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 편
앵초의 이름
이정원
어제는 매우 특이한 날이었어요. 아침에 눈을 떠서부터 일기를 쓰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줄곧 한 가지 꽃만을 생각했으니까요. 아니, 그 꽃이 저를 놓아주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맞겠네요. 시작은 여고 동창들의 단체 모임방에 올라온 세 장의 사진과 짤막한 글이었지요.
분홍빛에 보랏빛을 더해 연한 보랏빛을 띤 앵초꽃을 작게도 크게도 찍은 것이었는데 더할 수 없는 청초함이 느껴졌어요. 작은 바위 옆에서 올라온 꽃대마다 다섯 장의 꽃잎을 지닌 꽃이 하나씩 달려, 대여섯 송이가 동그라미를 이룬 모양새가 정겹게 보였고요.
친구들이 산책길이나 여행길에서 만난 꽃을 찍어서 올리는 일이 아침저녁으로 반복되고 있었던 터라, 야생화에 가까운 앵초꽃을 누가 어디서 만난 걸까 하며 잠이 덜 깬 눈으로 들여다봤어요. 한데 사진 밑에 달린 글귀를 보고는 어찌나 놀랐는지 몰라요.
“정원이가 준 책에서 앵초꽃을 처음 알게 되었어. 그래서 몇 년 전에 구해다 심어놓은 아이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어. 그러기에 이 꽃은 앵초라는 이름과 정원이라는 이름도 함께 지니고 있지. 그 정원이가 올해도 어김없이 꽃을 피웠기에 이렇게 전하는 거야.”
내가 꽃을 글에 담으며 산다는 걸 친구들이 알고 있기는 했지만, 난데없이 내 이름을 단 꽃이 생겨났다니요. 더구나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에서 살아 ‘둔내댁’이라고도 불리는 그 친구와는 딱히 가까이 지낸 기억도 없는데 어떻게 그런 마음을 먹었을까요.
가만히 뒤돌아보니 ‘앵초꽃 사랑’이라는 책을 전한 건, 졸업 삼십 주년을 기념하는 행사 때였어요. 아주 오랜만에 모인 터라 그동안 연락을 하고 지낸 친구들 말고는 이름도 얼굴도 낯설기만 했지요. 나누어줄 선물을 준비해온 친구들도 여럿 있었기에, 나는 마침 그 무렵에 낸 꽃수필집이 있어 한 권씩 돌렸어요.
그게 벌써 십오 년도 더 지난 일인데, 그 책에 담긴 내용을 보고 앵초를 구해다 심어 꽃을 피우고 그 꽃에 내 이름을 달아 해마다 기억한다는 사연을 전하다니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이름의 꽃이 피고 졌다니요. 그런 일이야 일어나지도 않겠지만, 어느 식물학자가 새 품종의 꽃을 발견해 나의 이름을 붙였다 해도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을 거예요.
한편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좀 당황스럽기도 해서 안절부절 못 하다가 그대로 있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에 댓글을 달았어요, “너무 놀랍고 고마워서 어떤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너의 뜰에서 앵초꽃이 나의 이름을 달게 된 이야기는 ‘꽃글’에 담아서 보낼게.”
그리고는 늦은 오후가 되어 집 근처에 있는 초막골 생태공원에 갔다가 찻집 옆에 놓인 화분에서 같은 모양새의 앵초꽃을 만난 거예요. 여러 종류의 꽃을 심어놓은 큼지막한 화분의 한 귀퉁이에서 연보랏빛 앵초꽃 몇 송이를 발견하는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지요.
마치 보이지 않는 어떤 손길이 한참을 잊고 있었던 앵초꽃의 의미를 내 안에서 다시 살려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까요. 한번 글에 담은 꽃은 그 부담감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까닭에 그 뒤로는 그냥 꽃으로만 대할 수 있어 아주 편했거든요. 찬찬히 기억의 발걸음을 돌려 보니 ‘앵초꽃 사랑’이라는 글 속의 내용이 되살아나더군요.
“해마다 봄이면 앵초꽃 화분을 안겨주는 꽃집 아저씨가 있다. 근무하는 학교 근처에 있는 그곳에 들러 앵초꽃이 있느냐고 물은 게 인연이 됐다. 하지만 아저씨가 전해주는 건 ‘프리뮬러’라는 서양 앵초로 키는 작지만 이파리와 꽃이 모두 야생 앵초보다 컸다.
앵초꽃이 ‘행복의 열쇠’라는 꽃말을 지닌 데는 사연이 있었다. 어느 마을에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리스페스라는 예쁜 소녀가 살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꽃 중에서도 유난히 앵초꽃을 좋아했다. 병이 깊어지면서 그 꽃을 꼭 한 번 보고 싶어 하는 어머니를 위해 추위를 무릅쓰고 여러 날 눈밭을 헤매 다녔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런 그녀 앞에 앵초꽃으로 머리를 단장한 님프가 나타나 앵초꽃 한 송이를 뽑아주며, 조금 더 가면 나타나는 성문의 열쇠라고 했다. 열린 성 안에서 만나게 된 왕자는 보석이 가득한 방과 어떤 병도 고칠 수 있는 약이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주저 없이 약이 있는 방을 선택한 리스페스가 왕자와 함께 가서 어머니를 구한 건 물론이었다.
내가 만일 그녀였다면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행복의 열쇠라는 앵초꽃 한 송이를 얻는다면 과연 어떤 행복에 대한 욕심도 내지 않고 가장 절실한 하나를 고를 수 있을지 말이다.”
어느새 어둑어둑해진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와서는 일기장에 그때와 똑같은 질문을 던진 걸 보면, 아직도 나는 그럴 자신이 없는 걸까요. 지하철 요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카드를 받아든 나이가 되어서도 즉시 답을 못 한 채 머뭇거리고 있으니, 앵초꽃이 다시금 내게로 온 건 그 값을 일깨워주기 위함이 아닐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