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둥이의 부모가 된다는 것
아이 낳지 않는 이유는 여럿입니다. 제 한 몸 건사하기 어렵거나 부부의 인생에 오롯이 집중하고 싶을 겁니다. 아이가 살아갈 미래가 어두워 낳기 싫다는 커플도 있습니다. 그래서 궁금했습니다. 서른둘 동갑내기 김진수 서혜정 육군 대위 부부는 왜 둘도 셋도 넷도 아닌 다섯 쌍둥이를 낳은 걸까요.
국내에서 오둥이 보기는 34년 만입니다. 난임 시술 증가로 다둥이는 많아져도 오둥이는 귀합니다. 오둥이가 태어난 2021년 출생아 26만 명 중 다둥이는 1만4000명(5.4%), 삼둥이 이상은 500명으로 전체 출생아의 0.2%입니다. 의학적으로는 오둥이도 정상적으로 크는 데 문제가 없지만 의료계에선 삼둥이만 돼도 선택적 유산을 한 뒤 둘만 낳게 하는 게 관행입니다. 삼둥이 이상은 받아본 경험이 적기 때문이지요. 부모로서는 키우기도 버거우니 의사의 권유를 따르기 쉽습니다.
잔인한 선택에 합리적 기준이란 건 없습니다. 태아의 크기가 작은 순이 돼야 할까요. 아니면 선택적 유산을 하기 쉬운 곳에 자리 잡은 아이를 희생시켜야 할까요. 엄마 서 대위의 결정을 도운 건 배 속 아기들이었습니다. “다섯 개의 심장 소리를 듣는데 마지막 심장 소리가 엄청 컸어요. 그 소리를 듣고 나니 그런 선택을 할 수가 없었어요.”(채널A ‘금쪽같은 오둥이’)
부부는 국내에서 쌍둥이를 가장 많이 받은 전종관 서울대 교수를 찾았습니다. 삼둥이를 500번, 네둥이는 10번 받아본 전 교수도 오둥이는 처음이었습니다. 전 교수는 쌍둥이에 비해 삼둥이가 불리하지만, 삼둥이만 놓고 보면 하나를 희생시킬 때보다 셋을 모두 유지했을 때 생존 확률도 높고 건강하다는 연구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얘들이 커서 뭐가 될 줄 알고 고릅니까. 어렵게 찾아온 애기들한테 기회는 줘야지요.”
임신 28주가 지난 2021년 11월 소현 수현 서현 이현 그리고 청일점 재민이가 산부인과 소아과 마취과까지 30명 넘는 의료진의 도움으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몸무게는 850g∼1.05kg, 다 합쳐도 4.9kg입니다. 극소 저체중아로 태어나 80∼103일간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다가 퇴원해 지금은 하루 분유 한 통을 싹 비우고 기저귀 50장을 쓰면서 잘 크고 있습니다.
아빠는 “항상 행복할 수는 없다”며 육아의 고단함을 전합니다. 육아휴직을 번갈아 쓰는 부모와 도우미를 자청한 할머니까지 어른 2.5명이 아기 5명을 상대로 매일 육아전쟁을 치릅니다. 아이들이 걷고 뛰기 시작하면 다른 다둥이 엄마들처럼 “교수님, 그때 그렇게 힘들게 받아주신 아이들이 너무 말을 안 들어요”라며 하소연하게 될지 모릅니다. 여러 곳에서 양육비와 학비를 지원해 경제적 부담은 덜었지만 오둥이가 커가는 내내 맘 졸이게 되겠지요.
그래도 오둥이 부부는 다섯 아이 누구도 포기하지 않고, 대가 없는 출산의 의무를 감내한 사람만이 누리는 기쁨을 알게 될 겁니다. 부모가 된다는 건 변화무쌍한 세상의 바다에 떠다니다 돌이킬 수 없는 ‘궁극의 사건’(출산)으로 단단한 닻을 내리는 것, 내가 죽은 후에도 세상은 지속되리라는 믿음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 조심스러운 몸가짐을 하는 것 아닐까요. 다둥이 부모가 된다는 건 사랑의 마음은 하나 둘 셋 퍼주어도 마르지 않고 솟아오르는 샘물임을 새삼 깨닫는 것 아닐까요. 그런 부모 품에서 오둥이는 쑥쑥 자랄 겁니다. 올 한 해 힘들고 지칠 때면 제게도 그런 부모가 있었음을, 기적 같은 오둥이의 환한 얼굴을 떠올리려 합니다.
이진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