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이현세의 "외인구단"이 한때 대단히 유명했었다. 어느 정부가 들어서고, 큰 사건이 일어난 뒤에 한 지방의 유명한 깡패대장이 개과천선을 하겠다고 하니 정부가 운영하는 방송국에서 맡아 달라고 했다. 전문직들이 일하는 방송국에 적당한 자리가 없었다. 생각끝에 이동하는 방송국인 수 십억짜리 대형 중계차 운전을 맡기기로 했다.
그러자 다른 정부 부처에서 그랬던 것처럼 중계부에서도 팀들이 선입관만 가지고 서로 받지 않으려 했다. 마침 비리에 연루된 임원들과 거리를 두기 위해 잠시 자리를 옮겨야 할 일이 생겨 중계팀장으로 가면서 그를 맡기로 했다. 각팀에서 낙하산 격으로 정부에서 내려 온 사람들과 노조위원장과 사무장까지 넘겨 넣었다. 주변에서 최악의 중계팀이 되었다고 얼마나 버틸지 걱정이라고 수근댔다. 방송은 해야하니 스스로 우리팀을 '외인구단'이라 선언하고, 팀원들에게 남들 신경쓰지 말고 외인구단답게 특화를 하자고 했다. 남들이 '꼴통구단'이라고 비아냥대더라도.....
젊은 노조 위원장에게 차장, 부장들이 하는 감독 일을 대신 맡겨 자긍심을 가지고 다른 중계팀 간부들과 경쟁을 통해 일에 매진하게 하고, 전 팀원이 직종 가리지 말고 협력해 다른 팀보다 최소한 뒤지지 않도록 하라고 했다. 그리고 한 달에 20여 일을 전국 경기장으로 출장을 다니는 객지생활을 일의 피로와 술과 잡기로 지치고, 돈과 시간까지 허비하니 이를 완전히 개선하기로 아이디어를 모았다.
이를 위해 우선 친한 통신, 위성회사 간부들에게 부탁하여 중계현장과 방송사간 연동시험을 단독으로 미리 다 준비하게 하여 지방에 우리가 도착하여 중계차만 연결하면 되게 해서 하루가 걸리던 일정의 반 이상을 절감하게 했다. 그리고 출장을 다니다 보면 교통이 밀려 길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너무 많아, 좀 피곤하더라도 세 시간 앞서 새벽에 출발하기로 합의를 했다. 그럼 3박4일 마다 거의 하루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 시간을 객지생활에서 유익하게 보낼 수 있도록, 팀원들에게 한 가지씩 임무를 할당했다. 방송외 시간에 스키, 등산, 낚시 등 레져담당, 영화 연극, 지방 향토축제등 문화 담당, 각 지역의 토속, 건강음식 담당으로 나누고 음식담당으로 깡패 대장을 임명했다. 4,5일 간격으로 다른 지방으로 옮겨가는 곳에서 각 담당마다 한 가지 이상의 이벤트를 기획해서 중계도 잘하고, 출장을 즐거운 여행이 되도록 했다. 전문 강사를 붙여 전원 스키를 중급이상 마스터하게 하고, 늘 중계차에 각자의 스키를 실고 다니게 하여 언제라도 절감한 시간에 근처 스키장으로 모두 함께 달려 갈 수있도록 했다. 아울러 기획된 레져나 문화탐방을 넉넉히 하게 되었다.
밤에 중계 방송이 끝나면 철수하는데 보통 두 시간이 걸리는데, 모두가 최대한 서둘러 한 시간이내에 마치게 하자 다른 부서에서들도 매일 기록을 단축하자고 협조를 하고 우리 이벤트에 참여를 했다. 그 시간에 최신 개봉 영화감상등 이벤트를 할 수가 있었다. 아니면 간단히 1차만 하고, 다음날 새벽 다른 이벤트를 위해 더 이상의 음주나 잡기를 자제하고 휴식을 취하토록 했다. 뜻모르는 다른 방송사 중계팀들은 술 먹으러 가려고 저리 서두르나 했지만...
많은 문화 이벤트, 운동, 등산, 전통음식, 영화감상을 충분히 하니 사기도 올라가고, 출장비도 절약되어 3, 4 주만에 출장이 끝날 때면 여유마져 생겨, 그 지역 토산품등을 사서 나눠주니 문제의 중계팀이라고 걱정하던 가족들도 "외인구단"의 성과에 반색을 했다. 한 곳에서 장기체류하는 국제대회등에는 팀원 가족들을 초청해 경기도 보여주고, "외인구단"식으로 그 지방 문화탐방을 시켜주어 방송가족의 자긍심도 키워 주었다.
이쯤되니 그 깡패두목은 각 지방 전통음식을 연구하고 찾으러 다니느라 중계차 세팅만 끝나면 늘 바쁘게 되었고, 정부의 타 부처가 아닌 방송국으로 온 것이 하루하루가 즐겁고, 상상하지 못한 일반인들의 밝은 면에 보람을 느끼기 시작했다. 과거를 잘 말하지 않던 그가, 자주 고향 쪽으로 출장을 가면 더 긴장하고 침묵했다. 어느 날 중계가 끝나고 꼭 갈데가 있다며 팀원들을 데리고 어느 관광호텔 스카이라운지로 안내를 했다.
방송쟁이들도 거의 가기 힘든 호화로운 곳이었다. 수 십명의 까만 정장을 입고 두 줄로 정렬한 사내들이 90 도 허리를 굽혀 맞았다. 영화에 보던 한 장면이었다. 두목이 떠난 뒤 부하들은 호텔, 골프 사업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대장도 방송국에서 자리를 잡았고, 그들도 사업이 안정되어 가는데, 두목이 "외인구단" 자랑을 하며 보람을 느낀다고 해 고맙다고 초대를 했단다. 대원들은 옛 두목의 새로운 삶을 축하한다며 모두 함께 건배를 하고 바람처럼 물러 가고, 경영을 맡았다는 한 사람만 남아 함께 하며 두목의 만류에도 과거사를 조금씩 들려 주었다.
얼마 후 방송국에 카드 도난 사건이 자주 일어나 강남 유명한 술집에서 수 백만원씩하는 청구서들이 날아 들어 회사가 난처할 때, 외인구단 팀원들의 카드 수령자가 내 이름으로 되었다고 했다. 외인구단에서 두목과 한 팀원에게 방송 카메라 한 대를 청구서가 날아 온 강남 고급술집 앞에 세우고 모든 출입자를 녹화하면서 범인을 잡아 내라고 경고를 보냈다. 절대 알 수도 없고, 알아도 손님들의 비밀을 공개 할수도 없다고 버티더니 며칠만에 손님이 다 끊기자, 강남 주먹대장쯤으로 보이는 카드깡 회사 사장이 찾아왔다. 자기가 3일내에 찾아 올테니, 방송 카메라부터 철수를 해달라고 사정을 했다.
정확히 3일 뒤, 범인들과 함께 밤을 즐겼다는 아가씨 둘을 데리고 왔다. 인사부장과 직원 신상명세서의 사진를 보여주고 확인하니, 면접에 떨어진 것을 보증하겠다고 입사를 시킨 전직장 선배였던 현직 부장이었다. 난감하기도 하고 그럴리도 없어 대면확인을 하자고 했다. 범인과 눈이 마주치면 자기네는 죽는다고 절대로 못한다는 그녀들을, 시골서 올라 온 여자 조카로 위장해 방송국 견학을 시키기로 했다. 수수한 시골처녀 복장에 선글라스를 끼고 스튜디오 안에서 작업 중인 직원들을 확인시켰다. 밤에는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다닌 범인을 잡아냈다. 놀랍게도 전혀 상상을 못한 부유한 가정 출신의 PD와 두 명의 외부 작가들이, 다른 직원들의 카드로 강남 밤거리의 황제 노릇을 한 것이었다.
경찰에 넘기는 대신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시키고, 노조와 소속 협회의 저항이 심했지만 자진 사퇴를 하는 것으로 정리를 했다. 그러자 '외인구단'의 소문이 쫙 퍼져 서로 들어 오려고 했고, 출장가면 따로 놀던 다른 부서원들도 합류하여 기나긴 출장의 고된 일을 서로 돕고, 지치는 일상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방송가의 전설을 함께 만들어 갔다.
어느 사회에서나 "외인구단"같은 차별 특성화는 가능하다 조폭 대장도 했던 것처럼...국가의 기강이 약할수록 깡패들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상식이다. 그들이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나라를 책임지는 지도자들은 얼마든지 잘 살수도 있는 젊은이들이 어둠의 세계로 밀려 들어가게 한 책임을 한 번쯤은 생각을 해 봐야 할 것이다.
연말의 이쯤이면 스키장에서 팀원 가족들과 함께 하던 외인구단 시절이 아련히 그리운 밤이다.