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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三國志)제171편. ※
장판교(長版橋)의 영웅 장비
드디어 오늘 그 유명한 장판교의 영웅편이 전개됩니다.
장비의 진 면모가 돋보이는 장판교의 현장을 즐겨주셔요~
조조의 명에 따라 조자룡을 뒤쫒던 조인과 조홍, 장요는 장판교(長版橋)
에 이르러 깜짝 놀랐다.
그곳에는 얼굴이 몹시 사납게 생긴 자북수염의 장수가 장판교 한 복판에 혼자서서 장팔사모를 꼬나 쥐고 떡 하니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스톱, 스톱!"
조인이 깜짝 놀라며 앞으로 나가길 제지하였다.
(너무 놀라서 짱꿰가 영어를 씨부렸다...)
"저게 누구냐?"
조인은 장판교 다리목에 버티고 서 있는 장수가 장비란 것을 알면서도 측근에게 한번 물었다.
"장비가 아니오?"
(에구머니나!...)
조인은 얼른 주변을 살펴 보았다.
그런데, 자기는 맹장 장요와 서황, 허저까지 뒤따라 득실거리는데 반해 장판교 위에 유비의 군사라고는 장비 하나만 <달랑> 있는 것이 아닌가?
조인이 보기에는 이거야 말로 더할나위 없는 공격 기회라고 보이는데, 문제는 장비의 뒷 편 계곡과 산위로 피어오르는 뭉게구름 같은 먼지가 문제였다.
뿐만 아니라, 산 위에서는 적의 깃발까지 휘날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조인이 전진 명령을 주저하고 있을 때, 어느덧 조조도 따라붙었다.
조조까지 합세한 것을 본 장판교 위에 장비가 찌렁찌렁한 호통을 내질렀다.
"나는 연나라 사람 장비다! 누가 나와 붙어보겠나! 엉?"
그러자 어느덧 장판교 앞까지 다가온 조조가 물었다.
"저 자가 누구냐?"
"저 자는 장익덕 입니다."
조인이 대답하였다. 그러자 조조는,
"어? 장익덕! ...관우에게 들은 적이 있다.
아우 장익덕이 백만 대군 속에서 적장들을 풀을 베듯이 쓰러뜨렸다는 것을 들어서 잊지않고 있었지,.
그런데 저자 뒤로 흙먼지가 자욱히 일어나고 산위에선 깃발이 흔들리는 것을 보니, 분명히 장익덕의 뒤에는 복병이 있겠구나..."
조조가 여기까지 말을 하였을 때, 별안간 장비가 장판교 다리목 위에서 천지가 떠나갈 듯이 소리를 지른다.
"야잇!...야,아,잇 !~~~..."
그러자 조조의 수하 장수 하후걸의 말이 장비의 괴성에 놀라며 발버둥을 치는 바람에 하우걸이 말에서 떨어져버렸다.
그 광경을 보자, 조조의 군사들이 공포에 떨었다.
그리고 장비는 이어서,
"뭣들 하는 거냐! 어서들 덤벼 오너라! 이 장비와 함께 죽도록 싸워보자!"
하고 벼락같이 소리치는 것이 아닌가?
조조는 장비가 이처럼 호담하게 나오는 것을 보자, 그의 배후에는 반드시 대군이 있으리라고 짐작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제갈공명의 기습작전이라고 생각되어 별안간 후퇴 명령을 내렸다.
"퇴각한다."
조조의 이 말 한마디로 장판교 앞에 이르렀던 조조를 비롯한 군사들은 뒤로 돌아섰다.
"우 하하하핫! ..."
장비의 통쾌한 웃음이 장판교 상공에 찌렁찌렁 울렸다.
장비는 뒤이어 강하로 퇴각하는 유비의 뒤를 열심히 따라붙었다.
"형님, 놈들이 퇴각했습니다!"
"어찌 된 게냐?"
유비는 조조군이 퇴각했다는 소식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장비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헤헤헤! ..병사들에게 장판교 뒤에서 흙먼지를 일으키게 하고 경산에 올라 깃발을 흔들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조조가 복병이 있다고 생각하고 진군하지 못 했지요.
헤헤헤헤.. 나 혼자 다리 위에서 고함을 질러댔는데, 조조와 그 졸개들이 꽁지가 빠지도록 도망갑디다! 하하하하!..."
공명이 그 소리를 듣고,
"장군께서 그런 지략을 다 쓰시다니요. 정말 장군을 다시보게 되었습니다."
하고 칭찬을 하였다. 그러자 우쭐해진 장비가,
"이쯤이야! ...하하하하!..조조군이 떠나고 다리를 <확> 부숴 버렸으니 이제는 놈들이 우리를 쉽게 따라오진 못 할꺼요. 그러니 이젠 맘 놓고 가도 될 거요."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공명이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다.
"에엣? 다리를 부숴버렸어요?"
"아 아, 그랬소! 근데 뭐가 문제요?"
장비는 오히려 공명이 놀라는 것이 의아하여 물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조조군이 갔으니 상관없잖소?"
공명이 고개를 흔들어 보이며 대답한다.
"조조는 의심이 많아서 흙먼지를 보고서 복병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오.
그러나 장판교가 부숴진 것을 보고 정찰병을 보내 복병이 없는 속임수였다는 것을 금방 확인할 것이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우리 뒤에 따라 붙을 것이오. 장군이 다리를 부숴버려 오히려 조조군을 끌어들인 격이 되었소."
"어, 어?... 듣고 보니 그렇군!"
장비는 의기양양하던 조금 전의 모습에서 갑자기 침울해졌다.
그러자 공명이 정색을 하면서 말한다.
"장 장군! 아까 한 말은 취소해야겠습니다. 장군의 지략이 대단했다고 한 것을.."
그러자 장비는,
"내가 이미 다리를 없애버렸는데 조조군이 어찌 오겠소?"
하고 말하면서 장판교를 부숴버린 것이 실수가 아니란 공명의 소리를 듣고 싶어하였다.
그러나 공명은 냉철한 어조로,
"오십만 대군으로 그깟 강 하나 메우는데야 잠깐이면 되겠지요."
하고 말하여 장비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유비가,
"됐소, 그 애기는 그만하고 서둘러 강하로 갑시다."
하고 말하는 덕분에 그 문제는 여기서 일단락 되고 모두가 서둘러 강하로 가는 길을 재촉하였다.
한편, 척후병을 보내어 장비가 장판교를 부숴놓고 떠났다는 보고를 받은 조조는,
"앗차! 다리를 헐어 버릴 정도라면 배후에 대단한 군사가 있었던 것이 아니구나!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다리를 세 개쯤 놓아 적의 뒤를 추격하도록 하라!"
하고 명하였다. 그리하여 단 시각내에 다리가 새로 놓여지고 유비의 뒤를 다시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유비 일행은 조조의 추격을 피해, 강하로 계속 행군하여 장강(長江)이 눈 앞에 보이는 강진 나룻터 앞에 이르렀다.
뒤를 돌아 보니 멀리 먼지 구름이 이는 것이 조조의 추격군이 점차 다가오는 위기감이 느껴지는 데 나룻터 앞은 강을 건널 배 하나 없는 깊은 장강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공명이 자조섞인 말을 내뱉었다.
"관장군에게 강하로 먼저 달려가 유기 공자에게 구원을 요청하라 했는데 어쩐 일이지? 하늘의 뜻인건가!"
이렇듯 공명이 한탄하자, 장비가 유비를 돌아보며 옛 일을 꺼낸다.
"그러니까, 허전에서 사냥할 때 조조놈을 죽이게 놔뒀더라면 좋았을 게 아니오?"
그 말을 듣고, 유비가,
"셋째, 그런 말 말게, 눈앞에 이것이 하늘의 뜻이라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네.
그리고 허전에서 조조를 죽이지 못 한 것은 그때 천자께서 바로 조조의 옆에 계시지 않았던가? 천자께 누(累)를 끼칠까 봐 못 하게 한 걸세."
하고 말하였다.
공명이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물었다.
"만일 조조에게 잡힌다면 우리를 어떻게 할까요?"
그러자 손건이,
"조조는 우리에게 투항을 권할 거요. 관우 장군에게 그랬듯이 말이오."
하고 대답하자 공명이 고개를 흔들며,
"아니오, 주공이 사라진다면, 더이상 적수가 없을 테니 우리 모두를 죽일 겁니다."
하고 단언하듯이 말하였다.
그리하여 좌중에 긴장감이 흐르자,
유비가 말고삐를 돌리며 쌍고검을 뽑아 들고 뒤따르던 병사들을 향하여,
"자! 형제들이여! 두려워하지 말고, 끝까지 나와 함께 목숨바쳐 싸워보세!"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자룡이,
"한 날 한 시에 낳진 않았으나 한 날 한 시에 죽겠습니다!"
하고 비장하고 결심어린 소리를 외치었다.
그러자 군사들은,
"한 날 한 시에 낳진 않았지만, 한 날 한 시에 죽겠습니다 !"
하고 일시에 복명하는 것이 아닌가?
"좋다! 가자! 앞으로! ~"
장비가 장팔사모를 조조군이 달려오는 방향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리하여 군사들이 말을 돌리는 순간, 장강 어귀 쪽으로 눈길을 돌린 공명이 손을 들며 소리친다.
"잠깐 ! 보십시오 !"
공명의 외침에 모두가 돌아보니, 장강을 가득 메우고, 이쪽으로 달려오는 수백 척의 크고 작은 군선(軍船)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군선이 가까이 다가오며 소리친다.
"황 숙! ~~유기가 왔습니다 ~~~...."
그 소리를 듣고,
"하하하핫!..."
공명이 비로서 웃음을 웃었다.
이리하여 유비를 따르던 군사들은 물론, 신야에서 따라온 백성들 모두가 일시에 군선에 올랐다.
그리고 지체 없이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군마 조차도 한 마리 남겨두지 아니하고 모두 승선하고 강 한 복판으로 떠나, 강하로 출발하였다.
잠시후, 배 떠난 나룻터에 도착한 조조는 믿기지 않는 장면을 목격하고 허탈해 하였다.
그리하여 장강 물가로 천천히 걸어가 떠나가는 배를 바라보며, 물을 차며 소리쳤다.
"이런 제길헐! 이거야 말로 닭 쫒던 개가 지붕 쳐다 보기격이 아닌가!"
이렇게 조조와 그를 따르는 군사들은 그의 말대로 모두 개(犬)가 되었다.
<노친 개>
※ 삼국지(三國志)제172편 ※
조조의 야망•강동의 노숙(魯肅)
장강 앞에서 유비를 놓친 조조는 형주로 돌아온 뒤, 강동의 손권을 쳐부술 계책 마련에 들어갔다.
그래야만 천하를 통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하루는 휘하의 모든 문무 관리들을 한자리에 불렀다.
모두가 대청으로 입장하여 조조를 중심으로 좌우로 도열하자 조조가 입을 열어 말한다.
"유비가 강하로 도주한 뒤 유기와 합세 해서 수성에 나섰소.
그러나 패잔병 쯤이야 문제가 안 되나, 단 하나, 유비가 손권과 손을 잡고 조정에 대항할 까 우려되오.
해서, 숙고한 끝에 앞으로 세 달간 군을 정비해서 봄 꽃이 피고 계곡물이 녹으면 백만 대군으로 일거에 장강을 넘어 손권을 멸하겠소. "
그러자 자리한 문무대신들은,
"알겠습니다!"
하고 일거에 복명하였다.
조조의 말이 이어진다.
"이는 우리가 천하를 통일하는 마지막 일전이자 꿈에 그리던 대업을 완수해 역사에 남길 일전이 될 것오.
또한 승리가 확실시 되는 일전이오. 또 전쟁이 끝나면 나도 여유를 갖고 조용히 살고 싶소.
그리고 여러분들도 막대한 황금과 더불어 두둑한 봉토와 작위를 하사 받고 집에 아름다운 처첩들을 거느리며 복을 누리게 될 것이오! 하하하하..."
조조의 이같은 기분 좋은 말을 듣게 된 대신들은 하나같이 두 손을 올려 경의를 표하며 함께 웃었다.
"하하하하... 감사하옵니다!"
조조의 말이 이어진다.
"그런 두둑한 재물이건 아름다운 처첩이건 지금 당장은 그림의 떡일 뿐이오.
그 모든 것을 눈앞에 두고 다 잡았다 보여지는 그 순간 놓칠 수도 있는 것이지! 강진 나룻터를 기억하시오?
유비는 다 잡은 오리고기에 차려진 밥상이었지만 우린 마지막 순간에 다 익은 오리를 놓쳐버렸어!...때문에 이번에는 여러분이 필히 대비를 해야 하오.
기필코, 유비와 손권을 섬멸해서 강진에서의 그 뼈아팠던 수모를 갚을거요."
조조의 마지막 말은 모두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이같은 조조의 어르고 뺨치는 평소의 성격을 잘 알고있는 대신들은 어느 누구도 감히 그의 말에 토를 달거나 심지어는 기침조차 하지 못하고 모두가 굳은 표정이 되었다. 조조가 근엄한 표정으로 채모를 불렀다.
"채모 !"
"예, 승상!"
채모가 대열에서 빠져나와 두 손을 공손히 올리고 예를 표하며 조조의 명을 기다렸다.
"자네 한테 석 달을 주겠네, 동정호에서 사십만 수군을 조련하고 전함 팔천 척을 건조하여 석 달 후에는 자네가 전함을 인수해 동정호를 떠나 적진으로 떠나게."
"알겠습니다!"
"정욱 !"
"네, 승상 !"
"받아 적으시오. 강동의 손권에게 조서를 내리겠소."
조조의 명이 떨어지자 정욱이 자리에 앉아 지필묵을 손에 잡았다.
조조가 눈을 지그시 감은 채로 몸을 끄덕이며 따라 적을 문구를 말한다.
"<황명을 받들어 역적을 토벌하고 기치를 높이 들어 유표를 제압하여 형양 9군을 모두 귀속시켰고, 이제 백만 대군과 천여 장수로 손권 그대와 함께 사냥에 나서려 하니, 함께 유비를 잡고 결맹을 하고자 한다. 바라건데, 천리에 순응 하되 오판은 하지 마라.>
이 조서를 삼천 부를 더 써서 죽통에 넣어 장강에 띄워 보내시오. 난 이제 드넓은 장강을 손권에게 보내는 선전 포고서로 메우고 그걸 본 강변 백성들이 전쟁을 두려워하며 다시 그걸 본 강동의 관리들이 놀라게 만들 것이오! 으하하하하!..."
조조의 명으로 만들어진 포고문은 그 즉시 죽통 삼천 개에 담겨 장강을 가득 메우고 흘러갔다.
...
이때, 손권은 조조가 형주 9군을 취하고 조조에게 대항하던 유비가 수세에 몰리면서 강하로 피신했다는 소식을 듣자 머지않아 조조가 강동을 침공해 오리라고 예상하고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있는 모사 노숙(謀士 魯肅)이 손권에게 아뢴다.
"형주의 유표가 세상을 떠난 지 오래지 않았으니, 제가 조상(弔喪)을 명목으로 유표의 장공자가 있는 강하로 가서 정세를 한번 알아보고 오는 것이 좋을까 합니다.
만약 유비가 우리와 힘을 합해 조조에게 대항할 뜻이 있다면 우리가 조조를 두려워할 것이 없겠습니다.
유비는 비록 군세는 작지만, 조조와 최근에 전투를 벌인 경험이 있고 그의 수하에는 관우, 장비, 조운 등의 맹장과 제갈공명이라는 현인(賢人)도 있어, 어느 누구도 만만히 볼 상대는 아니니 그들의 형편과 조조의 군정(軍情)을 알아본다면 앞으로 조조에게 대항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손권은 노숙의 말을 타당하게 여겨, 곧 예물을 갖추어 그를 강하로 떠나게 하였다.
그 무렵에 제갈공명은 강하의 성중에서 유비를 비롯해 유기와 함께 날마다 천하대사를 논의하고 있었다. 그자리에서 공명이 두 사람에게 말문을 열었다.
"주공, 유 태수, 조조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으니 조만간 강하로 출병할 것입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조조군의 수군과 형주의 수군을 통합하여 전함과 전술을 정비하고 있겠지만, 그런 준비가 끝나게 되면 틀림없이 오나라의 손권을 치기보다는 먼저 강하로 몰려올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조조가 먼저 손권과 싸우게 하여 그들의 힘과 전력을 소진하게 만들어 어중취리(於中取利)를 취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그러자 침울한 유비가,
"조조와 손권이 군사의 말씀대로 그래준다면 우리가 이로운 것이 사실이겠으나 저들이 과연 우리의
바람대로 움직여 주겠소?"
유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회의심을 품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공명은 자신만만하였다.
"두고 보십시오. 머지않아 손권이 사자(使者)를 보내올 겁니다.
그리하여 이곳의 준비사항을 비롯하여 우리가 먼저 조조와 결하게 하든 지, 자기들과 합종연횡(合從連橫)할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할 것 입니다.
그러면 그때에 제가 오나라 손권을 찾아가서 조조와 싸우도록 계책을 꾸며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손권이 이기거든 우리도 조조를 함께 공격하여 형주를 취하고, 만약 조조가 이기거든 그때의 형편을 보아서 강남을 취하는 계책을 실행하면 좋겠습니다."
유비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기울이며 묻는다.
"강동에서 무엇때문에 우리에게 사람을 보내온단 말씀이오?"
마침 그때, 강하의 군사가 들어오더니 유기에게 강동의 손권이 유표의 문상사를 보내왔다고 알린다.
유비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공명을 바라보았다.
공명은 웃으며 말한다.
"모든 계획이 우리의 뜻대로 되어 가는가 봅니다."
그리고 유기를 돌아보며 묻는다.
"손권이 문상사(問喪使)를 보내 왔다고 하는데 전에 손책이 세상을 떠났을 때 형주에서 문상사를 보낸 일이 있었소?"
유기가 잘 알고 있는 사안으로 대답한다.
"선친은 강동의 손책과 원수지간이었으나 정작 그가 죽었을 때에는 후일을 생각 하시어 문상사를 보낸 일이 있습니다."
공명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유비에게 말한다.
"주공, 손권은 주공 때문에 사자를 보낸 겁니다."
"이유가 뭐요?"
"보나마나 사자는 문상을 핑게로 조조의 군정(軍情)을 살피러 온 것입니다. 가장 최근에 교전한 상대가 우리니까요.
제가 그를 설득하여 손권을 만나서 우리와 연합하여 조조를 깨뜨릴 계책을 마련해 볼 테니, 주공은 사자를 만나셨을 때, 그가 조조의 군정을 묻거든 아무 말씀도 하지 마십시오.
그래도 재차 물어 보거든 제가 대답하도록 미루십시오."
공명은 이렇게 말하고 나서 보고를 하는 병사에게 물었다.
"사자로 누가 왔는가?"
"듣기론 장군부의 참모인 노숙(魯肅)이라 합니다."
"노숙?"
공명이 놀라며 병사 앞으로 한 발 다가선다. 그러자 유비도 공명을 따라 단상에서 내려오며 공명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사자로 온 사람을 공명이 아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공명이 유비에게로 돌아서며 말한다.
"노자경(魯子敬)? 그 사람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누군지 아시오?"
"아니오, 허나 그 이름은 형님인 제갈근에게서 들었습니다.
강동의 인물들 중 무장중엔 주유가 으뜸이고, 문신 중엔 노신 장소가 최고이며 그 다음에 삼인자가 바로 노숙입니다.
형님 말씀으론 장차 강동의 문신을 이끌 사람은 바로 노자경이라 했습니다."
"노자경의 재능이 제갈근보다 낫다는 말씀이시오?"
유비는 군사 공명의 재능을 직접 감탄하며 보아왔기에 제갈근이 그의 형이라면 그의 재능은 공명의 재능과 막상막하를 이루지 않을까 여겼다.
그러나 공명은,
"제 형님의 재능은 강동의 현인들 중에 스무명 안에도 들지 못합니다.
더구나 주유가 얼마나 오만한 인물입니까? 주유 눈에 찰 사람은 얼마 없지요.
헌데 주유가 유일하게 추천한 사람이 바로 노숙입니다. 손책이 죽고 사흘 후, 주유가 노숙을 손권에게 추천했고 그렇게 알게 된 이후, 손권은 노숙과 한 달 동안 동거동락하며 아침 저녁으로 붙어다니면서 은사로 대했답니다.
그 시간동안 어떤 애기를 주고 받았는지 아는 사람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그 이후 부터 주공자리에 갖오른 손권이 면모를 일신해서 말과 행동에 있어 공자의 티를 벗고 제왕의 풍모를 갖추게 되었답니다."
유기가 여기까지 듣고,
"그런 자를 사자로 보냈다니 보통 일이 아니군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유비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한다.
"공명, 공자, 가서 노숙을 맞읍시다."
하고 말하며 노숙이 기다리고 있다는 곳으로 발걸음을 바삐 움직였다.
이윽고 노숙은 유비를 만나자 예를 표하며,
"황숙의 대명을 듣자온 지 오래이나 오늘 이렇게 뵙게 되니 영광이옵니다."
하고 극진한 인삿말을 한다.
그러자 유비도 마주 예를 표하며,
"원로에 오시느라고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노정(路亭)안으로 들어가 사각 탁자에 서로 마주보고 앉았다.
노숙이 유기에게 인삿말을 건넨다.
"유기 공자, 우리 주공께서 부친의 별세 소식에 통탄해 하시며 저를 보내 애도의 뜻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사소한 예물도 가져왔으니 성의로 받아 주십시오."
하고 말을 하며, 밖에 쌓아놓은 예물을 가리켰다.
이에 유기가 예물을 한번 보고 나서,
"선친께서는 귀국과 사이가 좋지 않으셨는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선생을 조문사를 보내신거요?
아마도 강동에서는 선친의 죽음을 기뻐하고 있을 텐데, 조문을 온 것은 무슨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오?"
하고 탐탁하지 않은 대꾸를 하였다.
그러자 노숙은,
"부친께서 살아계셨다면 조조가 형주를 감히 넘보지 못 했겠지만 작고하시자 마자 형주는 물론이고 강동까지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러니 우리 주공께서는 부친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하시는 거지요.
그래서 저를 조문객으로 보내시며 조조군의 허실을 탐문하고 유황숙 진영이 조조와 대적할 실력이 되는 지 자세히 살펴보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하고 솔직 담백하게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설명하였다.
그러자 공명이,
"대답 한번 시원하시군요.
첫 마디에 속내를 터 놓으시다니오."
하고 말하자, 노숙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공명 형? 말씀 많이 들었소. 이분이 제갈양이시군요."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표하며 절을 해 보인다. 공명도 그에 응대 하여 함께 마주 절해 보이자 노숙이 허리를 세우며,
"듣기론 지략이 풍부하고 언변이 뛰어나 세 치 혀 만 가지고도 사람을 죽인다 하니 언변에 서툰 제가 별 도리없이 솔직하게 말할 수밖에요.
진실은 그 어떤 말 보다 유용하다고 하는 말도 있지 않소?"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공명이 너털 웃음을 웃으며,
"허허허허... 훌륭한 말씀입니다."
하고 대답 하고, 서로 자리를 권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노숙은,
"외람되지만 진실을 계속 말하겠습니다."
하고 말을 하고 난 뒤, 유비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묻는다.
"유 황숙, 현재 조조군 병력이 얼마나 되며 전투력은 어느 정도 됩니까?"
유비가 잠시 생각하는 듯이 멈칫 거리다가,
"정말 부끄럽소. 전력상 약자가 조조군이 온다기에 물러나기 급급해, 조조 병력이 얼마나 되는 지 저도 정확히 모르겠소."
하고 능청스럽게 <모르쇠> 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노숙은 빙그레 웃으며,
"유 황숙께서 저를 속이시려는 게로군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유비는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하하하하 ! ... 자경!
다 제 탓이오. 제가 질문을 회피하시라고 했소."
건너편에 앉은 공명이 웃으며 노숙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노숙이 공명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허! 그럼, 그쪽에 묻겠소. 공명, 조조군 병력이 얼마나 되며 전투력은 어느정도 되오?"
공명이 대답한다.
"형주를 취하기 전 조조에게는 보군이 이십만, 마군이 육만, 수군이 십팔만이었는데, 형주를 취한 뒤 약 삼십만 병력이 늘어 모두 칠십만을 상회하지요.
그리고 전투력만 본다면 승기를 잡은 군대는 예봉이 날카롭소."
공명의 대답을 듣자 노숙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그럼, 조조의 다음 행보는 어떻게 보시오?"
하고 묻는다.
그러자 공명은 노숙을 똑바로 쳐다 보며,
"강을 건너서 강동을 취해 천하를 통일하려 하겠지요."
하고 대답한다.
그러자 노숙이 고개를 끄덕끄덕 하며, 유비와 공명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노숙의 말을 듣고, 유비는 대답할 모양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공명이,
"창후 태수가 주공과는 교분이 있으니 최후의 순간에는 창후에 의탁할 것이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노숙이 잠깐 뜸을 들인 뒤에,
"창후는 군사력이 약해 오래 못 버틸 거요. 그러나 우리 강동 육군은 천연 요충지에 군사력도 막강하고 주공께서는 현인을 아끼시는데, 왜 강동에 의탁하지 않소? 우리 주공과 연합해 조조에 대항 합시다!"
하고 말한 뒤에, 노숙은 말의 말미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자기의 말에 결단력을 보여 주었다.
그러자 공명도 벌떡 일어나며,
"자경, 지금 뭐라 하셨소?"
"공명, 지금 상황에서 귀측이 손권과 손 잡는 것 외에 다른 활로가 있다고 생각하시오?"
노숙은 진지한 어조로 말하며 공명을 뚫어져라 쳐다 보았다.
그러자 유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노숙을 향하여 극도의 예를 표해 보인다. 그리고,
"자경의 말씀이 마치 가뭄 속에 단비를 만난 것 같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노숙이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어느 분이 나와 함께 강동에 가서 우리 주공을 만나 보시겠소?"
하고 묻는다.
그러자 공명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접니다. 제가 함께 가겠소!"
하고 손까지 들어보이며 대답하였다.
"좋소! 잘 생각하셨소."
노숙도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였다.
※ 삼국지(三國志)제173편 ※
강동에 이는 불안
노숙(魯肅)과 제갈양(諸葛亮)은
함께 배를 타고 장강(長江) 천리의 귀로(歸路)에 올랐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뱃길이었다.
노숙은 공명이 종자(從子) 하나도 거느리지 아니하고 단신으로 손권을 만나러 가는 것을 보고, 그의 비장한 결심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기에 노숙은 공명과 함께 차를 마시면서 부탁조로 말한다.
"공명, 내가 강동에서 유 황숙과의 연합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긴 했지만, 사실 강동의 대신들이 모두 찬성 하는 것은 아니오.
때문에 우리 주공을 만나 뵈올 때, 특히 대신들이 듣는 앞에서 조조군의 규모에 대해서 말씀하지 마시오."
공명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네, 이해합니다. 현인들이 많은 곳이니 의견이 분분하겠지요, 저도 부탁을 안 하셔도 대강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순간, 내달리고 있는 배에 무엇인가 <탁 !>하고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그 바람에 공명도 노숙도 대화를 끊고 밖의 상황에 귀를 기울였다.
노숙이 밖을 향해 소리쳤다.
"무슨 소리냐 ?"
그러자 곧이어 노숙의 호위 장수가 들어오며,
"보고드립니다. 조조의 선전포고 입니다."
하고, 아뢰면서 죽통과 함께 조조의 선전 포고문을 들고 들어와 탁자 위에 올려 놓았다.
노숙이 공명이 앞에서 조조의 선전 포고문을 읽어내린다.
"<황명을 받들어 역적을 토벌하고, 기치를 높게 들어...바라건데, 천리에 순응하되, 오판은 하지 마라.>"
이것은 조조가 강동의 백성들에게, 죽통에 담아 장강에 띄운 삼천 개의 선전 포고문 중에 하나였다.
노숙은 선전 포고문을 모두 읽고 말이 없었다. 그것은 공명도 마찬가지로, 두 사람 사이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공명이었다.
"훌륭하군요. 천하를 삼킬 듯한 웅대한 기상이 보이는 문장이군요."
"이 포고문이 강을 따라 왔으니, 강동의 관리들과 백성들이 누구나 볼 수가 있다는 것이 문제요.
하 !.. 이것을 본 강동의 군심과 민심이 흔들려 큰 혼란이 일어날 것 같구려. 공명, 우리 주공의 탁자에 이런 죽통이 얼마나 쌓여 있겠는지 모르겠소 ..."
노숙은 이렇게 말하면서 한숨을 내쉰다. 그러자 공명이,
"자경..이제 조조가 얼마나 대단한 지 아셨을 것이오. 그래, 조조는 전쟁에 앞서, 상대방의 마음부터 공격을 했소."
공명은 포고문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러자 노숙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아니하고 눈만을 깜빡거렸다.
이윽고 강하를 떠난 배는 장강 천 리를 내려와 강동에 도착하였다.
그리하여 두 사람이 배에서 나와 나루로 향하니, 궁중의 시종이 두 대의 수레를 대기시켜 놓고 기다리다가 노숙에게,
"주공께서 공명 선생은 내일 뵙겠다고 하시고 객관에 모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고, 아뢴다. 공명이 그 말을 듣고 노숙을 향해 예를 표하며,
"그럼, 저는 내일 뵙겠습니다."
하고, 말한 뒤에 수레에 올랐다. 노숙이 공명을 배웅하며 서 있자, 궁중 시종이 노숙에게 아뢴다.
"주공께서 당장 뵙자고 하십니다."
그리하여 노숙은 장거리 여행의 노독을 풀 사이도 없이 그 길로 궁중으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손권의 앞에 이르자, 그곳에는 이미 장소를 비롯한 두 명의 대신들이 손권을 뵙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손권의 탁자 위에는 조조가 장강에 띄워 보낸, 죽통 여러 개가 올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그 껀으로 의논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일단 노숙은 어떤 사안이 논의되고 있는 지 알 수가 없는 일인지라, 먼저 손권에게 예를 표하며,
"주공, 다녀왔습니다."
하고, 고하였다. 그러자 보고서를 읽고 있던 손권은 노숙에게 손짓을 해 보였다.
눈치를 챈, 노숙이 대신들 틈으로 들어가자, 손권은 장소(張昭 : 字: 자포(子布))를 가리키며,
"아, 사숙(私叔 : 사사로이 부르는 작은 아버지) 계속하시오." 하고, 말하였다.
노숙이 도착하기 직전 부터 손권은 장소에게 보고를 받던 중이었던 것이다.
장소가 두 손을 올려 예를 표하며 말한다.
"주공, 이런 말은 소신만이 할 수 있을 뿐, 다른 대신들을 할수가 없사옵니다."
"말씀해 보시오."
"조조의 백만 대군은 천자의 이름을 내걸고, 기치를 높게 세운 정예 병력 입니다.
장수들은 대부분 북방 지역에다 서역 출신인 지라 용맹하기 그지 없고, 병사들은 대부분 전투경험이 풍부하여 예봉이 날카로우며 수하의 모사들은 대부분 용별술을 갖추어 지략이 풍부합니다.
허나, 우리 강동군 만은 보군과 수군을 모두 합쳐 봐야, 십만이 채 안 되며, 선제께서 창업한 지 오십이년 동안 강동의 장수들이 경험한 가장 큰 일전이 바로, 형주의 유표와 겨뤘던 작은 전투이나 그것 조차 승부를 가리지 못하였습니다.
허나, 유표의 장수들은 이번에 감히 조조와 싸워볼 생각도 못하고 모두 투항한 상태 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강동은 조조군의 적수가 못 됩니다. "
하고, 전쟁보다는 주화론(主和論)을 주장하였다. 그러자 손권이,
"선생, 우리에겐 장강이라는 요새가 있지 않소 ?"
하고, 다소간 불만 어린 어조로 질문하였다. 그러자 장소는 허리를 굽히며,
"맞습니다. 허나, 조조의 백만 대군이면 물길 조차 막을 수가 있습니다. 더구나, 방금 강에서 돌아온 어부의 말에 의하면 조조가 동정호에서 수군을 훈련중이며, 그 수는 사십만에 이르고, 수천 척의 전함을 건조중이라고 합니다.
더구나 건조중인 전함은 길이가 이십 장에 폭은 수 장에 달해, 우리 강동의 전함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크고 튼튼하다고 합니다."
하고, 고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손권이 실망한 어조로 묻는다.
"그럼, 사숙의 의견은...?"
장소가 대답이 난처한 듯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내쉰다.
"하... !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전쟁은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고... 투항은 백성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으니...
주공께서 강동 육군의 백성들과 관리들을 이끌고 조정에 투항을 하신다면 조조가 주공께 태수 자리를 내리고 강동을 지키도록 할 것입니다.... 다만,
매년 허창에 조공을 바쳐야 하겠지요... 사실 조조가 원하는 것은 천하를 통일해 역사에 남는 것이니, 그가 보고 싶지 않는 것은 도처의 군웅이 할거해 패권을 다투고 강산이 파괴되는 것이며, 원치 않는 또 하나는 남북 대군의 교전으로 시신이 산을 이루고 장강이 피로 물드는 것입니다."
장소는 이렇게 말을 하고 손권을 향하여 불편한 말을 꺼낸 것에 대한 송구함으로 안절부절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다른 대신이 뒤이어 아뢴다.
"장소의 말이 하늘의 뜻이자 민심입니다."
그러자 지금까지 간간히 장소를 힐끗 거리며 쳐다보던 손권이 이번에는 노숙을 한참 건너다 보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손권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하 ! .. 사숙과 여러 대신들은 물러가시오. 이 문제는 숙고해 보겠소"
하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시립해 있던 장소를 비롯한 두 명의 대신이 물러나간다.
그들이 물러가자 손권은 노숙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화난 어조로 소리쳤다.
"모두 다 투항을 권하는데, 선생은 한 마디도 안 하셨소 !"
그러자 노숙은 찬찬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주공, 장소와 다른 대신의 주장도 인리는 있습니다. 저들 입장에서 보면, 투항해야 마땅합니다.
그 이유는 투항한 후에도 그들은 정사를 돌 볼 수 있고, 백성을 관리하고 평안을 가질 수 있은 뿐만 아니라 조정의 관직을 잃지 않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소신조차 투항할 수 있습니다. 소신이 투항에서 관직에서 물러나 집안에 들어 앉아 시문이나 지으며, 제자들을 거두면 먹고 사는 것은 문제가 없지요.
허나, 주공, 강동의 관리들이 모두 투항해도 오직 주공만은 투항할 수 없습니다 !"
그러자 손권은 뒤로 돌아서 노숙을 바라보며 물었다.
"왜, 나는 투항할 수 없다는 거요 ?"
"얼마 전 조조가 허창에서 황금으로 새장을 만들었는데, 휘황찬란 하답니다. 그 새장을 조정이라 명하고, 새 한 마리를 넣었으니, 그 새 이름을 천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조조는 또 한 마리를 넣었으니, 그 이름이 유종이라고 합니다.
주공께서 투항하신다면 주공 역시 황금으로 만든 새장에 갇히게 될 겁니다. 주공, 생각해 보십시오, 한 새장 안에 세 마리가 사는 것은 너무 비좁지 않겠습니까 ?"
손권이 그 말을 듣고, 감탄하듯, 외치듯 말한다.
"하 !... 자경, 지금 그 말씀은 제 가슴을 후벼 파는 듯 하오..."
"그러시겠지요, 그게 사실이니 말입니다."
노숙은 언제까지나 조용조용 말하였다.
※ 삼국지(三國志)제174편 ※
강동에서의 설전(舌戰)
다음날 아침, 공명은 노숙이 보내온 수레를 타고 궁 앞에 도착하였다.
공명이 수레에서 내리니, 노숙이 먼저 나와 있다가 극진한 예로 맞는다.
"공명 선생, 잘 쉬셨습니까 ? 객관에 불편한 것은 없으셨습니까 ?"
"자경 형 ! 여러가지로 배려해 주셔서 편히 지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러자 노숙은 공명과 함께 강동으로 오며, 며칠 지내며 본 봐와 다르게 살가운 인사를 건넨다.
"오늘은 왠지 선생 얼굴에 화색이 돌고 신수가 훤하니, 보기가 아주 좋습니다."
공명이 소리내어 웃으면서 화답한다.
"하하하...강동은 날씨도 온화하고 현인들 천지인데, 낯빛이 어둡다면 주공을 뵈올 때 어찌 고개를 들겠습니까. "
공명의 멋진 화답에 노숙이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하... 고맙습니다, 자, 들어가시죠."
공명은 노숙의 안내를 받으며 손권을 만나러 궁 안으로 들어갔다. 노숙은 걸어가며 공명에게,
"공명, 명심하시오.
주공의 면전에서 조조군의 전력에 대하여 절대 애기해서는 안 되오."
하고, 재삼 당부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공명은,
"그러죠. 알겠습니다."
하고, 순순히 대답하였다.
공명이 손권을 만나기 위해 대청으로 들어가니, 그곳에는 이미 강동의 유수한 대신들이 먼저 좌정하여 공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노숙이 먼저 장소를 소개한다.
"공명, 이 분은 강동의 장사(長史: 막료의 으뜸),장자포(張子布 )선생이오."
하고, 장소(張昭)를 소개하였다.
"아, 그러십니까 ?"
공명이 예를 표하며 인사를 해 보였다. 그러자 장소도 마주 예를 표하며,
"강동의 보잘 것 없는 선비, 장소라 하오. 선생의 명성은 익히 들었소.
와룡(臥龍)을 자처하며 스스로 춘추시대의 관중(管仲)과 악의(樂毅)를 지칭하셨는데, 하하하하... 정말, 과연 그런 분들과 비교할 정도가 되시오 ?"
하고, 공명을 빈정거리는 말투로 현인(賢人) 관중과 악의에 빗대어 묻는 것이 아닌가 ?
공명이 여유있는 미소를 보이며,
"그건 그저 비유에 불과할 뿐이니, 염두에 두시지 마시죠."
하고, 겸양지사의 말로 화답하였다. 그러자 장소는 더욱 무시하는 듯한 웃음을 웃으며,
"허허허헛 !.. 듣기론 유 황숙이 삼고초려해서 어렵사리 선생을 모셨고, 그 후 유황숙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곧 바로 형양을 취하고 대업을 이루려고 했다지요 ?...
헌데, 이제 형양 9군이 조조의 손에 넘어 가 버렸으니, 지금 물고기는 물 속에 있소, 아니면 솥 안에 있소이까 ?"
하고, 유비와 공명을 싸잡아 무시하는 소리를 내뱉었다.
공명이 그 말을 듣고, 정색을 하며 대꾸한다.
"저의 주공께서 그런 마음이셨다면, 형양을 취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겠지요.
유표가 몇 번을 청했지만 종친이란 이유로 거절하시다 보니, 조조가 그 틈에 가로채 갔을 뿐입니다.
이제, 주공께서는 강하에 주둔해, 승천을 앞둔 용 처럼 숨죽이고 계실 뿐이니, 선생께서는 그런 염려를 거두십시오."
공명은 이 같이 말하면서 장소를 향해 예를 표해 보였다. 그러나 장소의 빈정거리는 말이 이어진다.
"선생께서, 관중과 악의에 비하셨는데, 관중은 제(齊) 나라 환공을 도와 제후들을 제패하여 천하를 구해 냈고, 악의는 연(燕)나라를 도와, 제 나라의 일흔 두개의 성을 함락 시켰으니, 이 두 사람은 나라를 풍성하게 만든 인재였으나, 선생은 어떻소 ?
허허허... 오두막에 앉아 풍월이나 읊으며, 신세만 한탄하는 일 외에는 하는 게 없질 않소 ?
유황숙이 선생을 만나기 전에는 성(城)이라도 얻어, 앞가림은 했지만 선생을 만난 후에는 군마(軍馬)들을 버리고 강하로 쫒기는 신세가 되었소.
태평성세로 천자께 보답도 못하고, 역적의 도발에 가진 영토도 지키지 못하고, 반 년이 채 되지도 못 하여 신야성과 번성을 잃고, 당양의 패전으로 강하로 급히 피신을 하였으니, 그저 이리저리 쫒겨만 다니면서 근거지 조차 잃게 된 것이 아니오 ?"
장소의 이같은 말이 끝나자 좌중의 대신들은 저마다 한바탕 조소를 금치 못한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좌정한 대신들이 모두 함께 웃어버리는 소리를 듣고, 장소가 공명에게 웃으며 말한다.
"제가 너무 솔직하게 말한 것을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십시오."
장소는 그러면서 공명에게 극진한 예를 표해 보였다. 그러자 공명은 가소로운 미소를 보이며,
"대봉(大鳳)의 뜻을 어찌 뱁새가 알리오 ? "
공명의 이 말 한 마디로 대청의 분위기는 갑자기 싸늘해졌다.
사실 이런 분위기는 타지인(他地人)인 공명에게는 충분히 부담이 될 것인 즉, 그러나 공명은 개의치 아니하고 계속하여 말을 하였다.
"뱁새는 숲속에 있는 줄로 알았는데, 이런 곳에 모여 있는 줄은 정말 몰랐소이다.
저희 주공께서 여남에서 패하고 유표에 의탁했을 때, 장수는 관우,장비,조운, 군사는 불과 일만 명에 불과하였소,
허나 오십만 대군의 조조가 쳐들어 오자, 박망에서는 화공(火攻)으로, 백하에서는 수공(水攻)으로, 조인과 이전, 하후돈의 십만 군사들을 무력화 시켰지요.
설사 그 옛날의 관중과 악의가 나섰다 하더라도 어림없는 일이었습니다.
또 당양에선 후방엔 적군, 앞엔 강이었고, 주공의 뒤를 따르던 이십만 백성들이 하루 십 리를 못 갔지만, 주공께선 백성만은 버릴 수 없다 하시면서 그들 모두를 데리고 강하로 피난하였으니, 이렇게 어진 군주를 선생께서는 보신 적이 있는 지 모르겠군요 ? ...
헌데, 말 만 앞세우는 소인배들은 눈과 귀를 막은 채 모른 체 하고 있고, 명예욕에 있어서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면서, 적과 맞서 싸우라 하면, 꽁무니를 빼고 있으니, 어찌 가소롭지 않겠습니까 ?"
공명의 말은 칼로 폐부(肺腑)를 찌르는 듯이 날카로웠다. 더구나 그의 말의 말미에는 지금의 강동의 대신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조조와의 주화론(主和論)에 대한 냉철한 비판이 절절히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
이에 당황한 장소가 <흠,흠 !...> 기침을 해대며 고개를 내젖고, 공명에게 예를 표하며 자기 자리로 물러나 버렸다.
공명이 비웃음을 가득 머금고, 고개를 기울이며 물러난 장소에게 목례를 해보이고, 다시 안쪽으로 몇 걸음 들어갔다. 그러자 또 한 사람의 대신이 일어서며 말한다.
"조조가 백만 대군과 천여 장수로 호시탐탐 강하를 노리고 있는데, 선생께서는 묘책이 있는지요 ?"
이렇게 말을 하고 나선 사람은 강동의 대신, 우번(虞飜 :字: 중상) 이었다. 공명이 즉각 대답한다.
"조조군은 원소의 패잔병들과 유표의 오합지졸들 뿐이라, 백만 대군을 자처한다 하여도 두려울 것이 없소이다."
"그 쪽은 당양에서 패하고, 하구까지 밀려, 강동에 도움을 청하러 왔는데, 헹 ! 두려울 게 없다니...정말 황당무계하오."
우번은 장소보다 더 노골적으로 공명에게 빈정거렸다. 그러자 공명은 우번을 똑바로 바라보며,
"우리 군사는 수 천에 불과한데, 어찌 백만 조조군과 맞서겠소 ? 지금은 여전히 조조와 대치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소.
허나, 강동은 물자가 풍부하고, 장강이라는 요새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글 좀 읽었다는 선비들이 군주에게 투항을 권하고 있는 실정이 아니오 ?
그것만 봐도, 우리 주공께선 세상의 그 누구 보다도 조조를 두려워 하지 않는 분이시오."
공명이 이같이 논리정연한 말을 쏟아내자, 우번은 더 이상 질문이나 반박을 못 하고, 고개를 흔들며 자기 자리로 물러가 버린다.
뒤이어 다른 대신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공명선생은 옛날의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를 본떠서 세치 혀로 우리를 설복하러 오신게 아니오 ?"
하고, 말을 하는데, 그는 고옹(字:원탄) 이라는 대신이었다. 공명은 그를 향해 웃으며 예를 표한다.
"하하하.. 그건 아니오. 귀하께서는 소진과 장의가 언변에 능한 줄만 아시고, 진정한 호걸이란 것은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소진은 육국의 재상이었고, 장의도 재상을 지내며 나라를 안정시킨 공이 있으나, 강자 앞에서는 절대로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지요.
허나, 혹자들은 조조가 백만 대군으로 온다 하여, 진위 여부를 따지지도 않고, 당장 투항을 하고자 하니, 그런 자 들이 어찌 가당치도 않게, 소진과 장의를 논 한단 말이오 ?"
공명은 이같이 말하고 다시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몇 걸음 가지도 않았는데 좌중에서 한 소리가 튀어 나왔다.
"공명이 보기엔 조조란 자는 어떤 자요 ?"
공명은 그 소리가 난 곳을 돌아 보지도 아니하고 발걸음을 멈춘채 대답한다.
"역적이오, 천하가 다 아는 데 뭘 물으시오."
"그렇지 않소, 한실은 사백 년을 이어와 운이 다했소.
이제 천하의 삼분의 이는 조조가 취했고 나머지 삼분의 일이 이제 조조에게 넘어 가는 형세이니, 유황숙이 천명을 어기고 하늘을 거스른다면 어찌 패하지 않겠소 ?"
"지금 그 말은 부모도, 군주도, 효심도, 충심도 무시하는 말이오 !
이 세상에 태어났다면 충의가 근본이오, 한나라의 신하로써 역적과의 대적은 당연한 것이오.
사백 년을 이어온 한실이 앞으로 사백 년은 왜 못 가겠소 ?
못 간다면 그것은 귀하처럼, 부모도, 군주도 없는 자가 대한 천하를 망쳐서 일 것이오 !"
공명의 말은 마치 웅변을 하듯이 장엄하고 역동적이었다.
공명이 다시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이제까지 아무런 말도 아니하고 공명과 대신들의 논쟁을 지켜만 보던 노숙이 뒤를 따랐다.
"하하하핫 !... 하하하핫 !..."
이 두 사람 앞으로 호방한 웃음을 웃으며 한 사람이 나타났다.
"공명은 과연 당대의 기재요 ! 지금 이런 식으로 몰아 부치는 건, 손님에 대한 도리가 아니오."
나타난 사람은 백전 노장 황개(黃蓋) 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좌중의 대신들을 둘러보았다.
공명이 예를 표하면서 물었다.
"노 장군께서는 존함이... ?"
그러자 공명의 뒤에 있던 노숙이,
"이 분은 강동의 상장군을 지내신 황개(黃蓋) 장군이시오."
하고, 말한다.
그러자 공명이 놀란 듯이,
"아 ! .. 황개 장군의 말씀이 오늘 제가 들은 말 중에 ,가장 듣기가 좋습니다."
하고, 말하며 손에 들고 있는 화로선으로 좌중을 한번 쭈욱 휘저어 보였다.
그러자 황개가 활짝 웃는 얼굴로,
"자, 어서 드시죠 !"
하고, 자신이 앞장서서 손권에게로 안내하는 것이었다.
"가시지요."
이렇게, 공명은 황개의 뒤를 따라 강동의 실권자 손권을 만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 삼국지(三國志)제175편 ※
손권의 고민
노숙은 안으로 들어가며 공명에게 나직하게 말한다.
"주공을 만나 뵙거든 조조의 군세에 대하여 아무 말씀 마십시오."
하고, 또 다시 당부한다.
"염려마십시오."
공명은 자신있게 대답하였다.
이윽고 손권의 앞에 이르니, 손권이 먼저 공명에게 다가와 예를 표하며,
"공명이 오신다기에 너무 기쁜 나머지 어젯 밤에는 잠을 설쳤소."
하고, 말하였다. 공명도 예를 표하며,
"저희 주공께서 손장군께서는 대를 이은 영웅이시고, 천하 기재이시니 이렇게 간접적으로라도 뵙게된 것은 매우 기쁜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고, 말하니, 손권이 크게 기뻐하며 공명이 앉기를 청한다.
공명과 함께 뒤따라 들어온 대신들이 모두 좌정하자, 손권이 입을 열어 말한다.
"노자경이 선생을 여러번 칭찬했는데, 오늘에서야 만나뵙게 되어 기쁘오. 제가 아직 나이가 어리니 많은 가르침을 내려 주시오."
그 말을 듣고, 공명이 예를 표하며,
"천만에요, 소생이 강동 땅을 밟은 후 부터, 매 순간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하고, 겸양사를 말하였다. 그러자 손권이 본격적인 질문을 한다.
"유황숙께서 신야와 당양에서 조조군과 격전을 펼쳤는데, 현재 조조군은 군사가 얼마이며, 전력은 어느 정도요 ?"
공명은 노숙의 제삼,제사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명공께서 친히 물어보시니 소생 숨김 없이 그대로 아뢰겠습니다."
하고, 대답하니, 이를 듣던 노숙이 당황한다.
공명은 이런 것을 무시하고 손권만을 향하여, "명공, 조조의 수군,보군, 마군을 모두 합하면 백만이 넘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손권은 예상을 뛰어넘는 조조의 세력에 깜짝 놀란다. 그러나 군주의 위엄을 잃지 않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반문한다.
"백만이라 !...혹시, 부풀린 건 아니오 ?"
"아닙니다.
상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중원대전 이전에 조조군은 청주군 이십이만이 있었고, 원소 제거 후, 오륙십만을 더 얻었으니, 부상병 십여만을 제한다 하더라도, 정병이 사,오십만은 되지요.
그후 반 년간 기주,병주,
유주에서 신병 삼십팔만을 모은데 다가, 형주가 투항하는 바람에 손하나 대지않고, 형양의 수륙 양군 삼십삼만
을 얻었으니, 모두 합치면 조조군은 백 사십만을 웃돌 겁니다.
제가 백만이라고 한 것은 강동의 관리들이 놀랄까 하여, 줄여 말한 것인데, 명공께서 물으시니 부득이 사실대로 말씀드린 것입니다. "
공명은 쉼없이,거침없이 달변으로 말하였다. 그 순간 노숙은 좌중에서 얕은 기침을 해대며, 공명의 말을 제제하려고 하였으나, 공명은 이를 무시하고, 손권만을 주시하였다.
"조조의 장수들은 어떻게 보시오 ?"
손권이 공명에게 물었다. 그러자 공명은 거침없이 대답한다.
"조조가 전서(戰書)에 쓴 것처럼 장수가 천 이라는 것은 거짓입니다.
싸움에 능한 장수는 대략 삼백 명 정도이며, 그중 지휘자급 상장군은 삼십 명 정도인데, 몇몇을 열거하면, 조인,조홍 형제, 하후 형제, 허저, 서황, 장요, 이전,악진, 장합 등, 모든 장수들이 당대의 명장들 입니다."
"조조가 형양을 취한 뒤, 또 다른 움직임이 있소 ?"
"조조는 군사를 강변에 배치하여 전함을 건조하고 동정호에서 수군 사십만을 훈련시키며 장강에 선전 포고문을 띄운 이 마당에, 명공께선 조조가 강동을 도모하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이 있다고 보십니까 ?"
"그럼, 전쟁과 화친 중에서 선생은 어떤 편을 택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하시오 ?"
손권의 이 말을 듣고, 공명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단상의 손권을 바라보며 가운데로 나섰다.
그리고 두 손을 올려 예를 표하며,
"소생이 말씀드려도 듣지 않으실 겁니다."
하고, 말하자, 좌중의 노숙은 물론이고 장소까지 모든 대신들이 아연 긴장하였다.
손권이 앉은 자세를 곧바로 세우며 말한다.
"선생의 고견을 듣고 싶소 !"
공명이 그 말을 듣고, 허리를 한 번 굽혀 보인 뒤, 꼿꼿이 서서 단상의 손권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십 년전, 동탁이 조정을 찬탈한 뒤, 군웅이 할거하여 천하가 어지러웠고, 손장군의 부친과 우리 주공도 반기를 들고, 거병을 했지요.
그후, 천하의 삼분의 이를 조조가 독점해 버렸고, 나머지 삼분의 일은 다른 영웅들이 실력을 행사하기에는 비좁은 상황이라, 일단, 저희 주공께서는 강하에서 때를 기다리시니, 명공께서 알아서 판단하십시오.
강동 군마를 이끌고 조조와 맞설 수 있으시면 전쟁을 택하시고, 그게 안 되면 별 수없이 무장을 해제하고 북측에 절을 해야 하겠지요."
공명은 이렇게 강동이 당할 치욕을 말한 뒤에 손권에게 허리를 굽혀보였다.
그러자 손권이 긴장하며 반문한다.
"절이라...? 그렇다면 화친이요 ? 투항이요 ? "
"하하하하..."
공명은 대답에 앞서 손권과 막료 대신들을 향해 소리내어 웃어보였다. 그리고 허탈한 소리를 내뱉었다.
"그게 그거 지요...화친이란 말은 듣기만 좋을 뿐입니다."
그러자, 손권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그러면 유비는 왜, 조조에게 투항을 안 했소 ?"
하고, 물었다. 이에 공명은 손권을 똑바로 응시하며 당당한 표정과 어투로 말하였다.
"그것은 명공과 다르기 때문이오 ! 유황숙은 한실의 후예이자 말세의 영웅인 지라,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 해도, 우리 주공께서는 절대 ! 투항하는 일은 없을 것이오 !
아니, 투항을 논할 대신과 장수들 조차 전혀 없는 형편입니다 !"
공명이 이렇게 말미에는 강동의 조정 형편과 견주어 대답하니, 좌중의 대신들 모두는 긴장했고, 이러한 대신들의 투항 요청으로 고민에 싸여있던 손권은 공명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에 노기가 충천하였다.
그러더니 손권은 아무런 말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실 쪽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고, 공명은 퇴장하는 그를 향해 허리를 굽혀보였다.
손권이 자리를 떠버리자, 조금전 대청에 들어설 때, 주화론(主和論)을 주장하던 강동의 대신들을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공명을 향해 비난의 소리를 한 마디씩 내던지고 밖으로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헹 !"
"나 원참 !"
"지가 뭔데 1"
"이런, 이런 !"
...
손권은 물론, 대신들 조차 모두 나가 버리자 대청에는 공명과 노숙 두 사람만이 남았다.
노숙이 조금 전에 공명의 언행이 황당 했다는 듯, 목소리를 높여, 따지듯이 말한다.
"공명 ! 지금 뭐 하자는 거요 ! 우리 주공이 도량이 크셨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필시 공명의 죄를 물었을 것이오 !"
노숙은 흥분하여 공명의 뒤를 왔다 갔다 하면서, 노한 말을 쏟아내면서, 말미에는 손가락질 까지 공명에게
해 보였다.
그러나 공명은 어디까지나 태연한 모습으로 눈을 지그시 감은 채로 뒷짐을 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노숙의 말이 끝나자, 잠시 뜸을 들인 뒤에 웃으며, 노숙에게 돌아섰다.
그리고,
"하하하하 !...대청에서 모두가 떠나고 보니. 공기도 맑고 좋군요."
하고, 딴 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노숙이 공명을 등지고 돌아서버렸다.
공명이 노숙의 뒤로 돌아가 입을 연다.
"선생, 손장군을 화나도록 무시한 사람은 내가 아니고 바로 조조요, 조조에게 대항할 계책이 있으나, 장군께서 묻질 않으니, 나는 가슴에 담아둘 수 밖에요."
공명은 이렇게 말을 한 뒤에 다시 노숙으로 부터 등을 돌리고 말았다.
그러자 공명의 말을 듣고 눈을 깜빡이며 생각하던 노숙은 <앗차 !> 싶어서 공명 쪽으로 얼른 돌아섰다.
그러나 공명은 이미 자기를 등지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 노숙이 급히 공명에게로 다가가 묻는다.
"선생, 잠깐 기다리시오,
내, 곧 오리다."
그 순간 공명이 돌아서며 노숙의 말을 들었다. 그러자 노숙은 공명을 한번 쳐다보고 종종 걸음으로 손권이 사라진 문으로 달려 나간다.
노숙은 대청에서 분을 삭이느라고 서성대는 손권의 앞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허리를 굽히며,
"주공..."
하고, 불렀다. 손권이 노숙을 쳐다보며 화가 가라앉지 않은 말을 내뱉었다.
"공명, 그 자가 감히 나를 모욕했소 ! 당장 떠나라 하시오 ! "
손권이 이렇게 말하자, 노숙이 찬찬한 어조로 입을 연다.
"주공, 신도 공명을 질책했습니다. 헌데, 공명 말로는 조조의 백만 대군을 개미 밟아 죽이 듯, 뭉개 버리는 것이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라 했습니다.
주공, 공명에게 조조를 칠 묘책이 있는 듯 하옵니다."
노숙은 이렇게 말하면서, 손권에게 바짝 다가갔다. 그러자 손권은 혼잣 말을 하듯이 말한다.
"공명이 일부러 나를 그렇게 모욕한 모양이군. 아까는 내게 항복을 권했으나, 실상은 그 반대였소."
"그렇습니다."
노숙이 자신의 주공인 손권의 반응을 보자, 환희의 빛을 띠며 대답하였다.
"어, 갑시다 ! 애길 들어 봅시다 !"
손권은 이렇게 말하고 노숙에 앞서 공명이 있는 곳으로 먼저 앞장서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손권은 공명, 노숙의 앞에 작은 술상을 차리도록 명하였다. 그리하여 각자의 잔에 술이 따라지고, 이윽고 공명이 당상에 앉은 손권을 향하여 예를 표해 보이고 입을 열었다.
"명공, 조조군은 대부분 북방 출신인 지라, 강하로 진입한 뒤로 풍토병을 앓는 자가 많아, 전력이 십분의 칠,팔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게다가 장거리 행군과 계속되는 전쟁으로 몸이 많이 지친 상태로써, 그로 인한 전력 손실이 막대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기존 병사들은 의기양양 하고, 새로 편입된 병사들은 불만이 가득합니다.
조조의 군사들이 자신들의 땅을 무참히 짓밟아 버렸으니까요. 이들이 어쩔 수 없이 조조에게 복종하고 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을 겁니다.
다시 말해서, 조조군의 절반은 자만하고, 절반은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 있으니, 이 또한 전력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뿐만 아니라 강동을 치려면 수전(水戰)을 해야 하는 데, 강동의 수군은 천하 제일이지요.
조조가 전함을 건조 중이나, 그것을 다룰 수군이 없다면 무용지물 입니다. 조조가 단 시일에 전함을 건조할 순 있지만, 수전에 능한 날쌔고 강한 수군을 육성한다는 것은 전함 건조보다 수천 배는 어려운 일입니다.
여기 강동의 수군은 경험이 많아서 노련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조조의 수군 전력을 더 낮게 평가하는 것이 옳을 것 입니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제 아무리 조조의 군사가 숫자로는 백만 대군이라 하여도, 실질적인 전력은 그 십분의 일 이라고 보여지니, 따지고 보면,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공명이 이렇게 조조의 실상을 거론하자, 비로서 손권의 얼굴에는 안도와 함께 미소가 번지기 시작하였다.
공명은 이런 손권의 얼굴을 한번 살펴보고, 이어서 자신의 뜻을 계속해 말하였다.
"조조군을 십만 명이라 생각 하시고, 강동군과 유비군을 연합해, 조조군을 공격한다면 단숨에 격퇴 시킬 수 있을 겁니다."
"하하하핫 ! 그 애길 들으니 속이 다 후련하군요."
손권은 이때야 소리를 내어 웃으며 좋아하였다.
그리고 노숙을 향하여,
"내일 부터 거병을 논의할 것이니, 모두를 소집하시오."
하고, 명하였다.
노숙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알겠습니다."
하고, 손권의 명을 복명하였다.
말을 마친 손권은 잊은게 있다는 듯,
"아 ! 공명 선생, 어서 한 잔 드시오 !"
하고, 손을 들어 공명에게 권하였다.
"예 !"
공명은 손권에게 술잔을 들어 보이고,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
이날 밤, 밤이 늦었는 데도 손권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대청에서 서성이며, 내일 아침이면 이곳에서 벌어질 대신과의 격렬할 논의 사항을 가다듬고 있었다.
아니, 그의 속 마음은 어쩌면 다른 곳에 있는 지도 모른다.
이렇게 대청을 서성이며 마음을 가다듬고 있을 때, 불현듯 장사 장소가 눈에 띠는 것이었다.
손권은 흠칫 놀라며,
"응, 사숙 ? "
하고, 장소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장소가 손권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손권이 묻는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
장소는 허리를 굽혀 절하면서 아뢴다.
"주공, 주공께서는 공명의 간계에 당하신 겁니다. 조조가 노리는 대상은 주공이 아니라, 바로, 유비입니다.
조조는 유비를 눈엣 가시로 여기기 때문에 제거하지 못해서 안달이 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서(戰書)에 다른 사람은
다 놔두고, 유비를 언급한 겁니다.
조조가 주공과 함께 사냥을 하겠다고 했는데, 그 사냥감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유비잖습니까 ?
유비는 지금 궁지에 몰려서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러니 난관을 헤쳐 나가기 위해, 우리 강동의 병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때문에 공명을 보낸 수를 쓴 것이지요."
손권이 그 말을 듣고, 대청을 서성이며 생각에 잠긴다. 그러자 장소는 그의 등뒤에 대고,
"주공께서 유비를 구해 주실 수가 있다면, 상관없지만, 사실상 불가능한 일 입니다.
장소가 이쯤 말했을 때, 손권의 노모가 시녀를 거느리고 조용히 대청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를 먼 발치에서 듣고 있었다. 장소의 말이 이어진다.
"그리 되면 우리 강동도 재난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주공, 부디 심사숙고 해 주십시요."
장소는 이렇게 말하고 허리를 숙여 절을 해 보인다. 그러자 잠자코 장소의 말을 듣던 손권이, 고개를 두 번 끄덕여 보였다.
장소는 그 모습을 보더니 뒤로 돌아서 물러난다.
장소가 나가 버리자 모태후가 손권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어,
"애야 "
하고, 손권을 불렀다. 손권이 모친을 돌아 보며,
"어머니," 하고, 대꾸하며, 가까이 다가오는 모친을 향하여, "밤이 늦었는데 아직 안 주무셨습니까 ?"
하고, 여쭈었다.
그러자 모친은,
"주공도 이렇게 깨어있질 않소. 이런 때 마음 편히 잠을 청한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
"허, 그렇긴 하지요."
모자간의 대화는 더할 나위 없이 친근하고 따듯하였다. 모친이 다시 입을 열었다.
"권이야, 너의 형이 임종 전에 했던 말을 기억하느냐 ? "
"어떤 애기요 ?"
"정사에 관한 것은 장소에게, 나라가 어려운 경우에 처하는 외치에 관한 것은 주유에게 물으라고 했지 않느냐 ?"
"그야, 당연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럼, 조조군과의 전쟁은 어느쪽에 해당하는 것이냐 ? "
"당연히 나라 밖의 일이죠."
"그럼, 어째서 주유를 부르지 않는 게야 ?"
"예, 어머니 그 점은 염려 마십시오. 아마 지금 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올 겁니다.
그가 당도해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할지도, 대충 짐작하고 있습니다. 허나, 소자가 염려하는 것은 전쟁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모친은 아들의 말을 듣고, 의아 하였다. 그리하여 다시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무엇이냐 ?"
그러자 잠시 주저하던 아들이 모친에게 말한다.
"분열입니다."
"분열 ?"
"대신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내어, 설전을 벌인다면, 강동은 분열되고 말 겁니다.
의견이 분분한 문무대신들을
한마음 한 뜻으로 모으지 못한다면, 저는 강동을 이끌 자격이 없습니다."
모친은 그 말을 듣고서야, 아들이 무엇때문에 밤 잠을 자지 못 하고 고민을 하고 있는 지 알 수 있었다.
그리하여 연실 고개를 끄덕이며 존경하고 사랑스런 눈으로 아들을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
"그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되는구나.
아마 네 아버지와 형도 그리 생각할 것이야."
모친은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였다.
그리고 대견한 아들을 바라보며,
"아, 이제 그만 자러 가야겠다.
너도 이제 잠자리에 들거라."
하고, 말하고 돌아서 나간다.
"네, 어머니 안녕히 주무세요."
손권은 내실로 향하는 어머니에게 인사말을 하였다.
🔊다음 제176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