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우정과 만남
안골수필창작반: 윤 재 석
경우정은 진안군 백운면 오정리 마을 앞 자동차길 옆에 자리하고 있는 정자다. 임실, 내동리, 원촌 백운면 사무소로 가는 삼거리 길이다. 나지막한 산봉우리 옆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어서 마음만 있으면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곳이다. 이 정자는 경술생(1910) 동갑들이 지은 정자로 마음을 한데 모아 지은 정자이기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 지금은 자동차길 확장으로 길옆에 놓이게 되었다. 정자 앞으로는 시냇물이 흐르고 뒤로는 내동산이 자리하고 있어 찾아가기 쉬운 경치 좋은 곳이다.
경우정 앞으로는 데미샘에서 시작한 섬진강 상류의 시냇물이 흐르고 있다. 신암리 팔공산 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은 쉬지 않고 흘러 경우정까지 왔다. 오는 동안 굽이굽이 물길 따라 구남각을 거치고 학남정과 개안정을 지나오면서 제법 넓은 시내가 되어 경우정 앞을 지나고 있다. 경우정 바로 옆에는 시냇물을 건너기 위한 시멘트 다리가 놓여 있다. 경우정을 지나는 섬진강 물은 주야 쉬지 않고 흐르면서 절경을 이루기도하며 500리 길을 달려 남해로 간다.
경우정의 마루에 오르니 계원의 방명록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계원들의 면면을 보니 내가 잘 아는 분이 많았다. 우리 집을 방문하며 선친과 호형호제하며 지내던 금운 최진호(錦雲 崔鎭浩) 염재 정귀영(念齋 鄭貴泳) 덕은 양재형(德隱 梁在炯), 이분들의 이름을 보고 감회에 젖기도 하면서 반가웠다. 이분들의 생전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두루마기에 모자를 단정히 쓰시고 사립문 앞에서 아버지의 호를 부르며 찾아주시던 모습을 이제 볼 수가 없어서 안타깝다. 이제는 볼 수 없는 분들이다. 경술생 살아계시면 110세가 되니 별세 하신지가 30~40년이 되었으니 참으로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그분들의 기억만은 아직도 또렷하다.
현판이 2개로 되어있다. 하나는 거암 김봉관이 썼다. 김봉관은 진안 경찰서장을 역임하면서 서예에 정진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진안지역의 루정(樓亭)이나 제각 등의 현판을 많이 써서 진안에서는 잘 알려진 서예가이다. 글씨도 자신의 개성을 살린 행서로 독특함을 지니고 있어서 누구나 거암의 글씨임을 알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제자(題字)의 낙관이 희미해서 확인이 잘 안되나 해서로 정갈히 써서 해서의 범모를 잘 지니고 있으며 ,해사하고 깔끔함을 보여주고 있다.
상량과 들보의 생김이 특이하다. 들보는 자연으로 굽은 목재를 구하여 2개가 고주를 마주 보고 놓여있었다. 그 위로 우물정자의 덧보가 있고 그 위에 상량이 있다. 상량문은 단기 사천 삼백 년 정미 오월 삼일 을사오시 입주 동월 사일 병인 오시 상량이라 쓰여 있다. 그 아래의 문구는 희미해서 판독을 할 수 없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건축양식은 전통적인 루정 양식을 하고 있다.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처음에는 기와로 덮었으나 나중에 철판 지붕으로 바뀐 듯하다. 기단은 1층이며 주초는 원형으로 깎았으며 기둥은 원형이다. 마루로 오를 때는 돌단을 딛고 오르게 되어있다. 마루 옆 기둥과 기둥의 연결은 사각 나무로 하여 견고함과 통풍이 잘되도록 하는 지혜가 엿보였다. 기둥 단청은 자주색이고 연자는 파란색으로 단아함으로 했으며 연자 끝은 흰색으로 맑아 보이도록 했다.
정자 안에는 계원명록과 경우정기(庚友亭記)가 있다. 대한 광복 후 무신 단오절 동래인 정귀영이라 새겨져 있다. 계원은 모두 25명이다. 봄바람 훈훈히 불어오면 청명한 날을 받아 경우정에서 서로 만나 안부를 물으며 화전놀이로 술잔을 나누며 인생의 즐거움을 나누었을 그 모습이 정자 안에 가득하니 메워져 있은 느낌이다. 술잔과 주고받는 정담에 웃음소리를 바람에 실려 보내며 즐거워했을 그날의 회포를 이제는 유택에서 편안한 영면에 깊이 잠들어 있을 것이니 인생의 유한함이 마냥 서럽기만 하다는 생각이다.
경우정에서 아시는 분들의 면면이 되살아난다. 그분들에 대한 회상의 시간 되고 있다. 계원 25인 가운데 11인이 아는 분들이다. 아버지와 잘 아는 관계로 우리 집을 방문한 분들이시다. 수당 정종엽 선생과 후산 이도복 선생의 추모계인 융친계와 문우계를 같이하는 분들이라서 감회가 남다르다. 오늘 이 자리에서 만나 인사를 드리는 마음이다.
세월은 성장을 도우면서도 노쇠를 함께하니 그 가운데 사람도 성장과 노쇠의 연륜을 같이 한다. 초목은 사철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봄이면 지난해의 모습으로 다시 오는데 사람은 세월 따라 살다가 삶을 마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니 이찌 보면 봄이면 다시 새싹을 피우는 초목보다 허무하다는 생각이다. 사는 동안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인지 길은 많아도 선택하기가 쉽지 않으니 어려운 길이 인생인가 싶다.
경우정의 뒤에서 내동산이 멀리 굽어보고 있다. 9월의 구름과 파란 하늘이 번갈아 펼쳐지면서 가을바람이 옷자락을 스친다. 가을의 산경이 짙어 보인다. 10월이 오면 산야에는 단풍이 물들어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질 것이며, 낙엽지면 겨울이 오고 어느덧 한 해가 가는 길목에 서게 된다. 어떻게 살면서 무엇을 남겼는가. 삶의 뒤를 돌아보는 시간으로 옛 어른들의 모습에서 교훈으로 다가온다.
경우정을 떠나려니 시선이 창공을 헤매고 먼 산을 더듬는다. 고향에 들러서 평소 아시던 분들이 화전 놀이하며 담소로 즐기던 자리 경우정을 생각하니 가슴에, 가신 분들에 대해 감회가 새로워진다. 눈은 경우정과 마주한 선각산과 덕태산을 응시하고 있다.
경우정에서 완월영풍하시던 분들의 평안을 빌면서 아쉬움을 뒤로한 채 자리를 떠나야 할 시간이 오고 있다. 고향은 다시 찾아오겠지만, 오늘 경우정의 감상은 잊히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