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 지역예선
아시안컵 8강에서 이란에게 2-6로 대패하면서 한국은 팬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위기탈출을 위해 박종환 감독은 해임되고, 후임인 차범근 감독이 전격 부임하게 된다. 차범근 감독이 부임하면서부터 한국은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에서 카자흐스탄과 우즈벡, UAE를 연달아 물리치며 승승장구한다. 또 다시 일본하고 마주치게 된 한국. 97년 9월 28일에 열렸던 도쿄 원정에서 후반 20분경, 고정운의 수비실수로 야마구치에게 루프 슛으로 선제골을 허용하고 만다. 하지만, 선제골을 허용한 후 한국은 더욱 더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후반 38분, 이기형의 센터링에 이은 최용수의 헤딩패스와 서정원의 마무리 헤딩슛으로 동점골을 성공시킨다. 그리고, 4분 뒤인 후반 42분에는 이민성이 날카로운 왼발 슛으로 일본의 골네트를 흔들면서 순식간에 2-1로 역전했다. 한국이 일본에 2-1로 역전승을 거둠으로써, 이른바 도쿄대첩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97년 11월 1일 잠실에서는 전반 2분만에 나나미에게 선취골을 허용한데 이어, 37분에는 브라질에서 귀화한 와그너 로페즈에게 골을 허용하면서 0-2로 끌려갔다. 이후 한국은 계속적인 위기를 허용한 끝에 0-2로 패한 반면, 일본은 조 2위로 오르게 된다. 일부 언론들로부터 "일본과 같이 월드컵 진출을 하기 위해서 일부러 져 준게 아니냐?"라는 승부조작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었다. 한국이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거둔 성적은 6승 1무 1패로 4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하게 됐으며, 멕시코를 비롯하여 네덜란드, 벨기에와 같이 E조에 편성된다.
※ 조별예선 1차전 - 멕시코전
1998년 6월 13일(토) 오후 5시 30분, 장소는 프랑스 리옹 제를랑 경기장. 약 4만명의 관중이 운집된 가운데 사상 첫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기대를 안고 98 월드컵 조별예선 한국의 첫 경기가 시작됐다.
김병지 골키퍼를 비롯해 해외파 홍명보, 서정원, 유상철, 하석주 등 노련미를 겸비한 역전 노장들이 주축이 되어 차근차근 경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멕시코도 북중미의 강호답게 우리의 문전을 위협했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전반 28분경 멕시코의 문전 정면에서 20여미터나 되는 지점에서 프리킥을 얻게 된다. 키커는 '왼발의 달인' 하석주. 직접 슛을 하기엔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하석주는 강하게 왼발로 직접 슛을 날리고 공은 수비수의 머리를 맞고 골문 안으로 들어간다. 골이었다. 월드컵 출전 사상 첫 선취골이었다. 선수들을 비롯하여 국민들은 열광했다.
그리고, 16강에 대한 희망은 더 이상 희망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첫 골의 기쁨은 2분이 채 지나지도 않은 시간, 멕시코 진영에서 공격을 하려던 라미레스를 하석주가 뒤에서 태클을 하였다. 이번 대회부터 백태클에 대해 엄한 처벌이 내려진다는 FIFA의 강한 결의를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벤케 주심은 바로 하석주에게 단호하게 레드카드를 꺼내었다. 선취골에 대한 기쁨이 채 사그라들기도 전에 한명의 선수가 퇴장당하고 10명의 선수로만 경기를 치뤄야했고, 선수들은 점점 움츠려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멕시코의 맹렬한 반격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다행으로 선취골을 지킨채 전반을 마쳤다. 10분간의 휴식 시간에 한국팀은 전열을 가다듬고 16강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를 품고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11명이 싸우는 축구경기에서 10명이 그것도 강적을 상대로 경기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다. 그래도 한국 선수들은 맹렬한 멕시코 선수들의 공격을 투지로 막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후반 9분경 펠라에스에게 동점골을 허용하고 만다. 이때부터 한국선수들은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후반 29분과 39분에 멕시코의 영웅이라고 불리는 에르난데스에게 연속골을 허용하고 만다. 결과는 1-3. 결국 선취점을 지키지 못하고 조별리그에서 1패를 기록하게 된 것이다.
※ 조별예선 2차전 - 네덜란드전
멕시코 전에서 1-3 패배를 거울삼아 심기일전의 마음으로 네덜란드전에 임한 한국 선수들. 하지만 네덜란드는 세계적인 스타라고 불리는 데니스 베르캄프가 지키고 있는 강호중의 강호였다.
98년 6월 20일 (토) 오후 9시 프랑스 마르세유 벨로드롬 경기장. 유럽의 난폭한 훌리건들과 약 5만 5천여명의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우리 선수들은 더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의지로 배수의 진을 치고 전반전을 시작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공격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전반 37분경 네덜란드의 코쿠에게 선취골을 허용한데 이어 5분뒤 오베르마스에게 추가골을 허용하고 만다. 전반전은 0-2로 종료됐다. 후반전이 시작되고 한국선수들도 간신히 슛을 날리면서 만회골의 기회를 노렸으나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에게는 역부족이었다. 후반 26분경, 베르캄프에게 추가골을 허용해 0-3이 되었다. 8분 뒤인 후반 34분, 오베르마스가 한국팀 진영 좌측에서 센터링한 공을 판 후이동크가 골 에어리어 우측에서 헤딩슛, 0-4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4분 후인 후반 38분, 로날드 데부르에게 추가골을 내주면서 0-5. 그 스코어로 경기가 종료되었다. 근래에 들어와서 가장 큰 점수차고 패하고 만것이다. 멕시코전에 이어 네덜란드전에도 패하자, 국민들과 언론의 비난이 쏟아졌고 차범근 감독이 월드컵 도중 해임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일어나고 만다. 2패로 이미 16강 진출 탈락이 확정된 상황.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이대로 주저 앉을수 없었다. 차범근 감독이 해임된 후 김평석 코치가 감독대행으로 하여, 월드컵 본선 1승을 열망하는 국민들의 기대를 가슴에 품고 E조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유럽의 붉은 악마' 벨기에전에 대비해 전력을 가다듬어야 했다.
※ 조별예선 3차전 - 벨기에전
E조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벨기에전. 네덜란드전 0-5 참패로 국민들의 원성이 더 없이 높아졌고 이러한 원성은 1승에 대한 갈망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16강은 이미 탈락한 상태이지만 월드컵에서의 1승을 바라는 국민들의 성원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한국팀은 필승을 다짐했다. 98년 6월 25일(목) 오후 4시 파리 파르크 드 프랭스 경기장. 더이상 물러설 곳도 물러설수도 없은 일전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전반전이 시작되고 한국팀이 채 전열에 가다듬기도 전에 전반 7분 수비맞고 흐르는 볼을 닐리스가 페널티 에어리어 왼쪽에서 오른발로 슛을 날린 것이 한국팀 골네트를 갈랐다. 하지만 선취점을 내주고 급격히 무너져버렸던 네덜란드전과는 달리 한국선수들은 오히려 더 좋은 플레이를 보이기 시작했다. 간간히 득점기회도 있었으나 아쉽게 무산되면서 전반 종료되었다. 후반전이 시작되자 우리에게도 더 많은 만회골의 기회가 왔으나 번번히 실패를 하던 중 후반 26분경 하석주가 미드필드 왼쪽에서 왼발 프리킥을 찬 것을 유상철이 골 에어리어 오른쪽에서 달려들며 오른발 땅볼 슛을 한것이 벨기에의 골문을 갈랐다. 동점골이었다. 선수들은 국민들의 성원에 조금이라도 보답했다는 마음에 기뻐했고 국민들도 역시 열광했다. 동점골을 허용한 벨기에의 공격은 더욱 거세졌고 이때부터 우리 선수들의 눈물겨운 투혼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이임생은 수비를 하던 도중 눈위가 찢어져서 시아가 가리고 쓰라린 아픔 속에서도 붕대로 머리를 감싸고 경기에 임했으며 발에 쥐가나는 선수들은 침으로 다리에서 피를 뽑아내가며 경기에 대한 투지를 불태웠다. 이런 투지로 벨기에의 파상적인 공격은 막아냈지만 우리도 더이상 추가골은 나오지 않았다. 1-1 무승부였다. 그리고 염원하던 1승도 얻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국민들과 외신들은 우리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수들이 보여준 투혼에 경의를 표했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축구의 저력이라고... 아트 사커가 선보였던 98 프랑스월드컵은 개최국 프랑스의 우승으로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첫댓글 내가 처음으로 본 월드컵이네.. 어릴때지만 하석주 이임생선수 때문에 가슴아팠던 기억이.. 크. ㅋㅋ 너무 큰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