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학교에 와 있는데 학교 밥은 비교적 먹을만하고 싸서 좋다.
학교에 오면 30분 안팍에 샌님이 되어 버린다.
나도 모르게 수줍음을 많이 타는, 관념적으로는 터프한 청년이 되어버린다.
새로 방을 얻어서 나온 고시텔에는 나이트 기도, 삐끼들, 무도장 아줌마 천지라서 골치가 아프다.
밤에 자는데, 새벽4시쯤엔가 누군가 내 방을 열려고 손잡이를 돌렸다 놨다 하는 것이다.
이불 속에서 나는 겁먹은 토끼모냥 웅크리고 있었다.
검은 하이에나들로 가득차 있는 세상 같다.
밤이면 초록이나 시뻘건 네온으로 주변이 꽉 찬다.
바쁘게 여관 입구로 흘러들어가는 손잡은 커플도 종종 보인다.
종말이 가까운 세상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햇볕을 많이 쬐면서 오렌지 한 병을 1시간에 걸쳐서 천천히 마시고 있어야 한다.
기회주의나 비열한 인간성을 싫어하는 것은 내가 예측하고 관리할 수 없기 때문인 거 같다.
매력적인 인물이나 물건들을 가까이 두고 사귀어보고 싶다.
예전에 비트겐슈타인의 전기를 읽다가 보았다. 그 외로운 독신남은
자기가 있던 아카데미의 세계를 '산소가 적어서 숨쉬기가 곤란한 곳'으로 비유한 적이 있다.
신선노름에 도끼자루 썩는지 모른다는 말이 그 말이다.
세상은 만만하지 않으니 정신차리라는 말을 정말 듣기 싫었고
그런 소리를 입에 달고 있는 물건들과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다.
예전에 있던 그녀는 소리 기척 없이 내 곁에서 사라졌다.
아직도 대학에서 두학기나 남은 나의 친구는 어제 새벽 늦게까지 <유혹의 기술>인가
하는 책을 읽고 있었다. 대부분 학습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매력적인 죽은 보석들에 대한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28,000원씩이나 하지만 구입할만한 가치가 있는 거 같다.
지옥으로 기어들어갈 필요는 없다.
햇볕도 좋지만 정신 집중을 하기에는 혼자깨어있는 새벽녁이 좋다.
자는데 옆방에서 판소리를 틀어대서 혼났다. 신음소리도 들렸다.
첫댓글 판소리와 신음소리라.. 묘하군요.
도살업하는 기독교인 복음성가 틀어놓고 작업하는것과 비슷한 매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