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란 사람에게 황겁할 정도로
도저하지 않는 점이 대체 무었이겠습니까! [12]
부모님이 그 옆으로 걸어가더니 나란히 서서 가파른 언덕 너머를 한참 바라보았다. 해가 뉘엇뉘엇 넘어가면서 핑크 빛으로 물들었다. 아빠는 부부 사이가 별로 친밀하지 않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나는 아빠의 비밀을 알았지만 아빠가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늘 믿어왔고, 인생이란 게 그냥 그렇게 생겨먹을 때도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빠는 소년처럼 들뜬 얼굴로 집안에 들어왔다. "무슨 이야기 했어요?" 내가 물었다. "그냥 네 엄마가 내 거시기를 움켜쥐더구나." 아빠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아직도 멀쩡하네. 그러더라."
결혼식 날 아침, 나는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랐다. 정오에는 내 친구들이 와서 2층에서 내가 준비하는 것을 도왔다. 테일러는 내 머리를 땋아 왕관 모양으로 올렸고, 칼리는 얼굴 화장을 해주었다. 내 들러리가 되어준 가장 찬한 친구 코리와 니콜은 드레스 입는 것을 도와주었다. "네가 진짜로 결혼을 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코리가 눈가가 촉촉해져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의 테니스공에 지어줄 이름을 같이 궁리하던 열두 살 소녀 때가 바로 엊그제 같다고 말하는 듯 했다.
아래층에서는 계씨 아주머니와 LA 김 아주머니가 안방 화장실에서 엄마가 옷 입는 걸 도왔다. 엄마와 내가 떨어져 있다는 게 어쩐지 옳지 않게 느껴졌고, 엄마의 지휘 없이 단장을 하려니 내심 불안했다. 우리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이래층으로 내려갔다. 엄마가 어떻게 생각할지 살짝 걱정이됐다. 엄마는 일주일 전에 나미 이모가 보내준 화사한 한복을 차려입고 침대 발치의 고리버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저고리는 다홍색 비단 저고리였는데 감색과 금색이 나란히 들어간 것에 밝은 파란색 고름이 달려 있었다.
계시 아주머니가 고름을 예쁘게 매주었다. 소매 끝동에는 흰 바탕에 붉은 꽃이 수놓아져 있었다. 긴치마는 노란 벌꿀색이었다. 엄마는 앞머리를 내리고 뒷머리는 밑으로 단정하게 묶은 짙은 갈색 가발을 썼다. 엄마는 전혀 아파 보이지 않았고 잠시나마 엄마를 건강한 사람인 양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아무것도 잘못된 게 없는. 그저 멋진 결혼식을 올리기에 딱 어울리는 아름다운 날인 것처럼. "어때?" 내가 엄마 앞에 서서 초조하게 물었다. 엄마는 나를 보며 한동안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아름다워"
엄마가 마침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러곤 금세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엄마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팔을 엄마 치마 위에 올렸다. "내 머리는?" 엄마가 머리 얘기를 하지 않자 나는 약간 걱정이 되어 물었다.
"너무 예뻐."
"화장은 어때? 너무 두껍게 되지 않았어? 눈썹 너무 진한 거 아니냐? 아니, 딱 좋아, 그렇게 해야 사진이 예쁘게 나와." 세상에 우리 엄마만큼 내 기분을 있는 대로 잡쳐놓을 수 있는 신랄한 사람도 없지만, 또 우리 엄마만큼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게 만드는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피터조차도 그렇게는 못했다, 나는 언제나 엄마가 하는 말을 마음속 깊이 믿었다.내 머리가 조금이라도 헝클어졌거나 화장이 진하게 됐을 때 내게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줄 사람은 엄마밖에 없었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엄마가 고쳐주기를 계속 기다렸지만 엄마는 아무 지적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약간 멍한 표정으로 웃고만 있었다. 어쩌면 약에 취해 제대로 분간을 못하게 된 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사소한 비판이 더는 주요하지 않다고 내심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은 100명 정도였다. 한 테이블에는 아빠 사무실 동료들이 앉았고 또 다른 테이블에는 엄마의 한국인 친구들이 앉았다. 필라델피아에서 온 우리 둘의 친구들끼리 앉은 테이블도 있었다. 제단 가장 가까이에는 부모님이 계씨 아주머니와 LA 김 아주머니 그리고 플로리다에서 날아온 게일 고모와 고모부 부부와 함께 앉았다. 반대쪽에는 내 친구 코리와 니콜, 그들의 남자 친구들, 피터의 남동생과 그의 가장 친한 숀이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