명배우들과 조지 샌더스, 엘사 란체스터, 토마스 미첼, 시저 로메로 등 조연 배우로 많이 등장한 나름 유명 배우들이 함께 펼치는 협연이 볼만합니다. 재미, 감동, 웃음 등 꽤 볼만한 40년대 영화로 줄리앙 뒤비비에는 조국 프랑스가 독일에게 점령당한 어두운 시절 이른 위트있고 경쾌한 영화로 이방인 시절의 설움을 달랜 셈입니다.
네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 에드워드 G 로빈슨
명문학교 출신이지만 맨하탄 차이나타운에서
부랑자처럼 살고 있다.
동창회에서 가식을 벗어던지는 명연설이 인상적이다.
오른쪽은 조지 샌더스
하늘에서 내린 기적을 코믹하게 담은
마지막 에피소드
'운명의 맨하탄'은 국내에 개봉된 제목이고, TV 방영이나 비디오, DVD 출시가 안된 희귀작 반열에 오래도록 들었던 영화입니다. 프랑스 명감독과 미국의 명배우들이 만나서 만들어낸 재미난 작품입니다.
ps1 : 연미복을 세 배우가 입는데 보통키에 보통 체격의 샤를르 보와이에, 작은 키에 뚱뚱한 체형의 찰스 로톤, 그리고 매우 작은 키에 왜소한 체격의 에드워드 G 로빈슨이 각각 입지요. 극중에서 찰스 로톤이 입을 때 작아서 잘 안들어가고 나중에 찢어지기까지 하는 내용이 그의 비대한 몸과 겹쳐져서 웃기는 장면이 되는데 오히려 그걸 감동적인 내용으로 반전시키기도 합니다. 찰스 로톤이 좀 다른 영화보다는 덜 뚱뚱해 보였는데.
ps2 : 옴니버스 영화에 여러 배우들이 등장할 때 보면 확실히 유명 배우가 남다른 존재감을 보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찰스 로톤이나 에드워드 G 로빈슨 같이 외모가 아닌 연기로 성공한 배우들이 특히 그렇습니다.
ps3 : 제목에 맨하탄이 들어가는데 아쉽게도 맨하탄 빌딩숲을 많이 배경으로 하지 않고 세트촬영이나 실내촬영이 많은 것이 좀 아쉬운 부분입니다. 굳이 맨하탄을 부각시킨 영화는 아니더군요.
[출처] 운명의 맨하탄(Tales of Manhattan 42년) 줄리앙 뒤비비에의 뉴욕 옴니버스|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