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고스포드 파크>
겁먹지 마라. 의심하고 저항하라. 우리는 너무 쉽게 관습에 길들여지고 우상을 맹신한다. 물론 그럴 수 있다. 하나 그 순간 우리는 관객이 아닌 소비자로 전락한다. 영화산업의 성지 할리우드에서 반골감독으로 매도당하면서도 그 중심에 저항정신을 심는 데 게으르지 않았던 로버트 알트먼은 영면의 순간까지 자신의 신념을 관철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던 그의 목소리는 세상을 변화시켰고, 현대 미국의 초상이 되었으며, 수많은 감독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공장에서 찍어내듯 쏟아지는 거대한 영화산업 속에서도 쿠엔틴 타란티노, 존 카메론 미첼, 폴 토머스 앤더슨처럼 ‘할리우드영화’가 아닌 ‘미국영화’를 찍는 감독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죽기 직전까지 쉬지 않고 뿌린 알트먼의 씨앗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 로버트 알트먼이 우리 곁을 떠난 지도 벌써 5년이 지났다.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2006년 11월20일 80살로 타계한 로버트 알트먼의 5주기를 맞아 11월22일부터 12월4일까지 특별전을 갖는다. 데뷔작 <범죄자>(1957)부터 유작 <프레리 홈 컴패니언>(2006)에 이르기까지 한치의 흔들림없이 자신의 세계를 걸어왔던 그는 스스로 미국영화의 빛나는 유산이 되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그의 방대한 필모그래피 중 가장 빛나는 여섯개의 별을 엄선하여 소개한다. 비록 여섯편이지만 알트먼의 정수가 녹아 있는 작품이자 미국사회의 허상을 통렬히 비판하는 대표작으로 그를 기억하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할리우드의 이단아에서 출발하여 세계적인 거장이 되어 잠든 그의 작품들을 되돌아보며 지금 현재 우리 시대 결핍된 저항의 가치와 영화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내쉬빌>(1975)이 세상에 첫선을 보였을 때 사람들은 하나같이 우려 섞인 시선을 보냈다. 한 화면에 여러 명이 등장하여 한꺼번에 대사를 치는 연출은 명료한 대사 전달을 중시했던 할리우드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파격이었다. 내슈빌에서 벌어지는 컨트리음악제가 대통령 후보를 알리기 위한 선전 도구로 이용되면서 어떻게 변질되어가는지를 고발하는 이 영화는 가장 미국적인 지점에서 비판 지점을 찾아내는 그의 첫걸음이었다. 동시에 인물 파노라마로 불리는 알트먼 특유의 풀숏의 미학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이후 재즈음악의 한가운데에서 경제공황기의 미국이 겪은 정신적 공황을 그려낸 <캔자스시티>(1996), 미네소타를 배경으로 컨트리 뮤직 라디오 쇼의 폐지 이야기를 담아낸 <프레리 홈 캠패니언>까지 컨트리음악, 재즈, 방송, 영화산업과 같이 미국을 대표하는 곳에서 통렬하고 날선 비판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풀숏에 인물을 한꺼번에 등장시킨 파격적인 형식은 이후로 좀더 다듬어져 <숏컷>(1993)에 이르러서는 아홉쌍에 이르는 집단 주인공을 등장시켜 각자의 이야기를 균등하게 다루는 서술의 변화를 선도한다. 미국 중산층의 불안과 허위를 담아낸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을 묶어낸 이 작품은 이후 폴 토머스 앤더슨의 <매그놀리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잊혀지지 않을 걸작으로 자리잡았다. 웅장한 저택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욕망의 교차를 담아낸 <고스포드 파크>(2001) 역시 개인이 아닌 관계의 숏을 우아하게 포착한다. 대충 준비된 각본으로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연기를 해야 하는 배우들의 상황은 거대한 혼돈이나 다름없지만 그것이야말로 종래의 할리우드 문법에 대한 저항인 동시에 자신만의 영화세계를 관철시켜온 예술가의 존재증명이다.
로버트 알트먼이 유럽 각국의 영화계로부터 환대받을 때 할리우드는 끝끝내 그를 경원시했다. 하지만 보수적인 할리우드가 그를 외면했을 때도 그는 언제나 작품을 통해 그들에게 복수를 감행했다. 할리우드의 속물적인 제작 관행을 꼬집은 <플레이어>(1992)의 오프닝에서 무려 8분의 롱테이크를 선보이며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천박함에 직격탄을 날린 그는 역설적이게도 할리우드에서 가장 존경받는 감독 중 한 사람이 되었다. 타협하지 않는 자신의 작업을 통해 미국영화의 정신을 지켜낸 거장의 발자취를 다시금 되새겨봐야 할 이유다. 글 송경원 2011-11-16
자료출처: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