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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김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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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다녀 보면 한국만큼 걷기 좋은 곳이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특히 북한산·도봉산·수락산 사방 산으로 둘러싸인 서울은 언제든지, 또 어디서든지 등산로를 통해 산에 오를 수 있잖아요. 미국·캐나다의 숲이 많은 도시에서도 근무했지만, 서울만 한 곳이 없어요. 특히 최근에 사우디에서 2년 반 정도 근무하면서 절실히 느꼈어요. 거긴 아무리 찾아도 걸을 만한 데가 없더라고요. 산은 물론이고, 거리를 걷고 싶어도 더워서 나가질 못해요. 바깥 산책은 그나마 겨울에 잠깐 가능한데, 그것도 검은 돌산뿐이에요. 거리에 풀 한 포기도 뿌리에 물을 대는 호스를 연결해야만 생명이 가능하니까요. 돈을 주고 자연을 사는 셈이죠. 우리는 이렇게 사계절이 뚜렷하고, 겨울에도 푸른 소나무를 볼 수 있는 산이 도시와 인접해 있잖아요. 외교관으로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산하를 사랑하게 되는 듯합니다.”
36년간 외교관 생활로 마치고 지난 1월 퇴직한 박준용(61) 전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가 말했다. 그는 사우디를 비롯해 미국·캐나다·중국 등 6개 나라의 재외 공관에서 일했다.
박준용 전 사우디 대사. 지난 21일 서울 북산산 칼바위능선 문필봉에 올랐다. 멀리 북한산 만경대와 인수봉이 보인다. 김영주 기자
퇴직 후 그는 서울시 성북구 정릉동의 한 아파트에 자리를 잡았다. 집을 나오면 북한산 칼바위 능선으로 연결된다. 언제든지 산에 갈 수 있는 곳이다. 지난 21일 김 전 대사와 함께 칼바위 능선, 문필봉 가는 길을 함께 걸었다.
그는 평소 등산로와 산책로 가리지 않는다. 산 정상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때그때 마음에 드는 길을 택한다. 그래서인지 산행 차림도 소탈했다. 길에 걷다가 어느 할인 행사장 매대에서 샀다는 4만원짜리 등산화와 무채색 계열의 등산바지와 플리스 재킷을 입었다. 그리고 머리엔 비니를 눌러 썼다. 또 스님의 봇짐처럼 생긴 작고 깜찍한 가방은 평소 아내가 메고 다니던 것이라고 했다. 발끝부터 머리까지 옷과 장비를 모두 합해봐야 10만원 남짓일 것 같았다. 서울에서 보기 드문 검소한 트레커다. 그는 “편한 것이 좋다”고 했다.
박준용 전 사우디 대사의 산행 차림. 김영주 기자
이날 갈 곳은 산책 수준이었다. 정릉동 풍림아이원 단지에서 칼바위공원지킴터를 지나 약 1시간 정도 올라가면 문필봉(480m) 암봉이 나오는데, 여기까지 왕복하면 4㎞ 남짓이다. 느릿느릿 산책하듯 걸어도 2~3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래서인지 평일 오전인데도 걷는 이들이 많았다. 대부분 장년층과 주부들이다.
문필봉 오르는 길은 칼바위 능선 초입 등산로 입구에서 북한산 둘레길 4구간(솔샘길)과 교차한다. 둘레길이 지나는 성북생태체험관에서 동쪽으로 길을 틀면 화계사 방면, 서쪽으로 가면 평창동 방향이다.
박 전 대사는 귀국 이후 두 달여 간 이 길을 걸었다. 북한산 등산로는 일주일에 한두 번, 둘레길 산책로는 거의 매일 걷는다. 아내와 함께 걷기도 하고, 때론 혼자 걷기도 한다. 스물다섯부터 시작한 36년의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 시점에서 걷기는 그에게 사색의 시간이다. 그는 퇴직하고 나니 한결 여유를 갖고 걸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외교관 생활이라는 게 아무래도 국내에 있는 것보단 긴장감이 떨어지잖아요. 일단 나를 관찰하고 감시하는 눈이 국내에서보단 덜하니까요. 그래서 자칫하면 나태해질 수 있지요. 저는 내향적이고 꼼꼼한 편이라 공관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을 직접 챙기는 스타일이었죠. 그래야 일의 성과를 낼 수 있고요. 특히 외교관이라는 직업은 주재하는 국가의 각 계 인물들을 되도록 많이 만나고, 그들을 친구로 사귀어 둬야 일이 수월해집니다. 그러려면 그쪽에서 요구하는 이런저런 민원은 물론 꼼꼼한 일 처리가 필수지요. 반면에 후배나 부하 직원들 입장에선 (내가) 피곤한 리더일 수 있겠지요. 그런데도 저는 그걸 고집했습니다. 정신적으로 피곤하지만, 외교관으로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 세금으로 월급 받고, 생활하잖아요.”
그는 고3 때 육사에 지원했지만, 체력테스트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군인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최일선에서 국가에 충성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체력이 부족해 장교가 되지 못했고, 그 아쉬움을 외교관으로 달랬다.
“군인은 국방의 최일선에서 일하고, 외교관은 해외 무대에서 국가를 위해 최일선에서 뛰잖아요. 어렸을 적부터 모범생이었는데,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나 봅니다.”
일찍 외무고시에 합격해 이후 공무원으로서 순탄한 길을 걸었지만, 그 전까진 녹록지 않았다. 그의 고향은 순천시 별량면 죽산리 죽림마을. 3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시골 마을로 그의 집안 형편도 넉넉지 않았다. 그는 “집안 벌이의 절반이 내 학비로 들어갔을 것”이라고 했다. 문필봉 가는 길에 수북이 쌓인 마른 소나무 잎을 볼 때마다 어려운 형편에도 아들을 뒷바라지하던 어머니가 생각난다고 했다.
박준용 전 사우디 대사의 4만원짜리 트레킹 신발. 김영주 기자
“예전에 불 때서 밥 짓던 시절엔 산길에 쌓인 마른 솔잎을 갈퀴로 긁어서 한짐을 만든 다음에 머리에 이고 지게에 지고 집으로 날랐잖아요. 아마 서울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이런 길을 걸을 때마다 어머니와 함께 나무하러 다니던 그때가 생각납니다.”
그는 1남 6녀의 외아들이었지만, 집안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의 체력도 어릴 적 땔나무 하러 다니던 때, 또 집에서 신작로까지 나가려면 한참을 걸어야 했던 유년 시절에 다졌다고 한다.
문필봉은 칼바위 능선 들어서기 전에 고래 등처럼 생긴 바위다. 능선 중간에 자리 잡은 바위에 서면 북서쪽으로 북한산 정상인 만경대(835m)와 인수봉(811m)이 보인다. 고도가 높지 않고, 주변에 나무가 많이 장쾌한 조망은 아니지만, 북한산 능선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또 보국문에서 대동문으로 이어지는 북한산성이 눈앞이다.
유년시절부터 30여년의 직장생활까지 모범생으로 살았던 그는 요즘 제2의 인생을 구상 중이다. 되도록 외교부 공무원과 외교관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일을 알아보는 중이다. 지금도 사우디에 진출했거나 향후 진출할 의향이 있는 기업을 상대로 자문역을 하는 중이다. 모두 무보수다. 전직 대사에게 이런 자문을 구하는 곳은 자금력이 달리는 중소기업이기 때문이다.
박준용 전 사우디 대사가 북한산 칼바위능선에서 정릉동으로 내려오는 데크 길을 걷고 있다. 김영주 기자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겪은 나라 중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한국을 가장 좋아하는 나라라고 봅니다. 정부, 기업, 일반 사람들 모두 한국을 좋아해요. 이들이 한국을 좋아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한국이 그들의 모델이에요. 한국은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산업화와 제조업 강국이 됐잖아요. 사우디가 그런 걸 하고 싶어해요. 이슬람과 사우디 전통문화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석유 팔아 쌓은 돈으로 친환경, 첨단 IT 국가가 되고 싶어하죠. 네옴시티도 그런 경우고요. 또 사우디 사람과 한국은 인간적인 면에서 비슷해요. 계산적이지 않고 정이 많지요. 그래서 그 친구들이 비즈니스 파트너로서도 한국과 같은 아시아 국가를 더 편하게 생각하죠. 또 한국은 예전 사우디가 황무지였을 때 그 사막에서 토목공사를 했던 나라잖아요. 그래서 더 친근하게 생각합니다.”
사우디와 한국의 문화가 친근감이 있다는 말은 생소하다.
“제가 사우디 대사를 마치고 돌아오기 전에 그간 사귄 현지 친구들을 찾아가 작별인사를 하는데, 한결같이 ‘지금 헤어진다고 끝이 아니다. 언젠가 또 보게 될 거다. 우린 친구다’ 이런 말을 해요. 사우디 문화 중에 ‘마즐리스(Majlis, 손님을 접대하는 공간)’라는 게 있는데, 늘 손님을 가운데에 앉히고 집주인은 문 앞 가장자리에 앉아요. 손님을 귀하게 여기는 게 한국과 비슷하죠. 그런 점에서 사우디는 비즈니스 파트너뿐만 아니라 관광 분야 등 협력할만한 게 많아요.”
그는 퇴직 후에도 한국에 사는 사우디 친구들과 연락하며 지낸다고 한다. 또 몇몇 사우디 유학생의 멘토 역할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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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