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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열 린 바 다 원문보기 글쓴이: 찬이고모
간양록 - 조 용필
이국땅 삼경이면 밤마다 찬서리 이고
마음은 바람따라 고향으로 가는데 어야~ 어야~ 어야~
강 항(姜 沆 1567-1618) 본관은 진주. 자는 태초(太初), 호는 수은(睡隱)·사숙재(私淑齋). 전남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 유봉마을에서 태어났다.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교서관정자· 가주서· 교서관박사를 거쳐 1596년 공조좌랑에 이어 형조좌랑이 되었다.
1597년 휴가로 고향에 머물던 중 정유재란이 일어나 군량미 수송임무를 수행했고 고향에서 김상준(金尙寯)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나 영광이 함락당하여 가족과 함께 해로를 통해 탈출하려다가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압송, 오쓰성[大津城]에 유폐되었다. 이곳에서 일본의 승려 요시히도[好仁]와 교류하며
4년여의 억류생활을 하였는데, 일본 막부의 귀화요청을 조선 선비답게 단호히 거절하고 1602년 대구교수(大邱敎授), 1608년 순천교수(順天敎授)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향리에서 독서와 후학 양성에만 전념했다.
일본 억류 중 사서오경의 화훈본(和訓本) 간행에 참여, 그 발문을 썼고,
영광의 용계사(龍溪祠)·내산서원(內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운제록(雲堤錄)》 《강감회요(綱鑑會要)》
▷ 간양록(看羊錄) 일본에서 견문한 풍속·지리·군사 정세 등을 기록한 책으로 규장각도서이다. 소무(蘇武)의 충절을 뜻하는 말로, 본래의 제목은 죄인이라는 뜻에서 《건거록(巾車錄)》이라 하였으나, 1656년(효종 7) 책이 간행될 때 제자들이 강항의 애국충절을 기린다는 의미에서 간양으로 고쳤다. 일본의 지리· 풍토· 인문· 병비(兵備) 등과 도요토미[豊臣秀吉]의 조선 침략에 대한 내용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내산서원 입구의 정렬문은 강 항이 52세를 일기로 타개하여 이곳 산기슭에 묻히자 식음을 전폐하고 그의 뒤를 따른 부인 함평이씨에게 내려진 열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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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조용필 노래가 좋아서 불렀던 노래인데 그속에 역사적인 사실이 자리 하고 있었군요
뒷산에 잡초는 누가....
역사속에 있었던 사실을 생각하니 노래 가사가 주는 의미가 이해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