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Ⅱ-38]33년째 '송년 디너쇼'를 하는 연예인
가수 겸 탤런트, 유명 사회자 김성환 님과 전주 모 회관에서 여럿이 함께한 점심은 시종 유쾌했다. 유쾌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분(나는 ‘거시기성님’이라고 부르지만)이 재담가(才談家) 역할을 톡톡히 하기 때문이다. 별 것도 아닌 이야기를 그분이 하면 왜 그렇게 구수하고 재밌어 웃음을 유발하는 것일까. <2025년 제11회 전북특별자치도 인물대상(문화예술공헌부문)>에 ‘전북을 빛낸 인물’로 선정돼 상을 받기 위해 내려온 것이다. 일단 회관 앞에 <친근한 이웃아저씨/김성환님 환영합니다>라고 쓴 소박한 안내문이 인상적이다. 정말 친근한 이웃아저씨같다. 예전에 우리 동네 세탁소 장씨처럼 말이다. 식사 후 기념사인을 해주는데 정성을 다한다. 수십 년째 찐팬이었다는 주인의 따님이 대신 인증샷을 찍으며 “엄마에게 보여주겠다. 우리 엄마는 복도 많다. 이런 행운이 어디 쉬운가”라며 기뻐했다.
재치있는 유머와 곁들여 은근슬쩍 자기 자랑도 빼놓지 않는다. 그중의 하나, 오는 19일 <송년 디너쇼>를 서울 앰배서더호텔에서 하는데, 알림이 나가자마자 하루이틀새 전좌석 550석 매진으로, 자신이 초대하고 싶은 사람을 한 사람도 초대할 수가 없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33년째 <송년 디너쇼>를 하는 사람은 없다는 말에 일동은 “정말이냐?”며 놀랐다. 50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76세. 그렇다면 43살 때부터 했다는 말인데, 곡절많은 세상에 이렇게 한 해도 거르지 않다니? 입장료가 1장에 30만원. 자료를 찾으니 2013년엔 13만원이었다. 대단한 기록이다. 가황, 가왕, 가객 등 누구누구도 넘지 못한 기록. 성님이 그 이유를 드는데 당신은 ‘노래 + 이야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란다. 솔직히 ‘이야기(이빨? 구라?)’가 가능한 사람이 누가 있느냐는 반문도 던졌다. 그것도 그럴 것이, 사회자로서만 타의 추종을 불허할 내공의 소유자. ‘일요일의 남자’ 국민MC 송해 선생이 일찌기 <전국노래자랑> 차기 사회자로 추천했다고 한다.
이 정도 되면 ‘대한민국 공인(公人)’이다. 개인적 인연이야, 몇 달 전 쓴 적이 있지만, 탤런트협회장을 하실 때 2014년 우연히 두어 번 어울리며 즉석에서 “성님” “아우님”이 됐었다. 그런데, 2016년 <인간극장>에 출연한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황금벌판을 누비며 당신의 노래를 부르던 장면을 보게 됐다는 거다. 전화번호를 알아내 본인임을 밝히며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는데, 그분이 아우님의 어르신인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는 것. 그로부터 서로는 서로의 팬이 됐다. <임실 사선문화제> 사회를 10년도 넘게 봤는데, 2017년에는 아버지와 현장에서 해후, 팬끼리 보듬고 인증샷을 찍기도 했다던가. 그 연세에도 주름 하나 없는 팽팽한 피부와 건강비결은 수십 년째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는 '반신욕'과 식초의 생활화. 식초를 아예 차 속에 갖고 다니며 수시로 들기도 하고, 술자리에서는 언제나 '식초 소주'. 소주에 식초를 넣어서 드셔보셔라. 괜찮고, 80세에도 성님같이 될 게 틀림없다.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통문 Ⅱ-4]<약장수> 노래와 ‘거시기가수’ 김성환 - Daum 카페
서너 달 전 서울에서 저녁을 함께 하는데, 아내와 한 달이 넘게 유럽여행(이탈리아 25박)을 간다는 말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성님은 라디오생방송을 35년째 진행하면서 그 흔한 제주도 여행 한번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여 기상이 악화된다든가 하는 이유로 생방송 펑크(빵꾸)날 것이 우려돼 그랬다는데, 성님의 치열한 ‘퍼블릭 마인드’(Public mind. 공인정신)와 성실함에 누군들 혀를 내두르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그런데도 ‘잘 다녀 오라’며 손에 촌지(寸志)를 쥐어주는데, ‘큰 형님’다운 그 따뜻함과 배려에 울컥했다. 내가 뭐라고? 그런데도 마땅한 선물 하나를 전해 드리지 못한 나는 못난 ‘아우님’(성님이 부르는 호칭)이다. 겨우 갓 찧은 햅쌀 1푸대(20kg)와 대봉시 한 상자로 대신했지만, 성님을 생각하면 늘 고맙다. 같은 새벽형 인간이어서, 내가 전화를 드려도 부족한데 간간히 새벽에 안부까지 물어오다니?
그런 성님이 어제 점심자리에서 대외비를 알려줘 나를 또 기쁘게 했다. 내년부터는 내 고향 임실군민이 될 것같다는 것. 세상에, 이런 빅뉴스가? 어떤 연고로 어느 곳에 한옥집을 짓는데, 방송만 없으면 임실에서 지낼 것이라는 희소식이다. 군산 고향은 새만금이 개발되면서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이미 집 지을 터도 구했다고 한다. 쵝오! That’s good. 내년에 100세가 되시는 아버지의 ‘백세잔치’에 정중하게 초대를 해도 될 터. '폭포명창'이라 불리는 소리꾼 배일동님과 함께 한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란 이런 경우를 말할 듯.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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