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진되지 않는 능력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20세기 전반 유럽에서 가장 널리 읽히던 지성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나치의 발흥과 함께 그는 영국으로, 다시 미국으로, 마침내 브라질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습니다. 1942년 2월 22일, 그는 브라질 페트로폴리스의 작은 집에서 아내 로테와 함께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다섯 해에 걸친 망명 생활의 끝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짧은 유서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지닌 능력은 오랜 세월의 정처 없는 방랑 속에서 다 소진되고 말았다." 그는 유럽이라는 정신적 고향이 스스로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았고, 전쟁이 곧 끝나리라는 희망마저 사라지자 예순의 나이에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할 힘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브라질은 그에게 따뜻한 환대를 베푼 땅이었지만, 그 환대조차 그가 잃어버린 것을 대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명성도, 재능도, 우호적인 이웃도 있었던 그가 왜 무너졌을까요. 그가 잃은 것은 물질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지탱해 주던 근거지였습니다. 언어의 세계, 문화의 세계, 자신이 속했던 정신적 공동체가 사라지자, 그를 지탱하던 힘도 함께 마모되어 갔습니다.
이 고백은 신앙의 눈으로 보면 더 깊은 울림을 줍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지탱해 줄 어떤 근원을 필요로 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아무리 큰 재능도, 아무리 많은 친구도 결국 사람을 붙들어 주지 못합니다.
성경은 이 지점에서 전혀 다른 답을 줍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이사야 40:31)
츠바이크의 능력이 소진된 것은 그것이 온전히 자기 자신과 자신이 속한 세계에만 뿌리내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힘, 인간의 명성, 특정 언어와 문화 공동체에 속한 정체성은 아무리 위대해도 유한하며, 상실과 세월 앞에서는 반드시 바닥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신앙인이 앙망하는 힘은 자기 안에서 퍼올리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정확히는 위에서 공급받는 힘입니다. 마르지 않는 샘에서 길어 올리는 물은 아무리 퍼내도 소진되지 않습니다.
또한 츠바이크는 "정신적 고향이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에게 고향은 특정한 나라나 언어 공동체가 아닙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빌립보서 3:20)
이 땅의 어떤 나라도, 어떤 문화도 궁극적인 고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신앙은 처음부터 압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뿌리를 땅이 아니라 하늘에 내립니다. 그 뿌리는 전쟁으로도, 망명으로도, 노년의 방랑으로도 뽑히지 않습니다.
츠바이크의 비극은 그의 재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재능을 지탱해 줄 근원을 다른 곳에서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 인간의 능력은 반드시 소진됩니다. 그러나 그 능력의 근원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소진 이후에도 다시 채워질 수 있는지가 결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