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남자친구 이야기도 흥미를 끄는데 모두 다섯 명이었다. 그녀가 18세가 되었을 때 만난 첫사랑 린쩐파(林振發)는 말레시아의 부호의 아들로 사고로 세상을 먼저 떠났다. 두 번째는 25세에 만난 천상린(陳祥林)이었지만 그가 타이완의 유명한 여배우 임청하(林靑霞)와 약혼을 함으로써 깨지고 말았다. 세 번째는 1979년 27세 때 미국에서 만난 영화배우 청롱(成龍)으로 잠시 동안 서로 사랑했지만 헤어졌고, 네 번째는 29살 때 만난 말레시아의 사탕수수 재벌인 ‘상그리라그룹’의 아들 꿔공승(郭孔丞)과 비밀리에 약혼했으나 꿔공승의 할머니가 떵리쥔에게 가수 은퇴 조건을 내걸자 헤어지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37세에 만난 14살이나 어린 프랑스 사진작가 스테판 퓨엘 그녀의 마지막 길을 마지막을 지켰다. 어쩐지 쓸쓸함이 배어있다. 결국 떵리쥔은 1995년 5월 8일 태국 치앙마이의 메이핀호텔에서 기관지 천식 발작으로 사망, 향년 42세였다. 1990년부터 동거 관계에 있던 14세 연하의 사진작가였던 프랑스인 스테판 퓨엘이 마지막 간호를 했다. .......................................................................................................................................................... 현재 묘소는 타이베이시 동북에 자리하고 있는 금보산(金寶山)의 ‘균원(筠園)’에 영면하고 있다. 묘 앞에서는 동상과 레코드 장치가 설치되어 그녀의 노래가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신문에서 요약전재).
첫댓글 등려군 약력에 부연글로 가져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