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의 제왕
원제 : Emperor of the North Pole
1973년 미국영화
감독 : 로버트 알드리치
출연 : 리 마빈, 어네스트 보그나인, 키스 캐러딘
찰스 타이너, 말콤 애터베리, 사이먼 오클랜드
맷 클락
1930년대 미국의 경제 대공황의 시대를 다룬 영화들은 그 이후 시대에서 종종 만들어졌고, 하나의 영화소재로 활용된 '시대적 현상' 이었습니다. 월 스트리트 증권가의 몰락, 파산한 사람들, 정처없는 부랑자들과 갈곳없는 길 잃은 젊은이들, 로버트 알드리치 감독의 '북극의 제왕'도 그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1930년대 경제 대공황 시대, 부랑자들 사이에서 '북극의 제왕' 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인물 넘버원(리 마빈), 당시에는 몰래 열차를 훔쳐타고 이동하는 부랑자들이 많았고, 그 부랑자들을 잡기 위한 승무원들이 존재했다는데, 이른바 '도비노리'의 달인 넘버원과 열차에 불법 탑승하는 사람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무자비한 승무원 새크(어네스트 보그나인) 와의 숙명적인 대결을 다룬 영화입니다.
굉장히 이색적 소재의 작품이지요. 달리는 열차에 올라타는 것으로는 우리나라 주먹계의 전설 시라소니가 유명한데 그 시라소니 때문에 '도비노리'라는 말도 익숙해지고, 그런데 이런 소재가 헐리웃 70년대 영화에서 등장했던 것입니다.
리 마빈, 어네스트 보그나인 이라는 두 남성적 체취가 강한 인물들이 주인공이니 영화의 거칠고 마초적인 분위기는 이미 예상을 할 수 있습니다. (비중 있는 여배우 자체가 한 명도 등장하지 않지요) 리 마빈은 몰래 열차에 올라타려는 자, 어네스트 보그나인은 그걸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자, 이 둘의 공격과 수비, 창과 방패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열차 올라타기 게임 이라는 매우 단순하고 간단한 이야기를 무려 두 시간 동안 무리없이 이끌고 간 감독의 연출이나 시나리오의 솜씨는 가히 인정할만 합니다. 다만 시대적 이해가 가미되어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완전히 빠져들기에는 한계가 있는 작품이긴 합니다.
거친 마초 이미지의 리 마빈이
부랑자들에게 북극의 제왕으로 불리우는
열차 무임승차의 넘버원을 연기한다.
"내가 운행하는 열차에는 어떤 녀석도 무임승차가 불가능하다"
폭력적이고 거친 승무원을 연기한 어네스트 보그나인
리 마빈의 더티 카리스마
영화는 리 마빈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고 어네스트 보그나인을 악역 공동주연처럼 설정하고 있는데 이 부분에서 다소 의아할 수 있습니다. 엄연히 불법을 저지르는 부랑자와 그걸 막고 처단하는 '업무수행'을 하는 자의 관계인데 오히려 부랑자의 편에서 만든 영화이기 때문이니까요. 아마도 그런 설정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 인하여 양상된 많은 부랑자들의 실태, 그리고 어네스트 보그나인이 연기한 새크가 열차의 무임탑승자들에게 가하는 무자비한 폭력(심지어 살인)이 과연 불법탑승자를 처단하는 온당한 공무집행행위라고 볼 수 있는가 라는 관점에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새크가 관리하는 19호 열차, 일명 '북극철도'를 통과하는 물자운송 수송열차인데 새크는 절대 자신의 열차에 불법 탑승자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는 해머와 쇠사슬 등 온갖 무기를 가지고 있다가 열차에 몰래 타는 사람을 발견하면 무자비하게 처단을 합니다. 반면 부랑자들 사이에서 전설의 영웅처럼 추앙되는 넘버원은 열차 몰래 타기의 달인입니다. 지붕에도 타고, 밑에서 타고, 빈칸에도 타고, 다양한 방법과 다양한 타이밍을 통해서 그는 자기의 전용차량처럼 열차를 자유롭게 타고 다닙니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새크가 모는 열차의 빈 칸에 올라탄 넘버원과 그 칸의 지붕출구를 잠궈 버린 새크, 그런 상황에서 불을 질러서 나무벽을 부수고 탈출하는 넘버원, 이렇게 1라운드는 넘버원의 판정승으로 끝나는 상황이 보여지고 이후 두 달인간의 대결구도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넘버원은 부랑자들의 영웅이지만 역무원들 사이에서도 과연 새크와 넘버원의 대결에서 누가 승리할 것인가에 대한 팽팽한 찬반의견과 내기까지 벌어질 정도로 두 사람은 라이벌 구도입니다.
넘버원은 우연히 만난 애송이 시가렛을
본의 아니게 후계자처럼 대하게 되는데....
열차는 지붕에 탈 수도 있고
빈칸에 탈 수도 있고
이렇게 아래쪽의 빈 공간에 탈 수도 있다.
영화에서 두 라이벌의 이야기속에 슬쩍 끼어드는 비중있는 인물로는 시가렛(키스 캐러딘)이라고 불리우는 20대 청년입니다. 젊고 말끔한 외모와는 달리 그는 스스로 부랑자임을 자처하고 넘버원 처럼 열차 몰래 탑승하기의 달인이 되고자 합니다. 즉 유명 부랑자인 넘버원이 시가렛이라는 청년을 만나고 그를 마치 후계차처럼 조련하는 내용도 비중있게 등장합니다. 넘버원은 시가렛을 애송이라고 거들떠 보지도 않지만 시가렛은 당돌하고 오만할 정도로 도전적이고 의의로 끈질긴 멘탈을 가진 청년이었습니다 이런 시가렛에게 안타까운 연민과 도와주고 싶은 측은지심을 넘버원은 함께 느낍니다. 부랑자의 길이 얼마나 한심하고 고되고 인간 쓰레기 같은 삶인지 너무도 잘 아는 넘버원, 마치 부랑자들에게 인정받는 몰래 열차타기의 달인이 되는 삶을 영웅이라도 되는 양 추앙하는 시가렛, 이 넘버원과 시가렛의 관계설정도 영화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영화 후반부에 펼쳐지는 넘버원과 새크의 생사를 건 사투가 가장 클라이막스이며 다부진 돌쇠 같은 느낌의 어네스트 보그나인과 길쭉한 마초남의 이미지가 풀풀 풍기는 리 마빈, 두 강한 이미지의 남자들이 벌이는 달리는 열차 안에서의 육박전이 꽤 볼만합니다.
시드니 폴락 감독의 '그들은 말을 쏘았다' 같은 영화가 대표적으로 1930년대 경제 대공황 시절에 벌어진 어이없는 현상을 노골적으로 다룬 작품이었는데 이 '북극의 제왕' 역시 그 시대의 특수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소재로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속에서 보여지는 넘버원의 열차 올라타기 장면, 제법 자세하게 보여지는데 한마디로 '사서고생' '생고생'처럼 느껴집니다. 저 짓을 왜 할까 싶은. 즉 이 영화에서 넘버원의 삶을 멋지거나 과장스럽게 다루지 않고 비록 그가 부랑자들 사이에서 영웅같은 존재지만, 그의 삶은 절대 동경스럽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후계자가 되려는 시가렛의 청춘이 더욱 한심하고 방황스럽게 보이기도 합니다.
왜 이런 사서 고생을 하는지....
어네스트 보그나인과 리 마빈의
최후의 사투가 볼만하다.
우리나라에는 개봉되지 않은 작품으로 제목이 '북극의 제왕'인데 북극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내용입니다. 제목의 의미는 넘버원이 북부 철도지역에서 열차 올라타기의 제왕이라는 뭐 그런 상징직인 뜻일 뿐입니다. 1930년대 미국 철도지역이 배경입니다.
'아파치' '공격' '베라크루즈' '특공대작전' 등 남성적이고 거친 영화들 잘 만드는 로버트 알드리치 감독이 연출했는데 구성이나 영화를 끌어가는 힘은 굉장히 매끄럽습니다. 다만 영화의 소재에서 경제 대공황 시대의 상황에 얼마나 깊이 이입이 되는냐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흥미로움은 많은 자이가 있을만한 작품입니다.
ps1 : 달리는 열차 올라타기는 전설이 '시라소니'가 더 원조인 셈이네요.
ps2 : 증기기관차는 19세기에도 있었지만 1930년대의 열차도 크게 속도가 빠르진 않았나 봅니다. 영화속에서 20마일, 30마일 운운하는 것을 보면
ps3 : 미국 영화들을 보면 부랑자의 처리 문제와 사회에 대한 악영향이 좀 높은 것 같습니다.
[출처] 북극의 제왕(Emperor of the North Pole 73년) 거친 남자들의 숙명의 대결|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